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마지막 디펜스
25일 9시 마지막 디펜스 날이 밝았다. 준비는 이미 한 달 전부터 되어 있었고, 5번이 넘는 리허설을 사수와 했기에 걱정은 없었다. 드디어 끝이 나는 구나라는 생각뿐이었다. 이 날을 위해 2년이 넘는 시간을 달려오지 않았는가. 짜릿한 감정이라던가 심장이 터질듯한 기분은 없었다. 그저 오늘은 실내복을 벗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발표를 하는 날이었을 뿐이다. 기차를 타고 학교에 가서 발표를 하는 게 아니라 내 공간에서 해야 하기에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생각보다 덤덤했고 극적이지 않았다. 처음 프랑스에서 석사를 하러 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이 날을 상상해본 적은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 바빴다. 아니 벅찼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2018년 9월부터 버텨오다 보니 어느덧 2020년 11월 25일에 와 있었다.
프랑스에서 석사 학위를 받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대학교 학사 3년 후 대학원 2년. 혹은 프레빠 2년 (혹은 대학교 학사 3년) 후 그랑제꼴 3년. 대학교는 평등하다고 하지만 그랑제꼴은 랭킹이 존재하고 중요하다. 낯선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 난 한국 대학교 시스템을 두 가지로 나눴다고 생각했다. 모두에게 주어진 교육의 기회와 소수를 위한 교육의 공간을 구별한 시스템. 교육 자체는 모두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네가 받은 교육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는 여기까지라고 상한선을 그어놓는다. 교육은 평등하다 하지만 계층이동 사다리는 평등하지 않다.
그랑제꼴은 고등학교 같은 느낌이다. 시간표가 정해져 나오고, 공부하는 기간을 압박에서 견디는 시간이라고 정의한다. 네가 무엇을 배워가든 중요하지 않고 그저 우리가 밀어붙이는 압박을 견딜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렇게 정해진 틀을 강요받는다. 2년 내내 불평을 하고, 교수에게도 학교에도 직접 불만을 제기했을 만큼 문제가 많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성공을 보장한다는 걸 믿을 만큼 멍청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과소평가되지 않으리라는 걸 알기에 디플롬을 향해 다들 버틴다. 나만 버티는 줄 알았는데, 다들 버티는 거였다. 마지막 학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세상에 기여하기 위해 연구로 발자취를 남기고 싶다던가. 통계가 너무 좋아 교육의 바다를 헤엄치고 싶다던가. 원대한 꿈을 안고 같은 교실에 앉아 있던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난 깊이 있는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9시 45분 때론 8시에 시작해 5시에 수업이 끝나고 온갖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남아서 10시까지 팀플을 하다 보면 꿈은 무슨 하루하루 살아남는 게 먼저다. 때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는지 회의감이 몰려든다. 몰려드는 감정에 파묻힐 만큼 여유롭지가 않아서 툭툭 털어버리고 그냥 하게 된다.
방학은 없다. 투썽 방학 1주일 뒤에 시험이 붙어있고, 그나마 노엘 방학 2주엔 숨을 돌릴 수 있다. 다시 부활절 방학 1주일 뒤에 시험을 꼭 붙어 넣는다. 여름엔 인턴을 해야 한다. 인턴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고 학교와 회사, 내가 계약서를 작성한다. 인턴은 이력서를 위한 게 아니라 학교에 보고서를 제출하고 6 크레디트짜리 평가를 받는다. 2018년 9월부터 2019년 5월까지 60 크레디트짜리 수업을 듣고, 6월부터 8월까지 2-3개월짜리 인턴을 했다. 그렇게 한 학년을 버텨낸다.
2019년 9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수업을 듣고, 4월부터 6개월 인턴을 한다. 6개월짜리 인턴을 한 주제로 졸업 논문을 써야 한다.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그동안 해왔던 인턴이랑은 달랐다. 한국에서 했던 2개월, 6개월짜리 인턴은 매일매일 주어진 소위 "짜치는" 일을 해야 했다면, 마지막 인턴은 목표 자체가 졸업 논문이기에 온전히 내 연구만 하는 거였다. 힘든 시간도 있었고, 쉽지는 않았지만 2년간 느꼈던 압박에서 벗어나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에 마음이 편했다. 하나만 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던지. 인간의 불확실한 기억은 이렇게 삶을 더 아름답게 품는다. 연구란 게 나한테 딱 맞는 일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프랑스에서 박사를 하는 동안 받게 되는 금전적 보상이 매우 적단 걸 알게 되기 전까지는.
사수에게 "흐어어어 이따 보자"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미리 접속해 있으려고 8시 반에 들어가니까 비밀번호가 다르단다. 아... 몇 번의 시도 끝에 로그인에 성공했다. 8시 55분 사수가 접속했다. 잘할 거라고 응원의 말을 들으며 심사위원 둘과 지도 교수를 기다렸다.
지도 교수는 심사위원 중 한 명일 뿐 인턴을 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다. 친구들은 좋은 교수를 만나 조언도 얻었다던데, 하필 내가 제일 원하지 않았던 지도 교수가 걸렸다. 5월에 지도 교수가 누구인지 엑셀 파일로 받았는데, 우리 과 친구들 모두 학과장이거나 우리 과 교수랑 연결되었는데 나만 이 교수가 또 걸렸다. 지독한 인연이다.
작년에 제출한 인턴 보고서를 해당 교수가 채점했다. 20점 만점에 4점은 회사에서 평가하고, 16점은 교수가 보고서를 읽고 점수를 주는 방식이다. 사수는 매우 긍정적인 피드백과 4점을 주었지만, 교수는 8점을 주었다. 인턴 담당 오피스에서 전해준 엑셀 파일은 총점수 말고도 세세한 분야에 대한 피드백과 점수를 위한 칸이 있었는데 텅 비어있었다. 채워지지 않은 엑셀 파일에 8점. 이렇게만 있기에 오류인 줄 알고 오피스에 메일을 보냈다. 문제가 있다고. 아니란다. 교수가 그렇게 보낸 거라고 했다.
친구들이 이야기해 준 바로는 이랬다. 예전에 교환학생 상담을 하러 교수를 찾아갔더니, 쌓여있는 보고서를 보여주더니 채점을 이만큼이나 해야 한다며 한숨을 쉬더라. 그러고 보여주는 게 이건 통계가 없으니 8점. 이것도 통계가 없으니 8점. 8점. 8점. 8점.... 최소한의 피드백도 없었다. 피드백이 있어야 마지막 인턴을 할 때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지 무엇을 더 심도 있게 다뤄야 할지 알 수 있지 않은가. 내가 받은 점수는 최하였지만, 그게 내 인턴 경험 자체를 망가뜨리거나 의미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진 않았다. 내겐 점수가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국제기구에서 배운 점도 많았고, 꼭 하고 싶었던 경험이었다.
이 교수가 다시 걸렸으니 얼마나 짜증이 치밀어 올랐겠는가. 당장 학과장에게 이메일을 썼다. 작년에 내가 했던 일에 대해 어떠한 코멘트도 없이 교수가 16점 만점에 8점을 줬고, 내가 발전할 수 있는 여지도 혹은 조언도 주지 않았다. 올해 하는 인턴은 나에게 소중한 6개월짜리 연구인데, 이 일의 끝자락에 또다시 8점이 있으리라 생각하면 벌써부터 참담하고 두렵다. 혹시 지도 교수를 변경해줄 수 있는 가. 너무 걱정이 된다.
다음 날 긴 답장이 왔다. 교수는 해당 연구와 가장 관련이 있는 사람을 배정했다고 설명해줬다. 올해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나를 안심해줬고, 내가 원하면 다른 교수로 바꿔줄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다른 교수는 경제학 전문이라는 것이다. 네? 제가 하는 건 제약 실험 쪽인데, 경제학 교수라니요. 친구들과 상의도 하고 하루 정도 고민을 한 끝에 눈물을 머금고 설명해주고 안심시켜줘서 고맙다고 그냥 같은 교수로 하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이후 난 어떠한 점수에도 미련을 갖지 않았다. 8점을 주라면 주라지. 뭐 어쩌겠나. 그건 더 이상 내가 손댈 수 있는 일이 아닌 걸.
인턴을 시작하고 2개월 안에 지도 교수에게 3장짜리 note d'étape을 보내야 한다. 연구 계획서 같은 개념이다. 내 지도 교수는 어떠한 답장도 하지 않았고, 피드백도 없었다. 놀랍지도 않다.
9시가 되자 마지막 디펜스가 시작되었다. 20분 동안 발표를 하고, 20분간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나는 자리를 뜨면 심사위원 2명, 지도 교수 1명, 사수 1명이 토의를 하고 사수가 자리를 뜬다. 3명이서 토의를 하고 나에게 점수를 준다. 20분은 잘 흘러갔다. 2주 전에 회사에서 한 시간짜리 발표를 했기에 줄이는 게 일이었다. 20분짜리로 어떻게 만드나 많은 고민을 했고, 하다 보니 20분으로 줄일 수 있었다. 혹시나 해서 사수와 지난주에 또 한 번 리허설을 했는데, 사수도 "Tu connais tout par coeur déjà. 너 이미 다 준비되어 있잖아 (이미 마음으로 다 알잖아)"라는 말을 했다.
20분 질의응답은 걱정이 되었다. 너무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라서 어떤 대답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내가 제출한 50장짜리 보고서만 주야장천 읽으며 준비했다. 심사위원 두 명이 먼저 질문을 했다. 영어로 발표를 했지만 질의응답은 모두 프랑스어로 진행되었다. 둘 다 좋은 글을 써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많은 노력과 연구가 들어있는 글이었고, 읽기 쉽게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풀어냈고 수준 높은 영어로 쓰여있었다고. 오 예쓰 마음이 놓였다.
질문도 소위 말하는 나쁘거나 삐딱한 질문이 아니었다. 얼마만큼의 시간을 리서치에 할애했고, 코드를 짜고 패키지를 만드는 데 썼는지. 연구가 회사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혹은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내가 만든 패키지에 접근할 수 있는지. 수많은 모델이 있다고 했는데 왜 해당 모델들을 선택한 것인지. 시뮬레이션 데이터만 보고서에 있는데 실험 데이터는 보고서 제출 이후에 분석을 돌린 건 지. 아니면 이해를 위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는 거였다. 코로나로 인한 내 상황이 어땠는 지도 물었다. 처음 4개월 동안 온전히 재택근무를 했다고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지도 교수가 차례가 왔다. 많은 리서치 연구를 한 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기본 모델이 왜 이런지 설명해 줄 수 있냐고. 왜 log 된 변수에 exponential이 같이 있냐고 이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해당 변수가 log normal distribution을 따라야 하기에 그걸 연구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형식이라고 설명했다. 이건 보편적인 게 아니라 이 분야에서만 사용되는 방식이라 사수가 마이크를 켜고 추가 설명을 해줬다.
다시 질문이 날아들었다. 자신은 무슨 모델이든지 검증을 하는 걸 좋아하는데 기본 모델이 맞는 모델인지 검증해봤냐고. 안 했고 할 수 없었다고 답변했다. 내 연구 과제는 회사에서는 해당 모델을 실험 데이터에서 사용하는 데 이후에 어떤 방법론을 사용해야 하는지가 목적이었다고. 해당 모델은 내가 건들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고, 전제로 깔고 가야 했다고. 교수는 "네가 비판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구나"라며 알겠다고 했다. 물론 교수는 손으로 모든 수식을 증명해봤고, 나의 appendix에서 수식 오류를 발견했으나 작은 거라고 했다. 그러고 내가 한 일을 재밌게 읽었고 고맙다고 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떤 지 박사 연구를 할 생각은 없는지. 참고한 논문들이 어떤 모델을 사용했는지 등등 어렵지 않은 질문들로 20분이 지났고 나는 종료를 눌러 자리를 떴다. 결과는 이틀 이내로 나올 거라고 했지만, 그전에 남겨두고 싶었다. 상황이 어땠는지 그리고 나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했고, 아무리 점수가 상관없다지만, 그 점수에 영향을 받을 걸 알기에 그전에 이 순간을 담아내고 싶었다.
지독한 교수와 인연도 이렇게 끝이 났다. 칭찬을 절대 안 하는 교수였는데, 코멘트도 없던 교수였는데 칭찬으로 마무리를 했다.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가득했던 나의 마지막 디펜스도 이렇게 끝이 났다. 기분 좋게 살랑이는 바람같이 지나갔다.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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