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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Oct 10. 2023

#31 고민

소설 연재


상담실에서 재인은 60대 여성과 40대 남성 사이에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장례 방식을 두고 어머니와 아들이 다투는 모양이다.


“아니, 어머니. 아버지가 교회를 안 다니셨는데 기독교식 장례를 치르자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래도 내 마음이 그래. 그냥 장례식만큼은 기독교식으로 치르자.”

“하… 아버지 손님들도 많이 오실텐데… 왜 그러세요, 어머니.”

“아니 그냥 기독교 방식으로 하자는 건데 뭐가 문제야. 향 피우는 거나 제사상 차리는 것만 하지 말자는 거야.”


아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어머니께 짜증스러운 말투로 묻는다.


“그냥 평범하게 하면 좀 안 돼요?”

“아니, 그럼 내 지인들이랑 교회 사람들도 오고 할 텐데…”

“그럼 그분들만 오셔서 절 안 하시고 기독교식으로 인사하시게 하면 되잖아요.”

“그래도…”

“어머니, 제가 상주니까 제 의견대로 결정하게 해 주세요. 그런 게 뭐가 중요해요.”


재인은 묵묵히 지켜보다가 말을 꺼낸다.


“두 분께서 조금 더 상의를 하시고, 너무 늦지 않게 결정을 해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잠시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재인은 상담실 문을 열고 나간다. 그녀는 장례 절차를 안내할 때 보통 유가족들에게 상주의 의견을 따를 것을 권한다. 가족들 사이에 의견 다툼이 생기는 걸 방지하는 차원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유교사상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장남을 상주로 세운다. 물론 종교에 따라 그 부분도 조금씩 다르다.


지난달 한 빈소에서는 장례 마지막 날 아침까지도 상주와 큰아버지가 계속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 상주인 아들은 아버지 유골함을 집 근처 납골당에 안치하고 싶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아버지 되는 사람은 자신의 동생을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선산에 같이 매장하자고 요구했다.


장례는 결국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절차이다. 말 그대로 세상을 떠난 고인 가시는 길이 복되기를 바라고 또 영면에 들기를 기원하는 의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장례 절차 하나 가지고도 유가족들끼리 의견 충돌이 생기는 경우가 꽤 있다. 이럴 때마다 재인은 헷갈린다. 도대체 다 무슨 소용인지. 장례가 죽은 자를 위한 것인지 산 자를 위한 것인지 그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날 오후 차려진 103호 빈소에서는 장례 첫날 진행하는 기독교식 위로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교회 성도들은 어머니를 둘러싸고 찬송가를 부른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주 날 오라 하신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모든 의식을 마치고 어머니는 목사와 성도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한다. 아들을 비롯한 자식들은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정말 누구를 위한 예배였을까.



***



진영은 실습생 혜영과 진한을 데리고 장례용품 보관실로 이동한다. 그녀는 5층짜리 선반 앞에 서있다.


“여기 있는 물품들은 이제 앞으로 매일 보게 될 거예요. 우선 염습할 때 사용하는 용품들 먼저 설명해 줄게요. 여기 선반의 윗단을 보면 관보, 수의, 습신, 함영, 탈지면이 있고 그 아랫단에는 알코올이나 면도크림 그리고 샴푸 등 각종 메이크업 용품들이 있어요. 순서대로 알려주면…”


혜영과 진한은 손에 든 수첩에 열심히 메모하면서 진영의 말에 귀 기울인다. 한참 동안 설명이 이어진다.


“네, 여기까지 하면 다 한 것 같네요. 혹시 더 궁금한 거 있나요?”


실습생들은 고개를 저으며 거의 동시에 대답한다.


“아니요.”

“없습니다.”


이어서 재인이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네. 그럼 이쯤 하고 나갑시다. 아, 그리고 내가 오늘은 점심 약속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올 거예요. 혜영씨랑 진한씨 어제 저랑 구내식당에서 식사한 거 기억하죠? 거기서 천천히 식사하고 1시까지 사무실로 돌아오면 돼요. 이따 봐요.”



***



재인은 장례식장 근처 백반집으로 들어선다. 가장 안쪽에 이미 도착한 민아가 앉아 손을 흔든다. 식탁에는 한상차림이 가득하다.


“재인아, 너 배고플까 봐 내가 미리 시켜놨어.”

“고마워. 내가 조금 늦었지. 미안.”

“아냐, 어서 같이 먹자.”


재인은 추어탕을 먼저 한 숟가락 떠서 먹는다.


“어우, 따뜻하고 좋다.”


민아도 제육볶음을 한 젓가락 집어 먹는다.


“재인아, 고생했어 진짜.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지?”

“아냐, 그래도 서비스 종료하기 잘한 것 같아.”

“말은 그렇게 해도 너 혼자 속앓이 했을 거 다 알아.”


재인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민아를 바라본다.


“민아야, 근데 내가 나쁜 의도로 시작한 건 아니기는 했거든. 나는 진짜 누군가 필요한 사람한테 도움을 주고 싶었던 건데…”

“나는 알지. 안 좋은 방식으로 활용한 사람이 잘못이지. 너라고 그것까지 예상할 수 있었겠어? 됐어. 이제 그만 생각해. 그래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한테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야. 어쩌면 네가 서비스 종료해서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걸.”

“에이… 무슨…”

“진짜야.”


민아는 나물무침을 입에 넣으면서 다시 묻는다.


“재인아, 너 연애 사업은 잘 돼 가? 나는 지금 겨울이 다가오는데 아직도 옆구리가 시리다. 하… 아무리 생각해도 장기 연애가 문제였어.”

“왜, 아직도 생각나?”

“아니, 딱히 생각이 나는 건 아닌데. 작년에 헤어지고 나서는 연애를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내 20대는 다 걔랑 만든 추억들 뿐이라… 솔직히 생각은 가끔 나지…”


재인은 눈썹을 살짝 올리고 눈을 똥그랗게 뜨면서 민아를 놀린다.


“언제는 그 사람이랑 결혼까지 할 거라면서? 그 당당하던 고민아는 어디 갔어?”

“야, 놀리지 마라. 난 심각하다.”

“오구오구, 그랬어요?”

“야, 한재인.”

“헤헤, 알겠어. 미안. 미안. 근데 이제 막 모태솔로에서 벗어난 나한테 고민 상담할 건 아니지 않냐? 내가 아는 게 뭐가 있다고. 지금 내 코도 석자야.”


민아는 궁금한 눈빛으로 재인을 쳐다본다.


“너는 또 왜. 너라도 잘 좀 만나라, 제발.”

“확실히 나는 연애에 서툰 것 같기는 해. 다들 연애할 때 어느 정도까지 속마음을 다 털어놓는 거야?”

“그야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

“그런가… 남자친구가 이제 보통 알고 지내는 친구들보다는 확실히 가까운 사이가 된 건 맞는 거 같은데… 또 아직 만난 지 오래되지는 않아서 그런지… 서로 맞춰가야 할 부분이 계속 생기는 것 같아.”

“그건 짧게 만나나, 길게 만나나 마찬가지인 거 같기는 해.”


재인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내가 너한테 말한 비밀을 남자친구한테 털어놓기가 좀 조심스러워. 가족도 모르는 거니까… 그래서 어떤 고민을 말하려다가도 주저하게 되는 게 있어.”

“재인아, 근데 내가 너라도 그랬을 거야. 안 그래도 재인이 너 지금 마음 많이 심란하잖아…”

“응… 벌써 다음 달이야…”

“응… 나도 날짜 기억하고 있어… 근데 내가 먼저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면… 너 더 힘들게 할까 봐…  말은 못 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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