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가 나를 재단하거나 나에 대해 단정 짓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설사 그게 날 제대로 본 것이라 할지라도 선입견이나 단정 짓는 마음을 담은 말투라면 마음속에서 반항하는 마음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타오르기 시작한 마음은 꺼지기 어려워서 나는 어떻게든 기를 쓰고 반대의 모습을 보이려고 온 에너지를 다 써버린다. 나는 아주 작은 조각들이 모인 집합체라서 나도 나의 완전한 입체를 알지 못하며 작은 조각들은 시도 때도 없이 바뀔 가능성을 갖고 있는데 그걸 모조리 무시당하는 게 싫다. 물론 집합체 그리고 완전한 입체 이야기가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인 건 잘 알고 있다. 난 특별하다, 뭐 이런 게 아니라 유독 나는 저런 면을 무시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
당하고 싶지 않은 짓은 내가 남에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쉽지 않지만 노력을 위해 의식하려고 신경 쓰려고 노력한다. (노력을 두 번 쓸 정도로 노력한다. 이건 내가 나름 신경을 쓴다는 의미도 되지만 정말 어렵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런 내가 이제 태어난 지 이제 이 년도 되지 않은 아이를 앞에 두고는 자꾸 까먹는다. 그래서 늘 단정 짓고 마음대로 재단해 버리고 그것에서 벗어나면 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넌 대체 종잡을 수 없다며 (가끔이지만) 화를 낸다. 아주 사소한 생활의 단면에서부터 아이의 본성이라 생각할 만한 진지하고 깊은 것까지 다양한 것으로.
아이는 고기를 잘 먹지 않았다. 단단한 식감을 좋아해서 상대적으로 흐물흐물한 고기의 식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잘게 잘라 줘도 크게 줘도 바싹 구워 줘도 부드럽게 익혀 줘도 뱉어냈다. 그래, 넌 고기를 싫어하는구나. 내가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 괜찮지만, 잘 먹이고 싶은 엄마 마음 깊숙한 곳에서 늘 속이 상하는 일이었다. 많이 시도하다가 이제는 넌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 그래 그럼 다른 단백질을 찾자 하는 마음으로 고기를 구워주지 않은지 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철분 보충을 위해 구워둔 소고기를 냅다 주워 먹는 게 아닌가. 너무 신나고 기특하고 기뻐서 내 몫의 고기를 몽땅 잘라 주었다. 그러다 그 자리에서 다 먹어 치우는 아이를 보고 아니, 갑자기 왜? 넌 고기를 싫어하잖아?라고 정말 소리 내서 물어봤다. 아직 말도 대답도 못하는 아이를 앞에 두고 정말 이상(이 말을 쓰는 것도 참 이상하지만, 그 순간에는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한 애라는 생각이 앞서서 말로 나와버린 것이다. 이것 말고도 어떤 취향이나 기호를 보였기에 그게 아이의 고정된 면이라고 생각해 버리고 거기에 맞춰주다 어느 날 다른 모습을 보이면 내가 알고 있는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에 아니 갑자기 왜? 넌 이런 아이였잖아! 아니 갑자기 왜 변한 거야? 뭐 이런 류의 반응을 몹쓸 태도를 자주 보였다. (자세한 설명 없이 눙치는 것처럼 넘어가는 건 어떤 아이템이었는지 어떤 사건이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기 때문이다... 슬프다... 그 감정만 남아있다... 또륵)
그러다 문득, 아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이제 막 세상에 온 아이에게 완전 백지에게, 아직 해야 할 경험도 선택해야 할 기호도 구만리인 이 아이에게 뭘 벌써 자꾸 고정적인 시선을 두려 하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선입견도 단정도 재단도 그렇게 싫어하는 내가! 내가! 내 아이에게 그런 시선과 마음을 보였다니. 너무 실망스러웠다. 왜 그랬을까 생각하느라 몇 날 며칠 마음이 무거웠다. 짧은 내 생각이 내린 결론이란, 변수가 많고 정신과 육체적 에너지 소모가 절대적으로 큰 육아에 있어서 사소하고 엄청 부족한 데이터를 기반으로라도 일반화하며 무엇 하나라도 단순화시키려 했던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럼 조금이라도 편하니까. 그런 내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인데 내가 고정시켜 버린 아이의 어떤 면에 대해 다른 모습을 보이면 아이를 탓하고 문제 삼기까지 했다니. 휴. 정말 별것 아닌 일이지만 (꼴랑 안 먹던 고기를 잘 먹게 된 한낱 먼지 같은 일을 이렇게 확대했다는 것도 참 웃기다...) 내게 많이 반성할 것을 던져주었다.
자꾸 넌 그렇잖아, 너 이거 좋아했잖아, 저거 싫어했잖아 이런 데이터로 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옆에서 지켜본 아이는 늘 변한다. 조금은 타고난 면모인가 싶은 것도 정말 사소한 기호도 아무 이유 없이 훽훽 변하고 또 갑자기 그전으로 돌아갔다가 또 다른 모습을 보이고. 그게 당연하다 싶다. 아직 뭔가가 굳어지기엔 가능성이 가득하고 부드럽고 유연한 마음과 정신일테니까.
구름 같은 아이의 몸과 마음을 단정 짓지 않기 위해서 어디 이마에라도 써붙이고 다녀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에휴, 어렵다.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