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잘하고 싶지만
나는 주어진 것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주어지지 않아도 잘 해낸 것이 있나 생각해보니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학생이라서 공부를 하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스펙을 쌓고, 그 안에서 최고의 결과를 내려고 최선을 다했을 뿐,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걸 찾아볼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그런 것들은 나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원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에서 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회사에서 요구하는 아이디어를 냈을 뿐, 회사원이 아닌 신분 또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최근에서야 글을 쓴다든지, 책을 낸다든지 하는, 직장인이 굳이? 하는 것들을 해보기 시작했다.
주어지지 않은 것을 하지 못했던 것은 그것들을 잘할 거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어진 것을 잘 해낸 경험도 꽤나 방해가 되었다. 그 경험이 가져다준 긍정적인 감정, 예를 들면 성취감 같은 것이 분명히 있지만, 딱히 행동해보지 않았고, 실패해보지 않았고, 따라서 실패라는 미지의 존재가 두려웠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 그런지 비범한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면서 따라오게 될지도 모를 실패를 수용할 자신이 없었다. 잘하지 못할 것을 해야 할까? 해도 될까? 주어진 것은 주어졌다는 이유로 아주 열정적으로 해냈는데, 주어지지 않은 것은 주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을 멀리 했다.
주어진 틀 안에서 열심히 사느라, 성공이나 실패는 전제조건이 행동이라는 걸 간파하지 못했던 것도 한몫했다. 조건부 확률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행동을 해야 성공과 실패가 발생하고 그 확률을 따져볼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게 내가 실패한 지점이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실패는 그야말로 지점일 뿐, 종점이 아니라는 것 역시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잘한다'라는 개념은 참 애매한 것이다. 어떤 게 잘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매일 글을 쓴다'가 차라리 명확했다. 잘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매일 쓰는 건 잘하는 게 맞다. 매일이 어려우면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일단은 하기만 해도 잘하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자에게는 일단 행동하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성과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묵혀뒀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회사원이라는, 내가 이미 확보해둔 신분이 있어서, 잘 쓰지 않아도 딱히 상관없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잘하고 싶은 마음을 방관했다. 위기의 순간도 있지만 '그냥 하는 게 잘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눌러냈다. 행동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 없다는 말만을 철석같이 믿고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잘 해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지 꽤 많은 것들이 소재가 되어줬고,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더 많은 것들이 머리와 가슴에 들어왔다. 쓰고 싶은 것들을 다 써내면서 글쓰기를 지속했다.
잘 해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마치 모든 것에 대한 처방인 것처럼 떠돌고 맴돌곤 하지만, 글쎄. 잘 해내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라, 해내면 잘하는 거다. 해내면 잘하게 된다. 잘하려고 해 가게 된다.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는 후배에게 '열심히 하면 뭐해, 잘해야지' 하고 훼방 놓는 선배들의 말도 틀렸다. 열심히 하는 게 잘하는 거고, 일단 하는 게 잘하는 거다. 누구나 무언가를 잘하고 싶어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잘하고 싶은 그 마음을 극복하는 것이 잘하고 싶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로부터 나를 독립시키고, 나와 나의 하루를 더 잘 꾸려가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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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