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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l 26. 2024

멀미같은 사랑

[노랫말싸미] 5

어제저녁 9시가 넘은 고속도로.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폭우 속에 앞뒤 거의 모든 차들이 경광등을 깜빡입니다. 앞 유리에 정신없이 생겼다 사라지는 물방울이 노랗게, 붉게 물들었다 사라지기를 수없이 반복합니다. 블랙홀 입구같이 어둑한 산능선이 위로 누군가가 거대한 하얀 커튼을 펼쳤다 접었다 하는 듯 번개가 칩니다.  


그럴수록 어둑한 차 안은 더욱 고요합니다. 뒷자리에서 나란히 잠든 남매들 숨소리 사이를 라디오에서 아주 익숙한 비트와 가사가 이어줍니다. 덕분에 저는 열다섯이 되어 흔들리는 버스 안에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의 자그마한 속이 뒤틀립니다. 먹은 게 없는데 계속 속에서 커다란 주먹 하나가 무언가를 계속 밀어 올리려는 듯합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왼쪽, 오른쪽으로 휘어졌다 제자리로 돌아올 때마다. 


버스 지붕을 뚫고 하늘을 치솟았다 저 아래 시꺼먼 물이 흐르는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지 싶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즐겁고 좋은지 쉬지 않고 떠드는 아이들. 자기 집인 듯 편안하게 잠에 골아떨어진 아이들. 그 아이들 사이에서 저만 홀로 삶과 죽음을 왔다 갔다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멀미 증상이 심하게 일어나는 원인 중 하나였지 싶습니다. 열다섯의 아이들 사이사이를 가득 채우던 어른들 의 흐느적거리는 음악이. 늘어지는 비트는, 애절한 고음은 내 안에서 뒤엉커 진한 메스꺼움으로 변했습니다. 스믈거리는 버스 기름 냄새와 함께. 얼른 버스에서 내리기만 하면 새 생명을 얻은 듯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처음 듣는데, 힘이 마구 나는 비트가, 가사가 아이들 사이를 돌아 돌아 저의 귀에 한가득 들렸습니다. 가수도, 노래 제목도 몰랐지만 속까지 편안해지는 듯했거든요. 갑자기. 정말 갑자기 말입니다. 그런데 사춘기에, 누군가를 몰래 좋아하느라 시간과 마음을 쓸 때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안개속에서 나는 울었어 외로워서 한참을 울었어 /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 들판에 서서 나는 울었어 외로워서 한참을 울었어 /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 만나서 차마시는 그런 사랑 아니야 / 전화로 얘기하는 그런 사랑 아니야 / 웃으며 안녕하는 그런 사랑 아니야 / 가슴 터질듯 열망하는 사랑 사랑때문에 목숨거는 사랑 / 같이 있지 못하면 참을 수 없고 보고 싶을때 못보면 눈멀고마는 / 활화산처럼 터져 오르는 그런 사랑, 그런 사랑 / 어둠속에서 나는 울었어 외로워서 한참을 울었어 /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이 노랫말 제목이 <열정>이라는 것은 나이상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한참이나 지나 알게 되었습니다. 일부러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우연하게 어제처럼 다시 듣게 되면서 열다섯 때보다는 훨씬 노랫말이 와닿더군요. 잘 사는데, 아니 그냥 살아내는데, 사랑을 유지하는데 열정이 필요하다는.  


이 노랫말을 지은 양인자 작사가는 '서울 서울 서울',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 '립스틱 짙게 바르고',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소녀의 꿈', '타타타', '알고 싶어요' 등 웬만한 이들이 알만한 노랫말을 지었습니다. 남편인 김희갑 작곡가가 리듬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아내가 노랫말을 짓고 남편이 곡을 입혀 만든 사랑이야기, 사는 이야기. 글처럼 노랫말도 자기 삶에서 반추될 수밖에 없었을 텐데 이곡들의 노랫말은 이 노부부가 굽이굽이 힘겹지만 끝내 멈추지 않고 오르던 버스처럼 사랑의 멀미감을 느끼면서도 잃지 않으려고 애쓴 말들 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그렇듯 서로 좋지 않을 때가 진짜 사랑이니까 말입니다. 그렇게 머리로 아는 것만큼 가슴으로 잘 안 되는 것 중의 최고가 아마 사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른이지만, 어른이어서 좀 더 나아야 하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받는 것에 갈구하는 듯한 저의 삶을 보면 말입니다. 


잘한다고, 고맙다고, 소중하다고, 칭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엉엉 울고 싶을 때가 불쑥하고 여전히 올라오려는 것을 보면요. 열다섯 때보다 차멀미는 덜하지만 짐짓 속으로 안달하는 사랑의 멀미감은 어쩌면 더 어리게 심해지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글 속에서도 많이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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