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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단지 Oct 05. 2021

먹지도 않을 것을 3년째 냉장고에 두는 이유

냉장고 문을 열었다. 깊숙이 손을 뻗어 반찬통 하나를 집었다. 초록색 뚜껑의 투명한 사각통.

저기 있은지가 벌써 3년째다. 항상 저 자리에 있기에 눈을 감고도 단번에 찾을 수 있다.  저게 3년째 냉장고에만 있다는 게 이상하단 걸 나도 안다. '구석에 처박혀있었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 그러니 꺼낼일도 없었다...' 몰라서 두는 게 아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반찬을 꺼내다 눈이 마주쳤고 '잘 있구나. 잘 있어야지...' 눈으로 말을 걸었기에 잊은 것도 아니다.  손을 뻗은 적도 손이 닿은 적도 없이 그저 자리만 지키고 있다. '그 자리 그대로구나.' 눈으로 봤으니 이제 냉장고 문을 닫아야지.


그런데 콩잎이 묻는다. 먹지도 않을 나를 왜 이리 두냐고... 손이 머뭇거린다. 그날을 기억하는 아련함과 아픈 속을 또 후벼 파야 한다는 망설임 앞에 꺼낼까 말까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러다 통을 꺼내 들었다. 먹을 건 아니지만 뚜껑을 열어본다. 한참만에 여는 것이라 뻑뻑해진 뚜껑은  잘 열리지도 않았다. 한 귀퉁이를 비집어 올려 틈새를 벌렸다. 뚜껑이 열리고 그 속에 든 콩잎김치가 보였다. 한눈에 봐도 못 먹을 음식이구나 싶다. 그렇다고 썩거나 상한 것도 아니다. 그날 이후로 동면에 빠져 그 모습 그대로 잠이 든듯하다.


반질반질 촉촉했던 양념은 물기가 다 날아가 비쩍 말랐고 가을빛을 닮아 노랗게 단풍 들었던 콩잎 색은 누르튀튀하니 탁해졌다. 아무리 냉장고 성능이 좋대도 시간을 이길 수는 없었나 보다. 단단한 무쇠도 녹이는 세월을 무슨 재간으로 이기겠냐? 너도 속절없이 먹혔구나...

구수하니 곰삭은 향이 나던 맛 좋던 냄새도 시금털털하니 떫은 냄새가 돼버렸다. 한 장 한 장 떼내 숟가락에 올리면 밥 두 그릇은 거뜬히 먹고도 남을 밥도둑이던 것이 형편없는 꼴이 되어 통에 담겨있다.


콩잎에게 대답해준다. 넌 먹힐 일이 없을 거라고 넌 먹으려 두는 게 아니라고... 네게서 나는 어머니 냄새를 맡으려고 보고 싶은 어머니를 보려고 그날을 더듬으려고 너를 두는 것이라 말해준다. 의미 없는 일인 걸 안다. 나도 안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라도 어머니를 기억하고 싶어서다. 콩잎김치를 만들고 있던 어머니가 보여서 그 모습이 보고파서 꺼내보기를 되풀이한다. 어머니가 가시 고선 차마 먹지를 못했다. 아까워서 먹지를 못해 아꼈다. 뱃속으로 넣어버리면 다신 먹지도 보지도 못할 것이기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일 년, 이년, 삼 년이 되었고 지금까지 냉장고에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먹을 일없이 꺼내보았다, 다시 넣었다 하는 이 의미 없는 행동을 계속할 듯하다.


"어머니 애들이 콩잎김치가 먹고 싶다네요" "그 쿰쿰한 냄새나는걸 애들이 먹어? 그 맛을 알아?" 어머니는 신통하다는 듯 말하셨다. 큰애랑 작은애가 며칠 전부터 콩잎김치가 먹고 싶다고 했었다. 주먹만 한 덩이로 한 묶음씩 실로 묶어 파는 삭힌 콩잎이 마트에는 당연히 없거니와 시장에 가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만 부르면 해결 안 될 게 없기에 어머니를 찾았다. "그게 왜 없겄냐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갖고 가야지." 말하며  집에 올 때 사 오시겠다 하셨다. 드디어 어머니가 오셨고 가방 한 귀퉁이에서 삭힌 콩잎을 "옛다. 여기 사 왔지" 하며 꺼내셨다.


애들 뿐 아니라 나도 먹고 싶던 반찬이라 좋았지만 다섯 덩이나 되는 콩잎을 보는 순간 저 많은걸 언제 양념을 다 바르나 싶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콩잎 하나하나마다 양념 바르느라 바지런 떨 손과 쪼그려 앉아있느라 쥐가 날 다리가 걱정이었다. 하지만 쿰쿰한 냄새가 코에 닿는 순간 어느새 입안엔 군침이 돌았고 잊었던 맛이 다시 떠올랐다. 일거리가 많다거나 손이 많이 간다거나 하는 귀찮은 일 정도는 대수롭지 않은 듯 잊어버리고 입안에선 하얀 쌀밥에 콩잎김치를 걸쳐먹는 그 맛만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바쁘셨다. 어쩌면 콩잎김치가 먹고 싶다는 손자들의 말을 들었을 때부터 바쁘셨을지도 모른다. 성격 급한 어머니가 제일로 못 참는 건 시장기가 돌기 시작한 배꼽시계였다. 배고픈걸 어머니는 못 기다려하셨고 못 참아하셨다. 어머니 말을 빌리자면 정신을 못 차린다 하셨다. 시장끼가 느껴지면 뭐라도 입안에 넣어 고픈 배를 달래줘야 했다. 안 그래도 먹는걸 못 기다리는 어머니신데  손주들이 먹고 싶어 한다는 말까지 들었으니 맘이 얼마나 급하셨을까... 아마 정신 못 차릴 정도가 아니라 정신이 나갈 일이었을 거다. '콩잎김치 그까짓 게 뭐라고 우리 애들 입맛 다시며 기다리게 만들어. 어서 가서 해줘야지. 이 할미의 손으로 맛나게 해 줘야지' 하셨을 거다. 어머니의 가장 큰 무기는 음식이었다. 어머니는 못하는 요리가 없었고 맛없는 음식이 없었다. 그 무기를 당장 꺼내 들어야 하건만 그러질 못해 여러 날 끙끙 앓으셨을 거다. '애들한테 언제 가나 언제 가나... 가기만 하면 내가 맛나게 해 줄 텐데...' 목이 빠지게 기다리셨을 거다.


삭힌 콩잎은 하루정도 물에 담가 군맛을 우려내고 그걸 건져다 팔팔 끓는 물에 넣어 팍팍 삶으셨다. 그리고 콩잎을 건져내어 헹구고 꽉 짜고 헹구고 꽉 짜고... 묶여있던 끈을 풀어 하나하나 씻으셨다. 묶여있을 때부터 많을 줄 알았지만 풀어놓으니 산처럼 수북하니 쌓여 소쿠리 한가득이었다.

맛나게 해야 된다며 진하게 멸치육수도 내셨고 거기에 액젓, 고춧가루, 마늘, 물엿, 쪽파, 통깨를 넣어 빨간 양념을 찰방찰방하니 만드셨다. 그리곤 콩잎 한 장 한 장마다 양념을 바르셨다. 얌전하게 양념 발라진 콩잎은 식탁에 올려졌고 밥상도 노란 단풍으로 물들었다.


이건 먹어본 사람만 아는 맛이다. 짭조름하니 매콤한 양념과 콩잎의 질기면서도 연한 느낌과 푹 곰삭아서 나는 구수한 냄새가 어우러져 밥을 절로 부르는 맛이다. 흰밥에 척척 올려먹으면 가을밥상에 이만한 밥도둑이 없다. 이날부터 콩잎김치는 밥상에 매일 올랐고 쌀을 많이도 축냈다. 한 그릇으로 끝날 것을 두 그릇, 세 그릇 부르게 했고 뚝딱뚝딱 밥그릇을 잘도 비워지게 했다. "배부르다"하면서도 자꾸 밥을 찾게 하는 맛이었다.  그 맛에 중독되지 않고서야 이렇게나 미련스레 밥을 먹을까 싶었다. 손자들 밥숟가락에 콩잎김치를 하나하나 걸쳐주느라 어머니 손은 양념 바를 때 보다 더 바쁘셨다. 이 하찮은 게 뭐가 그리 맛있냐며 벙글벙글 웃으셨다. 자갈치시장에서 여기까지 그 냄새나는 콩잎을 꽁꽁 싸매어 들고 온 보람이 넘치고도 남는 듯 보였다. 이 정도면 돈 주고도 못 사는 고생이 아닌가 싶게 어머니는 즐거워하셨다.


커다란 반찬통 하나론 모자라 두 개를 가득 채운 콩잎김치를 보고 뿌듯해하시며 "이 정도면 겨우내 먹겠구나" 겨울철 뜨뜻하게 덥고 잘 이불 하나 장만해주신 듯 든든하게 쳐다보셨다. 잘 먹고 잘 커라는 할머니 마음을 담뿍 담아주셨다. 그렇게 만들어주신 콩잎김치가 3년 묵은 그 콩잎김치다. 쳐다보기도 아까운 콩잎김치가 몇 장뿐이 남지 않았다. 이젠 먹지도 못 할 것이 되어 두고두고 품고만 있다. 쿰쿰한 그 냄새가 어머니 냄새 인양 맡아보고 안아본다.


또 가을이 왔다. 단풍이 노랗게 물들어간다. 밭에서는 초록색이던 콩잎이 노랗게 물들어갈 거고 아이들은 잊지 않고 또 콩잎김치를 찾을 거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난 해주질 않았다. 삭힌 콩잎을 사려 찾아봐도 파는 곳이 없거니와 그 맛난 양념을 어찌하는지도 몰라 쉬이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반찬 하나 만들려 그 잔손 많이 가는 일을 해야 하나 싶어 하기 싫은 거였을 거다. 물에 우려내고 푹푹 삶아내고 씻어 내고 양념 바르느라 하루도 짧은 긴 노동을 내가 해야 되나?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 고생을 사서 해야 되나? 생각도 들었다. 어머니가 보셨다면 '새끼들 배 불려줘라. 그 콩잎김치가 뭐라고 애들 입맛 다시게 허냐. 먹고 싶단 거 해주거라' 하셨을 거다.


그 사서 고생을 올해는 해볼까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콩잎김치를 만들어 빨갛게 양념 묻은 콩잎을 아이들 밥에 척척 걸쳐줄까 한다. "어머니 저 잘하죠" 말해보련다. 겨울 오기 전 어머니가 그러셨듯 겨우내 먹을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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