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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구나무 May 24. 2022

수학여행 1969

객선에서 내린 3학년 서연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덜컥 울음부터 쏟아낸다. 선원이 내려준 여행용 트렁크를 끌고 나머지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다. 배가 들어오기 한참 전부터 애를 태우던 엄마는 그런 딸을 덥석 안는다. 입에 물린 아이스크림과 눈물이 뒤범벅되면서 서연이가 뱉어내는 말은 바로 곁에서조차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런데도 엄마는 연신 딸의 머리칼을 올려주고 팔다리를 만져가며 두서없는 질문들을 쏟아낸다. 마치 이산가족이라도 되는 양 모녀간 상봉은 금세 객선 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은다. 겨우 4박 5일 제주도 수학여행이었고 인근의 무녀도 초등학생 5명과 신시도 본교 9명 학생과 야미도 분교 3명이 함께 다녀왔지만, 태어나 처음 집을 떠났던 막내의 귀환을 엄마는 그렇게 맞는다. 함께 다녀온 6학년 큰딸 아현이는 시종일관 무덤덤하다. 인솔했던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선유도 초중학교 다섯 명 아이들은 저마다 마중 나온 가족을 따라 흩어진다. 여전히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던 서연이도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트렁크는 엄마가 끌었다.      


영화가 개봉된 것은 50년 전이다. 1969년 발표된 유현목 감독의 『수학여행』은 섬마을 아이들의 서울 여행기를 담고 있다. 원로 코미디언이었던 구봉서와 영화배우 문희가 섬마을 김 선생과 그의 아내 역을 각각 맡았고 80여 명 아역 배우들이 출연했다. 영화는 1960년대 선유도와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비록 흑백 필름이지만 망주봉을 끼고 해가 지는 모래사장은 여전히 아름답다. 돌담길로 이어지는 허름한 초가들과 한창 서해 조기잡이가 풍요롭던 시절 돛을 세운 중선배들의 모습이 새삼스럽다.      


섬사람들 절반이 평생 발 한번 밟아보지 못했다는 육지, 뭍으로 향하는 배가 멀어질 때마다 아이들은 바다 너머 또 다른 세상을 꿈꾸곤 했다. 바퀴 달린 것이라곤 기차는 물론이고 리어카나 자전거도 구경해보지 못한 아이들은 수학여행이란 단어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섬 학교의 유일한 교사인 김 선생은 서울 견학을 결심하지만, 계획은 쉽게 풀려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돼지와 토끼를 직접 길렀고 틈틈이 조개를 캐서 비용을 마련했지만 “군대 가고 시집가면 어차피 나갈 것인데 일찍부터 대처 바람 들인다”며 혀를 차거나 더러는 “김 선생이 서울 사는 가족이 보고 싶어서 추진하는 일”이라는 뒷소문도 돌았다. 흉흉한 소문은 뭍의 교장선생 귀에 먼저 들어갔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울에서 보내온 아내의 안부 편지에는 아빠의 얼굴도 모르고 자란다는 딸아이 소식까지 섬마을 선생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우여곡절 다 겪어가며 마침내 배를 타기로 한 날, 아이들은 새벽부터 집 앞에 몰려왔지만 뜻밖에 오기로 한 배가 기관 고장을 일으켰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조기가 한창 몰려드는 철이라 달리 배편을 마련할 수도 없었지만, 배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소망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경찰서장과 교육장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마련한 고깃배를 타고 군산에서 기차로 갈아타고 아이들은 서울역에 닿았다. 좌충우돌 섬마을 아이들의 여행기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기차에 오를 때 신발을 벗어야 하는지 그냥 타도 되는지를 다투고, 난생처음 보는 남대문에 문턱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고, 여관방에 전깃불이 신기해서 껐다 켰다를 재미 삼다가 텔레비전에 나온 선생님의 “모여라” 소리에 아닌 밤중에 창경원으로 몰려가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한다.   

       

선유도를 낙도의 대명사로 세상에 알린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1968년 11월 14일 자 경향신문에는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다.  


올해 「국민이 주는 희망의 상」, 대상의 배 처자(裴處子) 여사

선유도의 어머니, 고투로 낙도 개발, 학교 세우고 생활로 개선시켜   

  

당시 58세였던 배 처자 여사는 선유도 국민학교 교장이었다. 1933년 동경에서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와 전주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낙도 국민학교 교사로 자원하여 선유도로 들어왔다. 교실 4칸에 학생 수는 200여 명, 선유도 사람들의 학구열은 높았지만, 낙도라는 현실의 벽은 아이들 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학교의 벽을 넘어 주민들의 생활 여건을 개선하려고 젖양을 치도록 하고, 우량한 닭 종자를 보급했다. 선유도 인근의 섬 주민들과 연합 체육대회를 열어 화합을 도모하고, 천주교와 여러 기관의 협조를 받아 고등 공민학교를 세워 어른들의 교육에도 힘을 기울였다. 졸업한 아이들을 위해 새로 교실 두 칸을 마련하여 정규 중학교 인가까지 받았다. 무엇보다 배교장은 섬마을 아이들의 안목을 키워주기 위해 서울의 여러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어 인근 16개 섬 800여 명 아이들의 서울 구경을 성사시켰다. 아이들의 체험담이 「소라의 꿈」이라는 여행기로 만들어졌는데 책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배교장은 경향신문이 주최했던 「국민이 주는 희망의 상」을 수상했고, 사연을 접했던 유현목 감독이 이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하게 되었다.                


영화 『수학여행』은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수학여행 마지막 날, 섬마을 아이들은 자매결연을 맺은 서울의 한 국민학교로부터 리어카를 선물로 받는다. 열심히 노력해 낙도 선유도를 서울처럼 잘 사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아이들은 다시 섬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오랜 사연을 기억하는 주변 마을 사람은 드물었다.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았다. 해수욕장 넘어 선유 3구 노인회장인 이강순 씨의 기억 속에서나마 어렴풋이 더듬어질 따름이었다. 이미 40년이 다 될 만큼 묵은 이야기고, 대부분이 외지인이기도 한 탓일 것이다. 수학여행을 다녀왔던 섬마을 아이들 대부분도 이곳에 없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직장을 얻고 결혼하기 위해 섬을 떠났고 육지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 선유도가 아이들의 꿈을 담아 키우기에는 여전히 멀고 작은 섬이었을까.  

    

선유도 초중학교 교정 한쪽, 교실로 오르는 중앙 계단 오른편에 수수해 보이는 검은 비석 하나가 배 처자 교장의 공적비로 남아 있다. 섬을 떠난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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