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어쩌겠어. 이번 생은 취업을 해야 하는 걸.
힘들다. 누구나 겪는 일이고, 어차피 겪어야 하는 일이지만 오늘도 취준생의 하루는 한숨으로 채워진다. 거절을 받아도 툭툭 털고 다른 데 찾아보면 되는 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거절은 받아도 받아도 받기 싫고, 상처를 남긴다. 그리 대단한 일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단 하나의 직장만 합격하면 된다. 그게 이렇게까지 힘들 일인가 싶다. 세상 살이 쉬운 게 또 어디 있나. '어쩌겠어. 해야지.' 마음을 다시 잡고 노트북을 연다. 넘쳐나는 통장 잔고만 있다면 이렇게 취업하지 않아도 될 텐데. 이번 생은 이미 글렀고, 2345번째쯤 다시 생을 반복하면 돈만 쓰며 살 수 있겠지. 어쩌겠나. 이미 태어난 걸.
승낙보다 거절에 더 익숙할 때가 되었는데, 말랑한 마음은 쉽게 상처를 받는다. 쉬울 것이라 생각한 적도 없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겠다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다 좋은 경험이라고 곱씹었다. 석사 1년 차 인턴을 찾을 때도 10월부터 여러 군데 지원하고, 포럼도 참가하며 진땀 흘리며 꾸역꾸역 자리를 지켰지만 3월이 돼서야 한 군데 합격했다. 2년 차 때는 조금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10월부터 면접보고, 포럼에서 진땀 흘리고, 3월이 돼서야 한 군데 합격했다.
계속 거절을 받다 보면
"이게 내가 갈 길이 아닌가. 나는 이런 회사랑 맞지 않나. 내가 너무 부족해서 그런가."
모든 게 내 탓으로 향한다. 어느 회사도 어느 면접에서도 '네가 부족해서 그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인턴은 1명을 뽑는 것이기에 그저 나보다 더 적합한 지원자가 있었을 뿐이다. 아는 데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2년 동안 내가 해봤던 것과 내가 해보고 싶은 것에서 흔들렸다. 문제는 정도의 차이였다. 내가 해보고 싶은 게 미친 듯이 열정을 담아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수준이 아니라 "해보면 어떨까. 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정도였기에. 바스러지는 자존감과 힘든 걸 감당하면서 시도해야 하나. 남들은 쉽게 찾는 것 같은데 나만 이리저리 치이면서 뒤쳐지는 느낌이었다. 틀린 느낌은 아니다. 내가 가장 늦게 인턴을 찾았으니까.
"각자 맞는 일이 있는 거지."
"다 좋은 경험이다."
다이어리에 적어놨던 말이다. 다른 친구들도 각자 시련을 겪으며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았을 뿐이다. 2년 반 동안 석사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점은 비교하면 될 것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비교를 하면 나만 초라해질 뿐이었기에. 오늘 무엇인가를 배웠다면 충분하다고, 이렇게 면접이라도 보면 경험도 쌓이는 거라고. 나의 플래너는 빼곡히 스스로를 토닥이는 말로 채워졌다. 내가 듣고 싶어 할 말을 적어냈다.
돌이켜 보면 힘들 게 얻는 두 번의 인턴 모두 내가 원하는 분야에서 좋은 경험이자 발판이 되었다. 국제기구에서 한 인턴은 통계학이라는 전공 공부에 취해, 어렵고 복잡한 모델만을 따라가려 했던 내 멱살을 잡아 현실로 끌어당겼다. 내가 쓰고 있는 선글라스에 적힌 정의가 무너졌던 경험은 내가 벽을 세우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했다. 내가 옳기 위해 이리저리 끌어다 붙였던 말들은 내가 쌓아둔 벽돌더미였다.
제약회사 연구실 인턴은 살면서 6개월 동안 하나의 일만 하면 되는 진귀한 경험이었다. 나는 연구를 하기 위해 고용되었고, 6개월 내내 하나의 연구만 하면 됐다. 다른 연구를 서포트하거나, 연락을 대신한다거나, 다른 분석을 하거나 하는 게 하나도 없이 온전힌 나에게 주어진 주제를 파고들면 됐다. 스스로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프랑스어와 영어를 오가면서 이렇게 해냈다고, 2년 동안 고생한 게 이렇게 좋은 결과로 나오는구나. 내가 뿌듯했던 과정이자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바로 취업을 했다.
라고 이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내 삶은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닌가 보다. 주인공이 좀 평탄하고 잔잔하게 살면 좋으련만. 아무래도 주인공이 이리저리 고난을 겪으며 강해지는 성장 드라마인가 싶다. 11월에 좋은 성적으로 좋은 결과로 마무리를 했고, 좋은 감정은 잡을 수 없는 시간처럼 그저 흩어졌다. 다시 나는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고, 역시나 거절의 연속이었다.
인턴이 마치기까지 기다렸던 건 두려워서였다. 나는 지원을 안 하고 있기에 아직 거절을 받지 않는 것이다. 취업을 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있는 것이어야 했다. 나는 지금 코드를 돌리고 보고서를 쓰고 발표 준비를 하는 데 몰두하고 있기에 뛰어들지 않는 것이다. 현실을 마주하는 게 두려워서 조금 미뤄봤지만 시간은 야속하게 흘렀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을 들이미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런 일은 하기 싫은데. 이런 환경에서 일하기 싫은데. 나름의 경험을 통해 쌓아 온 기준이었지만,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짧은 지식으로 모든 걸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당장 눈앞에 결과가 주어지지 않을 때, 내가 내린 선택에 가장 먼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선택하지 않은 길은 내가 앞으로도 알지 못할 길일 텐데. 하다가 안되면 다른 길로 가지 뭐.
기다려야 하는 입장은 매번 힘들다. 거절이거나 승낙이거나 빨리 결과라도 나오면 그나마 다행이다. 지원서를 보내고, 이메일을 보내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시간이 걸리고 당장 무엇인가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닌 걸 알고 있지만 그걸 매일 받아들여야 하는 건 힘들다. 불안함 속에서도 잘 헤쳐나갈 것이라 믿는다. 불안할수록 가만히 있을 게 아니라 더 노력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불안한 건 잘하고 싶기에 꼭 이뤄내고 싶기에 간절하기에 느끼는 감정이니까. 그만큼 나에게 소중한 선택이고 중요한 일이라는 거니까. 그 불안함에 이 손을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해낼 것이라는 걸 안다. <2020년 12월 8일>
당장 내일도 면접이 잡혔다. 잘했으면 좋겠다. 여러 회사들도 연락을 해 오고 있고, 기다리면 좋은 자리가 날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야 한다. 버티는 거니까. 언제는 하루아침에 가장 먼저 이뤄냈나. 매번 가장 마지막에 도착하지 않았나. 빠른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엄마의 말을 오늘도 다시 되새겨 본다. <2021년 2월 8일>
면접을 보지만 결과는 '기다려'이다. "너 너무 멋진 지원자이고 면접도 즐거웠어. 근데 우리 지금 주니어 자리가 없어. 우선 너 cv 갖고 있다가 자리 나면 연락 줄게." 에휴. 한숨이 나오고 불안감이 다시 나를 사로잡는다. 내가 어떻게 더 할 수 없다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자리가 없다는 데 어쩌겠어.
불안함을 표출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는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가 온전히 나한테만 집중해서 관심을 표출하겠느냐고.
"이 락다운에 누구랑 말할 수 있는 게 어디야.
면접도 말하는 거잖아.
어휴 대화할 상대가 있는 게 어디야."
허세다.
다 허세다.
오늘도 허세를 부린다. 괜찮은 척 재밌는 척. 타들어 가는 마음을 감추고 부끄럽고 창피했던 순간들을 넣어둔 채 재미난 에피소드라며 풀어낸다. 이런 면접은 이랬고 저런 면접은 저랬고. 슬픔과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조상들 덕이다.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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