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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O 지나친 조각들 Mar 29. 2021

코로나 시대에 맞는 두 번째 생일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정말 최악이다 너

팬더믹 시대에 두 번째 생일을 맞았다. 어린 시절에 생일은 특별해야 했다. 특별한 날. 내가 축하받는 날. 파티의 주인공이 되는 날. 모든 수식어를 가져다 붙였다. 왜 내 생일인데 축하해주지 않지. 나의 특별한 날을 잊고 지내는 친구들이 야속하다고 느꼈었다.



이제는 생일에 큰 기대를 두지 않는다. 나에게는 내가 태어난 날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흘러가는 하루라는 걸 알기에. 잊지 않고 축하해주면 그 마음이 고마울 뿐 세상 살이 각박한데 챙기기도 힘들다. "오늘 내 생일이니까 축하해줘."라고 말을 하는 게 불편했다. 나는 모르게 남들이 알아서 나를 축하해줬으면 했고, 누군가가 챙겨주기를 바랐었다. 대접받고 챙김 받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에.



한 살 한 살 더 먹어간다는 건 기대를 내려놓는 법을 알아간다는 게 아닐까. 기대를 하고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건 매번 들뜨고 행복한 일이다. 다만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감당해야 하는 배신감, 슬픔, 실망감도 세트로 따라오는 게 문제지. 내 감정의 변화가 나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화살을 겨누게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누군가가 무엇을 해줄까라는 기대를 날려 보냈고, 내가 오늘 무엇을 할까라는 기대를 품는다. 어떤 케이크를 살지. 어떤 하루를 보낼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오늘 하루를 채울 수 있다면 그게 특별한 날이기에. 누군가 챙겨주기를 바랐던 시절에서 나와 오늘 내 생일이라고 말을 하고 축하를 받고. 누군가 먼저 축하를 건네면 잊지 않고 나라는 존재를 챙겨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먼저 든다. 나에게 특별한 날이기에 내가 특별하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닐까.


2020년에 맞이한 생일은 다른 의미로 특별했다. 물리적으로 혼자였고, 락다운이 시작된 직후였다.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후였고, 멀리서 다들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기에.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대신 케이크를 사서 노래를 부르고 밝은 웃음을 전해주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마스크를 끼고 30분을 걸어 빵집에서 딸기 타르트를 사 왔다. 햇빛이 내리쬐는 테라스에 접이식 의자를 욱여넣고서는 선글라스를 끼고 내린 커피를 마시며 딸기 타르트를 먹었다. 역시 프랑스는 디저트의 나라야. 얼마 지나지 않아 벌이 돌아다니기에 냉큼 다시 방으로 들어와 창문을 걸어 잠갔다. 밤에는 영화 캐럴을 봤다. 예상하지 못한 불안감으로 둘러싸인 세상 속에서 나름 잔잔하고 무난한 하루를 보냈다. 감정이 큰 폭으로 움직이지 않아도 그저 좋았다. 그 잔잔함을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나 하는 새로운 기대를 품었다.



2021년에 맞이한 생일은 작년보다 더 따스했다.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다 함께 스카이프를 하자며 에라스무스 친구들에게 말했다. 주말에 산책을 같이 하자는 친구들에게 좋다고 오늘 내 생일이야라며 먼저 소식을 건넸다. 아침 10시 반에 가족들이랑 보이스톡을 하면서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멀리 있어서 너무 아쉽네. 맛있는 거 사 먹어."


눈물을 또 찔끔 삼켰다. 언제나 보고 싶고 그리운 나의 우주였던 가족들. 이제는 나만의 우주를 만들겠다고 멀리 날아왔지만 역시나 가족은 눈물 버튼인 게 틀림없다. 울기 싫어서 얼른 괜찮다고 허세를 부렸다.


"에이 뭐. 나 대신 맛있는 거 먹어! 우리 내년에 더 축하할게 많겠다."


해외에 살면서 이런 날이 참 아쉽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점. 더 이상 흘러가는 일상을 공유할 수 없다는 점. 묵묵히 응원하고 잘 살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는 점. 물리적으로 먼 거리를 마음 한편에 밀어놓고 지내지만 오늘은 참 그 거리가 야속하게도 와 닿는다. 다행히도 가라앉는 마음을 따라갈 시간이 없다. 12시까지 친구 집에 도착하려면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친구들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초대해줘서, 디저트는 당연히 내가 사가야지라는 마음으로 타르트 세 개를 샀다. 일하는 중간에 시간을 내줘서 같이 축하해주는 것도 고마운데. 내 생일에 내가 먹고 싶은 케이크를 고르는 건 특권이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내리쬐는 햇살에 기분이 다시 좋아진다.



피자도 케이트도 준비해준 친구들. 오랜만에 침 나올 정도로 마음껏 웃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끝나간다. 친구들이 준비한 케이크만으로도 벅차서 내가 사 온 케이크는 선물로 주고 가겠다고 했다. 지하철 타기 전에 에펠탑 근처를 걸어 다니면서 친구가 이게 뭐냐고 생일은 원래 받아야 하는 날이라고 한다.


"야 무슨 이런 걸 사 왔어. 네 생일이잖아."

"내 생일이니까 사 왔지."

"정말 최악이다 너."


최악이라는 말이 이렇게 기분 좋게 들리다니. 크 어른이 된 기분이다. 생일이 받아야 하는 날이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생일은 내가 알아서 챙기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선택권이 나에게 있다는 건 깜짝 선물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짜릿한 일이다.



저녁에는 에라스무스 친구들을 모아놓고 3시간 동안 온갖 이야기를 나눴다. 1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우리는 프랑스에, 이탈리아에, 영국에, 독일에 갇혀 지낸다. 누구는 박사 과정에 들어갔고, 누구는 석사 과정을 마무리하고, 누구는 병원에서 일을 하고, 누구는 직장인이 되어 삶을 꾸려가고, 누구는 직장인이 되려 발버둥 치는 중이다. 참으로 많은 게 변하기도 했지만 많은 게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우리가 함께 만났던 그 시간이 얼마나 다행인지. 하필 그 시기에 만날 수 있던 게. 함께 나눈 시간보다 떨어져 각자의 일상을 일궈낸 시간이 더 길어졌다. 아직도 우리는 "만약 우리가 올해 캠퍼스에 갔다고 생각을 해봐"라며 우리가 나눴던 시절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되새긴다.



내년 생일은 또 다르겠지.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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