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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기유 Aug 26. 2024

내 방 찾아 삼만 리


지난 이야기: 대학교 마지막 학기, 화자인 '나'는 취직이 확정되며 환경의 변화를 앞두게 된다.



마우스 휠만 쉴 새 없이 도르륵 도르륵 돌아가고 있다. 아무리 스크롤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부엌하고 구분되어 있지도 않은 방 한 칸을 월세 60만 원에 관리비를 별도로 내 가면서 살아야 한다니. (2010년대 초반 기준)

옳지, 방 사진도 집세도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 CCTV설치, 경비원 상주, 엘리베이터 있음, 기타 등등. 흡족한 표정으로 화면을 훑는데 주소가 보인다. 드래그해서 지도 사이트에서 검색해 본다. 지하철 역이 몇 블록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 데다 으슥한 골목을 지나야 하는 곳이다. 더 좋은 조건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창을 닫는다.

“집 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겠지? 이제 직접 보러 다니면 더 뼈저리게 느껴질걸?”

엄마는 걱정하는 건지 놀리는 건지 모를 말을 한다. 그리고 전세 매물로 범위를 넓혀 보라고 한다. 하지만 불과 어제 뉴스에서 전세 세입자가 집주인 부탁에 주소를 이전했다가 대부업자보다 근저당권 순위가 밀려난 안타까운 사연을 봤고, 멀쩡히 계약하고 전입신고를 했어도 위험에 처한 사례를 인터넷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부모님께 큰돈을 도움 받아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기에는 겁이 났다. 무조건 월세로 시작할 것이니 더 이상 말씀 마시라고 당부하고 다시 모니터를 향해 앉았다.



*


습한 기운이 몸에 들러붙는 듯한 더위 속으로 역을 나서니 미리 연락을 나눈 공인중개사가 차로 마중을 와 있었다. 임장에 처음으로 고른 동네는 환승 없이 지하철 한 라인으로 통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틀어진 차를 타고 이동하며 첫 집까지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차가 막혀서 걷는 게 더 빠를 듯했다.

이윽고 큰길에서 한 줄 들어가 있는 곳에 위치한 건물에 도착했다. 북쪽 출입구에서 어둑한 느낌이 훅 끼쳤다. 동행한 엄마 역시 주변을 둘러보며 못마땅한 눈치였다. 방 자체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뭐, 실제로 생활 중인 세입자가 도어록 비밀번호를 맡기고 출근해 있는 상태였고, 문 열린 욕실에서 향긋한 샴푸 향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살림살이를 보니 여자 방인데 아무리 중개사라도 남자에게 도어록을 공유하는 데에 놀라며, ‘집을 거래하는 건 이런 거구나’ 놀라워하며 싱크대에 쌓여 있는 설거지거리로 눈길을 돌렸다. 중개사는 이후로도 두 집을 더 보여주며 장점을 설명했다. 집 자체만 보면 크게 모난 구석은 없는 곳들이었지만 역으로 가는 거리가 너무 번잡하고 거리도 애매했다. 중개사는 연신 이만하면 굉장한 역세권이라는 말을 하며, 기존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다 지하철로 통근하고 있으며 만족하며 생활 중이라고 했다.

“어느 집이든 애매한 게 문제예요. 나쁠 것도 없지만 좋을 것도 없어 보여요.”

그 자리에서 계약을 하고 싶은 곳은 없었다. 약속한 시간이 끝나 감사 인사를 하고 중개사와 헤어졌다. 눈길 닿는 곳마다 보이는 건 사람 사는 집이었지만 어떻게 된 건지 집 구하기는 어렵기만 했다.


점심식사를 하고 역에 가까운 주상복합 건물로 향했다. 1층에 있는 공인중개사무소에 매물 안내를 청했다. 마침 보여줄 만한 집이 있다며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탑승하고 문이 닫히는데 중년 남자가 달려와서 문을 손으로 잡아 멈추고는 뒤늦게 탑승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연신 우리 쪽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그가 여기 사는 사람인지 잠시 들른 행인인지 불안한 추리를 하게 만들었다. 내리는 층이 달라 곧 헤어졌고, 우리는 복도를 지나 매물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 역시 세입자는 외출 중이었다. 향긋한 향이 감돌고, 가로로 긴 방의 큰 벽 가득한 통창에서는 푸른 하늘과 약간의 식물이 보였다. 아래층 상가 건물이 더 넓은 면적이라 그쪽 옥상을 정원으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중개사는 지금 살고 있는 아가씨는 스튜어디스이고 공항버스가 바로 앞에 서는 장점이 있어서 여기에서 산다고 말하며, 결혼을 하게 되어 방을 빼게 된 좋은 방이라고 덧붙였다. 아직 20대 초반인 내게 그런 이야기는 별로 와닿지 않았지만 예쁜 인테리어와 넓은 방, 좋은 향기가 이 방을 마음에 들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는 다른 동네를 생각해 봐야겠다고 했다.

“점심 먹고 봤던 그 집은?”

“넌 거기가 마음에 들어? 옆에 나이트클럽도 있던데 밤 되고 술 취한 사람이 복도 와서 어슬렁대도 아무도 모르겠더라. 거기 살다가 아까 그 남자 같은 사람이랑 또 엘리베이터 같이 타면 어쩔 거야? 아무튼 그 건물은 아니야.”

“흐음.”

“다른 집들도 그렇고, 동네가 지저분한 느낌이야. 모텔도 많고. 너 시험도 끝났고 아직 시간 있으니까 다른 곳도 봐 보자.”

“알았어.”

체크해야 할 사항을 생각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닌 통에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집을 구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흔히들 인연이 될 집이 따로 있다는데, 그건 어떤 느낌일까? 막연한 궁금증과 무거운 눈꺼풀, 다가오는 입사일. 호기심은 바닥났고 점점 걱정이 설렘을 넘어서고 있었다.



*


며칠 후, 엄마가 밝은 표정으로 내 방에 들어왔다.

“기유야. 엄마가 대학생 때 기숙사 의무 기간 끝나고 제기동에서 아파트 방 한 칸 들어가서 살았다는 얘기 한 거 기억나?”

기억의 저편, 어린아이 두 명이 있는 4인가족이 사는 아파트에서 방 한 칸을 세 놔서 엄마가 함께 생활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파트 건물의 독특한 구조나 이웃, 집주인 가족에 대한 에피소드도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지.”

“그렇게 사는 건 어떻게 생각해? 아파트에 방 한 칸 빌려서 사는 거. 해볼 만하겠어?”

잠시 떠올려 보았다. 이전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런 형태로도 살 수 있다니’ 신기했었지만 옛날이야기라고 무심코 들었었다. 나를 대입해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같이 살 사람들이 어떠냐에 따라 달렸지. 그런데 요즘도 그런 식으로 방을 내놓나?”

그 말에 엄마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따라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내가 찾아냈지.”



모니터에 떠 있는 정보는 제법 흥미로웠다.


OOOOO역 앞 OO아파트, 38평

보증금 300만 원, 월세 40만 원 (관리비 없음)

집주인 거주 중. 방 한 칸 월세 놓습니다. 여성만 가능.



지도 사이트에서 검색해 보았다. 지하철역 출입구 코앞이다.

“괜찮네.”

“어때, 부동산에 한번 전화해 볼래?”







안녕하세요, 진기유입니다.

가끔 글 말미에 인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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