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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파이쥬얼리

잘 가!

by 다정한 지혜씨


오래된 건물에 영혼이 깃들듯이 누군가 사용했던 물건에는 그만의 자국이 남는다. 물건을 흠이 쓰는 사람에게는 보다 거친 부분들이 많이 보일 것이고, 물건을 새것처럼 아껴서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그는 고운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가게를 정리하면서 그동안 사용했던 물건들을 중고 사이트에 올리는 작업을 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오만 정이 다 떨어진 물건들을 죄다 갖다 버리고 싶었지만,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운 생각에 겸사겸사 정리를 시작했다. 액세서리를 올려놓고 찍었던 트레이부터 의자, 책상, 컴퓨터, 각종 집기까지 난 여러 가지 물건들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팔기도 하고 무료 나눔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 중고 판매를 했던 분은 내 또래처럼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그녀는 자기도 액세서리를 만들어 인터넷에 조금씩 판매를 하고 있다며 언젠가는 나처럼 가게를 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나는 순간 그녀를 말려야 할지 말지 고민을 하다가 너무 환한 얼굴로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것을 보고 그냥 함께 웃기로 했다. 그녀는 나에게 좋은 물건을 줘서 감사하다며 손수 만든 과자를 건네주기도 했다. 첫 번째 중고 거래를 한 후 난 묘한 기분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다가 그녀가 건네준 과자를 한입 깨물어 먹었다. 과자는 달콤했고, 웃을 기분이 아닌데도 웃게 만드는 힘은 오직 사람에게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가게를 하면서 사람 자체에 회의감이 많이 들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니 참 *아이러니 하기도 했다.


두 번째 분은 몸집이 퉁퉁한 아주머니셨는데 바퀴 달린 무거운 의자를 손수 차에 싣고 가셨었다. 아주머니는 남편이 다리를 다쳐서 걸을 수 없으며, 끝까지 자기를 부려먹는다며 가는 내내 계속 투덜거리셨다. 불만이 가득 찬 *볼멘소리를 듣기 싫어서 난 아주머니를 어떻게든 빨리 가게밖으로 내쫓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집에서 남편을 앉혀 끌고 다닐 의자를 찾아보고 있다가 마침, 내가 올린 물건이 눈에 띄어 거래를 하러 오셨다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계속해댔다. 아주머니의 이야기에 대꾸해 주기 싫었지만 아직은 사장인 나는 뭐라고 대답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네네 거렸고, 결국 아주머니가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이 포키라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폭주기관차처럼 말을 쏟아내던 아주머니는 여기에 액세서리 가게가 있다는 걸 진작에 알았다면 머리핀이라도 사러 왔을 거라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하며 떠났다.


세 번째 분은 가게에서 내가 제일 아꼈던 원목 책상을 가지러 온 오십 대 아저씨였다. 원목 책상은 나와 남편이 가게를 준비하면서 처음 가구점에 갔을 때 보고 반한 물건이었다. 나는 진한 갈색의 고무나무로 된 그 책상을 참 많이 좋아했었다. 가게에 놀러 왔던 친구들은 원목 책상을 보고 촌스럽다며 놀렸지만 나는 그 책상과 내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졸음이 오거나 하면 난 늘 그 위에서 쪽잠을 청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묘하게 나는 나무냄새가 참 좋았었다. 또한 인생의 몇 안 되는 행복한 순간인 프러포즈를 하던 날 케이크를 올려놨던 책상도 그 책상이었다. 참 많은 순간들을 함께했던 원목 책상을 마지막으로 보내며 나는 이제 정말 모든 게 끝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몸에 병이 생겨 폐업을 결정했을 때 모든 것이 미워 보이기만 했었는데 돌이켜 보니 다 내가 아끼는 것들이었다. 가게는 내가 좋아하는 것의 집합소였고, 난 그 물건을 하나하나 떠나보내면서 가게를 처음 시작했었던 나의 다짐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조명 하나에서부터 나의 마음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고, 난 그들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언제나 이별에는 아쉬움이 남았고, 난 그 아쉬움마저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기로 했다.


평소 물건들을 툭툭 던지던 안 좋은 버릇마저 고치게 한 나의 소중한 물건들은 이제는 좋은 주인을 찾아서 떠났다. 그동안 가게를 운영하면서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감사한 일이 하늘에서 별처럼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경험을 했고, 혼자서 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일을 어떻게든 해내는 기적을 맞보기도 했다. 내 삶이 확장되는 순간들을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내가 가장 두려워했었던 건 이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러니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


*볼멘소리

명사 서운하거나 성이 나서 퉁명스럽게 하는 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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