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뚝 떨어진 듯하다.
아침 바람이 제법 쌀쌀해졌지만, 오늘 내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따뜻했다.
첫 출근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 공부 중인 본교에서 조교로 일하게 되었다.
재학생으로, 졸업생으로, 또다시 재학생으로 이 학교에 드나든 지도 어느덧 십 년이 넘었다.
늘 '학생'의 자리에서만 있었기에, 교직원의 자리에서 학교를 바라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우리 학교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동전의 한 면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느낌은 새로움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새롭게 사랑할 수 있는 시선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멀리 서가 아니라 가까이서 바라보는 듯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우리 학교를 정말 좋아한다.
늘 받기만 하던 자리에서, 이제는 학교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사람도, 일도, 사랑도 결국은 다 비슷한 것 같다.
나는 단순한 편이라, 한 번 좋아하면 오래 좋아한다.
가장 친한 친구는 여덟 살 때 만났고,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다.
좋아하는 음식도, 취미도,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선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오늘 깨달았다.
모든 대상에는 또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지는, 그런 존재들처럼 말이다.
그 깨달음이 설레었다.
그리고 문득,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지난주엔 경복궁 근처에서 열린 브런치스토리 팝업 전시에 다녀왔다.
시험기간이라 지쳐 있었지만, 그냥 가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가방을 메고 나왔다.
내 글이 전시된 것은 아니었지만,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흔적이 공간 가득 새겨져 있었다.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고, 마음 깊이 감사했다.
대단하지 않아도, 타자기를 두드릴 수 있다는 것이, 누군가 한 명이라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는 이 환경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싶었다.
그리고 오늘, 새롭게 시작된 일 또한 감사했다.
나는 교수님들의 교수법과 학생들의 학습을 도와주는 센터에서 일하게 되었다.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던 일과 닿아 있는 자리다.
남을 위하여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돕는다는 것은,
사실 값진 일이라 평가되는 값보다 값으로 매겨지지 않는 귀한 가치가 더 우선 되는 것 같다.
그것은 '마음'이고, 본질적으로 '사랑'이다.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내 일과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결과 위에 '선한 가치'가 자리를 지켜주길 바란다.
매일 혼자 사색하던 일상이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 마음을 나누고, 함께 일하며
조금씩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어간다.
그리고 이렇게 오래간만에, 정말 오랜만에 '일기다운 일기'를 쓴다.
묵묵하게, 성실하게,
오늘도 또 다른 하루를 걸어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