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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O 지나친 조각들 May 08. 2021

마음껏 기대하고, 실망하고, 무너지고 싶다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무너지는 게 두려운 날들

마음껏 나라는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데 그 어느 때보다 온전히 이 순간을 느끼는 날이 적어졌다. 걱정 없는 삶은 없겠지만 요즘 더 움츠러드는 시기를 보내는 중이다. <척척석사 생존기>라고 이름을 붙인 건 학위를 받기 위해 버텨내야 하는 순간들을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생존엔 끝은 없고 먹고사는 문제도 무너지는 마음도 담아낼 줄이야.



온전한 한 어른의 역할을 하며 살아갈 줄 알았는데, 아직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어제보다 오늘의 내가 더 단단하고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오늘의 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내일의 내가 해낼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시간은 날이 갈수록 길어지기만 하고 마음은 점점 더 피폐해져 간다. 누구나 겪는 길이라는 데 다들 어떻게 잘 버텨냈는지. 오늘 하루를 살아남은 사람들이 강한 사람들이라는 걸 느낀다.



기대하고 실망하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나는 기대를 누구보다도 먼저 내던져 버린다.

기대가 가져오는 설렘보다 그 뒤에 몰아치는 실망을 감당하기가 두려워진다.


폭우가 쏟아지는 거리에서 작은 우산 하나를 펼쳐 들고 걸어가는 기분이다. 다리는 이미 비에 젖어 축축한 데 머리는 괜찮으니 됐다며. 가로등이 밝히는 밤 길을 계속 걸어간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 날들이 꼭 더 낫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욕심이 넘치는 나는 그래도 내가 가는 이 길이 선택하지 않은 길보다 더 낫기를 바란다. 무엇을 지나치고 무엇을 얻었는 지는 쏟아지는 빗줄기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저 우산 하나에 기대어 걸어가는 중이다.



분명 나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겪고 싶어서 비행기를 타고 나왔지만, 그게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온 건 아니었다. 다른 길을 걸어보고 싶고, 결코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순간을 우연찮게 만나게 되는 일이 좋았다. 그 과정에서 살면서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도,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도, 잊고 싶은 시간들도 있었다. 그 당시를 어떻게든 버텨냈지만 내가 원했던 일은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건 하나였는데 그보다 많은 감정과 사건이 뒤얽혀 휩쓸어갔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들이 있다. 인생의 대부분의 순간이 그렇겠지.



이리 휩쓸리고 저리 부딪히며 마음은 매번 아파왔다.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도 몰랐고 그냥 무너졌었다. 딱히 생각을 고쳐먹고 하루 사이에 마음이 단단해졌던 것도 아니다. 그저 시간이 흐르고 또 무너지면서 조금은 무뎌졌다. 무뎌진 마음 뒤편에는 무너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존재한다. 여기서 무너지면 어떻게 일어나야 할지가 더 막막하기에 그저 버텨보는 것이다. 마음껏 무너지기에 나는 혼자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고 상상조차 되지 않는 그 순간이 두렵기에. 1인분의 역할을 하겠다면서 내가 무너지면 누가 나를 책임져줄까라는 생각에.



마음껏 실망하고 무너지고 싶다. 걱정 없이 다시 일어나면 된다는 믿음으로 다시 내려놓고 싶은데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잊어버렸다. "어떻게든 살아남겠지"라는 믿음과 "이 정도로 무너지면 안 돼"라는 걱정이 줄다리기를 한다. 불안이 많은 내 삶은 아직은 걱정이 멱살을 잡아끌며 어떻게든 걸어가는 중이다.



기대라는 이 감정은 아무리 가라앉히려 해도 두더지 게임을 하는 것 마냥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내가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만큼 애정도 생기고, 노력을 쏟는 만큼 기대를 하게 된다. 그리고 또 실망을 하고 상처를 받는다. 이게 울어야 하는 것인지 그저 침대에 누워 팟캐스트를 들으며 넘길 수  있는 감정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차라리 명백한 거절이면 노래 들으면서 마음껏 울고 툴툴 털어버릴 텐데, 기약 없는 기다림은 그저 피가 말린다.



오늘 2번째 면접을 본 연구소를 포함하면 2021년에 13번의 인터뷰를 봤다. 아예 서류에서 걸러졌다고 거절 메일이 오거나 아니면 소식이 없다. 면접을 보고 "너 참 좋은 지원자야. 근데 우리가 주니어 미션이 지금 없어서 한 번 찾아볼게."라는 말만 반복된다. 인턴을 마치고 이 업계에서 계속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에 그저 붙들고 있었다.  같이 졸업한 친구들은 이미 각자의 분야에서 취업을 하고 이사를 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중이다.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 혼자 뒤쳐져있는 걸 받아들이는 건 참 어렵다. 내가 보는 나와 시장이 평가하는 나는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힘들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버티는 거밖에 없다.



더 많은 거절이 삶에 기다리고 있는데, 왜 이리 쉽지 않은지. 언젠가 익숙해지겠지 하고 살아왔는데, 익숙해지고는 있는 것인지. 힘들어하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이 터널의 끝엔 밝은 빛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저 이 어둠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아오 증말 취준 힘드네.

<2021년 04월 15일>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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