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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구나무 Jul 12. 2022

유기견 멍개

1. 선착장 포동이     


아무래도 노을이의 전성시대는 막을 내린 것 같다. 선착장 바로 위쪽 언덕에 자리 잡은 어촌계 횟집 포동이 때문이다. 마을 어촌계에서 운영하다 수지가 맞지 않아 문을 닫아두었던 횟집이었다. 김제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새 주인은 명도에 펜션 부지를 장만했고, 고군산 일대 주민들과 친해질 겸, 섬 생활에 적응할 겸 해서 봄부터 횟집 운영을 맡기로 했다. 두 살배기 수컷 진돗개 포동이는 이삿짐 배를 타고 선착장을 통해 섬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이삿짐을 부리는 동안 포동이는 횟집 주변은 물론이고 배를 타고 내리는 선착장 일대와 매표소 넘어 장자도 교회 앞까지 바쁘게 돌아다니며 오줌을 지렸다. 영역 표시를 하는 거라고 했다. 영특해 보이는 포동이는 주인에게 충실했고 자기의 임무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CCTV 사각지대인 횟집 뒷마당 쪽에 마련한 개집은 등산로를 타고 내려오는 길목이자 장자도 해안선을 따라 마을을 훤히 지켜볼 수 있는 자리였다. 이따금 산책을 따라나서는 시간을 빼고 포동이는 줄곧 매서운 눈매로 경계근무를 섰다.   

  


포동이의 등장으로 동네 개들 사이에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제일 난감해진 건 장자도 토박이 노을이었다. 장자도 터줏대감 노릇을 해오며 십 년도 넘게 장자도 암컷들을 독차지해왔던 늙은 수컷. 젊은 수컷의 도전 아닌 도전을 정면 대응하기에 벅찰 나이였다. 체구는 비슷해도 세월을 이겨낼 수 없는 체력 탓인지 노을이는 교회 앞 경계를 넘지 않고 마을 안쪽에서만 배회했다. 아직 장자도의 정세 변화에 어두운 대장도 개들이 평소처럼 펜션 주인을 따라 선착장까지 오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여객선을 기다리는 십여 분, 횟집 새 주인이 펜션 주인들과 웃으며 인사도 나누고 배달 서비스도 가능하다는 사업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도 대장도에서 넘어온 개들은 포동이의 사정거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낌새를 알아챘는지 대장도 개들은 슬금슬금 포동이 눈치를 살피며, 주인 곁을 벗어나지 않았다. 개들끼리 뒤엉키는 사고가 터지지는 않았지만 여차해서 싸움이 붙기라도 하면 방조제 끝은 달아날 곳 없는 막다른 길이다. 전동카트에 짐을 옮겨 심고 손님들이 선착장을 벗어나기 전까지 개들의 눈길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하지만 봉순이나 점순이, 막내 같은 암컷들은 예외였다. 그렇게 봄날이 갔다.       


2. 포동이가 떠나고    

     

뭐가 잘 안 풀렸던 모양이다. 본격적인 피서철을 앞두고 해수욕장 개장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촌계 횟집 주인이 섬을 떠났다. 포동이의 백일천하도 끝이 났다. 초소 경계병이 사라진 객선 터에 동네 개들의 나들이가 잦아졌다. 누구보다 노을이가 활달해졌다. 혼자가 아니다. 예전처럼 꼬리에 분홍 표식이 달린 봉순이를 끼고 다녔다. 달라진 건 노을이 만이 아니다. 머리와 등 그리고 엉덩이에 커다란 검은 점을 가진 점순이는 노을이를 만나면 고개를 숙인 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꼬리를 뒷다리 사이에 바짝 붙이거나 주저앉기도 했다. 아예 앞발을 구부린 채 땅바닥에 드러누워 배를 내밀기도 했다. 사람들은 무조건 복종 의사를 표현하는 거라고 말했다. 아직 어린 암컷인 막내도 제 어미를 따라 했다.      



점순이는 대장도에서 태어났다. 장자도 복합센터 아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대장도 어부상회에서 갓 태어난 강아지를 키우겠다며 소동을 피웠다고 한다. 일종의 시집을 온 셈이다. 점순이는 한 달 전에 다섯 번째 출산을 마쳤다. 불행히도 세 마리 새끼를 모두 잃었다. 곁에 두고 지내는 막내는 세 번째 배에서 태어난 여섯 마리 가운데 막내였다. 어미는 점순이지만 아비가 누구인지는 키우는 여임 씨도 몰랐다. 생김새로 보아 노을이는 분명 아닌 듯싶은데 아마도 선유도에 사는 아무개쯤으로 추측할 뿐이었다. 개들은 사람처럼 혈통이나 족보를 굳이 따져 묻지 않았다.       


3. 유기견 멍개     


선유도 해수욕장이 개장하면서 고군산 일대 섬들이 들썩거렸다. 외지인의 발걸음은 선유도를 넘어 연륙교를 타고 무녀도와 장자도, 대장도로 쉽게 넘나들었다. 장자도를 통해 들어오는 낭만적인 섬 여행을 기대하는 관광객도 부쩍 늘었다. 멍개가 나타난 시기도 그 무렵이었다. 목줄이나 인식표도 없었다. 내가 머물던 집에 느닷없이 들어와 점순이와 막내가 남긴 밥그릇을 정신없이 핥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는 인기척에 슬쩍 눈길 한번 줬지만, 주둥이를 떼지는 않았다. 목덜미 털이 빠져 헤싱헤싱하고 심하게 물린 자국으로 보이는 상처가 깊었다. 말라붙은 피딱지가 여기저기 엉겨 붙은 몰골에 뱃가죽에 드러난 갈비뼈가 지난 며칠의 행적을 말해주고 있었다. 척 봐도 버려진 유기견이다. 한참을 먹고도 빈 그릇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더니, 졸음이 밀려오는지 두어 걸음 떨어져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점순이에게 다가가 코를 파묻었다.     



이튿날 아침에도 불청객은 떠나지 않았다. 눈치를 보니 아예 눌러앉을 낌새다. 여임 씨는 평소보다 많은 개밥을 끓여냈고 밥그릇 하나를 따로 챙겼다. 욕심 많은 막내는 이쪽저쪽 밥그릇을 넘나들었지만 다툼은 없었다. 새카맣고 그렁그렁한 눈망울, 강아지보다 조금 큰 체구. 귀염을 많이 받고 컸을 텐데…… 측은했다. 목욕이라도 시켜야 할 것 같아 우선 상처를 살피다가 깜짝 놀랐다. 처음엔 그냥 말라붙은 수박씨려니 싶었는데, 오른쪽 귀 안쪽에 두 마리, 정수리 한가운데도 한 마리, 오른쪽 턱 밑에서 또 하나 그리고 왼쪽 앞발 안쪽 겨드랑이에서 떼어낸 진드기는 살이 통통 올라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피 빠는 진드기를 다 떼어내고서야 비누를 풀어 샴푸를 시켰다. 모처럼 목욕이었던지 스르르 눈꺼풀이 풀렸다. 가위로 대강 털을 깎고, 소독약이며 연고를 챙겨 발랐다. 그날 저녁 여임 씨의 질겁하는 소리에 놀라 내다보니 열린 현관문 틈으로 거실까지 들어온 식객이 꼬리를 살랑대고 있었다. 도시의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진 버릇이겠지만 인간의 경계를 넘어온 개를 나무라는 여임 씨의 반응도 개를 풀어 키우는 섬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음 날부터 멍개는 거의 온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선착장에 다녀올 때나 선유도로 산책 나갈 때도 그림자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아현이는 며칠 전 학교 다녀오는 길에 선유도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걸 본 적이 있다며 아는 체를 했다. 발전소 직원이나 매표소 아주머니는 ‘뭔 개’냐고 물었다. 출처를 알지 못하니 뭐라 답을 내지 못했지만, 그날 이후 장자도 사람들은 그 친구를 ‘멍개’라고 불렀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며칠 후부터 멍개 가는 길에 점순이도 따라붙었다. 남악리까지 제법 먼 길도 함께 다녀왔고 선유도 해변에 나가 노을 구경도 한참 했다. 새끼를 잃고 무기력하던 점순이가 생기를 되찾은 듯했다. 막내는 집 주변 이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개들보다 사람과 더 가깝게 지냈을 멍개에게 함께 할 가족이 생긴 것이다. 어쩌다 노을이랑 부딪치면 멍개는 후다닥 점순이 뒤로 숨곤 했다. 유난히 수컷을 경계하는 늙은 수컷이어도 노을이는 멍개를 집요하게 괴롭히지는 않았다. 다행이었다. 슬슬 섬을 떠날 채비를 하면서 멍개를 데려갈 고민도 잠깐 해봤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멍개는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짐을 꾸려 나오는 날, 모두가 따라 나왔다. 무슨 눈치를 챘는지 이번에는 막내도 함께. 한 가족을 이룬 세 마리 개의 배웅을 받으며 그해 7월 말 나는 섬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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