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는 날 수 없지만 난 날았다.
아직도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는 꿈을 자주 꾼다. 졸업하기까지 일 년이 더 남아 그 기간을 채워야 한다는 이상하고도 매번 똑같은 꿈이다. 학교에 다시 다녀야만 한다는 얘길 들을 때마다 꿈인걸 알면서도 행복하다. 돌아가고 싶지만 다신 갈 수 없는 곳, 나에게 학교란 그런 곳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 교복은 그 당시 부천에서 이쁜 걸로 일등이었다. 여름에는 리본끈, 겨울에는 넥타이로 포인트를 주는 짙은 네이비색의 교복은 한 번쯤 입어보고 싶은 디자인이었다. 난 교복을 사랑했다. 교복은 소속감에서 오는 안정감이라는 걸 줬고 학생이라는 신분을 줬기에 사랑했다. 주말에도 교복을 입고 돌아다녔고 졸업식 때에는 친구들보다 교복과 헤어진다는 사실이 더 슬퍼서 울었다.
고등학교 내내 교실 뒤편 게시판에 제일 조용한 아이로 뽑혀 이름이 올라가 있을 정도로 말을 안 했기 때문에 날 기억하는 친구들은 아마 몇 없을 것이다. 사실 난 고등학교 입학 후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 한동안은 무던히 애를 썼다. 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신분인 친구들은 더 잔인했다. 소속감은 같았어도 한번 지어진 무리에는 잘 껴주질 않았다. 그들은 방어벽을 구축하고 침범하는 모든 것들을 내쳤다. 내쳐진 것들엔 나 또한 속해 있었다. 난 그래도 굴하지 않고 친구들 무리에 속하기 위해서 주전부리를 싸가지고 다니거나 그 시절 유행 아이템을 빨리 사서 주목을 받으려고도 했다. 그러나 친해지려 노력했던 나의 진심이 묘하게 우울해 보인다는 농담 섞인 조롱으로 변하자 스스로 입을 닫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묵언수행을 시작했다.
그렇게 자진해서 이 년 동안 *묵언수행 을 했다.. 말을 안 하고 책상에 앉으니 할 일이 없었고 심심한 나머지 나는 서랍에 있는 교과서를 꺼내 읽고 공책에 필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했다. 아니 책상과 의자에 붙어있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바로 엉덩이의 힘 말이다. 다른 애들이 보기에는 공부에 미친 아이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 결과 나는 무료 내신으로 대학을 갔다. 중학교 내내 반에서 45명 중에 잘해야 43등이었던 내가 말이다. 그런 내가 대학을 가다니 스스로가 대견하기까지 했다. 엄마는 나의 대학 합격 소식에 두 번째로 우셨다. 수원에 있는 좋은 대학도 아니었는데 합격이라는 말에 감동을 받으신 듯했다. 드디어 딸이 *아웃사이더가 아닌 정상범위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엄마는 많이 감격하신 듯 보였다. 엄마는 내가 자라는 동안 많이 아파서 사람구실도 제대로 못 하고 살 줄 아셨다고 했다.
그렇게 성장과 함께 우울도 자랐다. 어떤 날은 옆에 없는 것처럼 조용히 어떤 날은 등뒤에 붙어있을 정도로 가깝게 말이다. 우울은 등교하는 가방에 붙어있다가 하교하는 발 밑 모래바람에 날아가기도 했다. 학교에 딸려있던 우울을 집까지 들고 오는 법은 없었다. 그건 나만의 약속이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더 이상 힘들게 하면 안 된다는 작은 신념이기도 했다.
*아웃사이더
사회, 경제, 법률적으로 일정한 테두리가 설정되어 있는 경우에, 그 테두리 밖에 있는 자.
*묵언수행
침묵, 즉 일부러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