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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솔 Oct 05. 2023

17. 인간관계 2

_ 추석을 통해 돌아본 인간관계

추석이 지났다.

추석 기간 동안, 연예인들 사이에서 선물을 받은 이야기가 네이? 나 다? 에 기사로 떠있는 것을 몇 개 보았다. 몇 년째, XX가 추석 선물을 보내주어서 잘 받고 있다는.... 또한 이름을 밝히지 않은 누군가가 매년 명절이면 어느 장소에 쌀을 항상 놓고 가는데, 올해도 놓고 갔다는 미담도.... 그리고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서는 박??이라는 연예인이 엄청난 양의 명절 음식을 만들어서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분명, 명절에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우리나라의 좋은 미풍양속임에 틀림없다.


약 12년 전, 내가 회사에서, 부서장(혹은 임원)이 된 다음, 두 번째 명절에 한 일은 '직원들 간 선물 금지'라는 이메일을 부서원에게 보낸 것이었다. 당시에는 회사 규정에 '직원들 간의 선물 금지'라는 규정은 없었고, 명절이 되면, 내 느낌에는 직원들은 서로서로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상사에게 명절 선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누구는 지난 명절에 상사에게 선물을 했다던데, 난 안 했고. 아마도 그 누구는 이번 명절에도 상사에게 선물을 할 텐데, 나도 이번에는 해야 하지 않을까? 등등.'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나름 치열한 눈치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난, 자랑이 아니지만, 명절이라고 내 상사에게 따로 개인적인 선물을 한 적은 없었다.


부서장이 되고, 첫 명절이 되었을 때, 우리 집으로 명절 선물 몇 개가 배달된 것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었다. '이걸 받아야 하나? 받는다면, 선물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도 기억해야 하나? 만약 기억한다면, 나도 모르게 회사에서 선물을 보낸 사람과 안 보낸 사람을 차별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지?' 정답이 없는 잡다한 생각을 하다가, 두 번째 명절에 한 일이 부서원들에게 '직원들 간의 명절 선물 금지'라는 이메일을 보낸 일이다.


물론, 고객들에게는 회사에서 나오는 간단한 선물을 전달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회사가 투명경영 등을 선포(?)하면서, 고객에게 명절 선물을 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직원들 간의 선물이나, 파트너 업체로부터의 선물 모두 금지가 되었다.


선물이 금지되면서, 명절이면 직원들과 파트너 회사들로부터, '명절인사 카톡'이 왔다. 집단 카톡을 보낸 것 같은 것도 있었고, 나에게만 내용을 적어서 보낸 듯한 카톡도 있었다. 사실 명절 인사라는 것이 개개인에게 아주 다르게 내용을 적기는 어려운 것이어서, 아마도 비슷한 내용을 다들 주고받았을 것 같다.


고객들에게는 담당 영업사원들이 명절 인사를 카톡으로 보내었다. (물론 개인 성향에 따라서, 고객들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내지 않은 직원들도 있을 것이다.) 난, 일부러 고객들에게 카톡 메시지는 보내지 않았다. 담당 영업사원보다 나와 더 오랫동안 알고 지낸 분들도 계셨다. 그러나, 담당영업사원들이, 내가 고객과 직접 연락을 주고받는 것을, 많이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 가능하면, 내가 직접 고객과 연락하는 것은 피했다. 가능하면 담당 영업사원을 통해서 고객들에게 안부를 전했고, 연락을 드렸었다.


이번 추석은 내가 회사를 사직하고, 취준생으로 맞는 첫 명절이었다. 내가 '직원들 간의 명절선물 금지'를 메일로 보낸 지, 12년이 지났으니, 명절이라고 전 직장 동료들에게서 무언가 선물이 올 수도 있다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이를 기대한다면, 난 정말 겉과 속이 다른 나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명절 전후에 카톡이나 문자메시지, 전화 등으로 연락 몇 통쯤은 올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다림은 좀 있었다. '현 직장 동료'가 아닌, 친구 혹은 선배라고 생각하고 연락을 해올 사람은 몇 명쯤은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다. 물론 내가 먼저 명절 잘 보내라고, 연락을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핑계이지만, 전형적인 'I'형 인간인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한다는 것은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명절 전후로, 다행(?) 히도 나에게 추석 잘 지내라고 전화를 주거나, 메시지를 보내준 전 직장 동료들이 몇 명 있었다. 그리고, 회사 다닐 때는 이러한 '명절 인사 메시지'에 대하여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번 추석에 명절인사를 보내준 동료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아직 나를 기억해주고 있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나와 함께 보낸 시간들 중에는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있겠지만, 그래도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연락을 해주었을 거라는 나 스스로에 대한 안도감에, 감사했다.


고객들 중에도 몇 분께, 명절 인사를 카톡으로 보내어드려 보았다. 정말 나에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임원이 된 이후, 영업사원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직접적으로 연락을 드린 지 어언 10여 년이 지났고, 취준생의 신분으로 명절 인사 카톡들 고객들에게 보낸다는 것은, 나에게는 정말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내 생각에 나와 오랜 시간 알고 지냈고, 회사와 고객의 관계가 아니라, 내 인생 선배로서 나 인생에 도움이 될 많은 조언을 해주셨던 분들 중, 몇 분에게만 각각 명절 인사를 카톡으로 드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내가 보내드린 명절 인사에, 모두을 답신을 보내어 주시는 것이 아닌가? 내가 지금 취준생이라는 것을 알고 계신 분 들 이어서, 응원의 메시지도 함께 보내어주셨다. 심지어는 본인이 가능한 시간대를 알려주시며, 명절 연휴 후에 한번 만나자고 먼저 제안을 주신 분들도 계셨다. 내게는 정말 놀랍고, 감사한 결과였다.


내가 어린 시절, 책의 '영문 제목'을 보고 읽지 않은 책이 있다. 바로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다. 영어 제목은 'How to win friends & influence people'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나름 '정의감'에 사로 잡혀 있었고, '올바름'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한 경쟁 사회'라는 말을 싫어했고, '지배'라는 말도 싫어했다. '승리'보다는 '함께 어울림'이 더 가치 있으며, '내가 옳으니 나를 따르라'는 말보다는 '나와 너는 조금 다를 뿐, 모두가 옳다'는 말을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나에게 이 영문제목은 너무나 비호감이었고, 책 제목을 보고, 바로 읽지 않기로 결정한 책이었다. 친구와 사람을 이겨야 하는 대상이나, 내 영향력을 발휘해야 하는 관계로 보는 책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이번 추석에, 몇몇 전 직장 동료의 연락을 받고, 그리고 몇몇 고객분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인간관계'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며 맺은 인간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우스갯소리로 '난 을도 안 되는 것 같다. 병이나 정쯤 되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러나, 이번 추석에 내가 느낀 인간관계는 'win & influence'도 아니었고, '갑과 을'도 아니었다. 그저 상대방의 현 상황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걱정해 주고, 응원해 주는, 그리고 응원을 위해서 조언도 해주고 충고도 해주는 관계였다. 사람이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꼭 이길 필요도 없으며, 내가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필요도 없는 인간관계. 내가 그동안 목말랐던 인간관계는 이런 인간관계였던 것은 아닐까?


직장 생활을 못하게 되었을 때, 가장 불안한 것 중의 하나는 '내가 속할 수 있는 인간관계가 있을까?'이다. 가족이라는 변하지 않는 울타리가 있기는 하다(물론 가족이라는 울타리도 끊아질 수는 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가장 든든한 울타리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가족 이외에, '내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내 자존감을 느낄 수 있는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과 불안감이 존재한다. 쉰둘에 얻은 취준생이라는 기간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원했던 인간관계는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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