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의 도시 포틀랜드에서 1년간 살고 돌아와서도 생긴 고민
문신. 늙어서 나의 주책인가. 아니면 더 이상 주변의 눈치를 보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을 상징하는 것인가.
예전에 목욕탕을 가면 가끔 전신 또는 반전신 문신을 한 아저씨들이 보였다. 왜 하나 싶었는데, 일 년간 미국으로 가서 살다 보니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포틀랜드, 오래곤주,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워싱턴주 사이에 끼어 있는 동네다.
맥주, 커피, 피노누아, 대마초, 히피, 장미, 콜롬비아 스포츠 의류, 풍성한 수염... 그리고 문신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이 동네에 1년간 살면서 나는 문신한 사람들을 접하면서 왠지 나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지인들도 웬만하면 하나씩 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한다면 미국 프로농구 선수들처럼 가족 이름을 새겨보자고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경우, 예상 위치는 양 어깨에 자녀 이름, 그리고 가슴에 아내 이름. 아래 그림처럼.
아내가 본인 이름은 넣지 말라고 한다. 딸은 표정이 안 좋다. 아들은 문신이 뭔지 모르니 “좋아”한다. 아내는 덧붙여서 영화 캐러비언 해적의 조니 뎁이 전처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겼다가 이후 이혼하고 지우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아니 백년해로할 건데 그런 걸 우리가 고민할 필요 있나...
결국 난 6개월간 고민하다가 까짓것 한번 해보자 하고 타투샾을 알아보려는 순간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문신 가게를 못 가게 되었다. 애초 난 살에다가 그림 넣는 게 아플까 봐 6개월 동안 꺼렸던 거겠지.
난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귀국했다.
돌아온 후 이번엔 초등학생 딸이 귀를 뚫고 싶다고 한다. 아내 말이 딸이 미국에서부터 고민했다고 한다. 딸도 장고를 거듭하다가 작년 코로나 단계가 낮을 때 전격적으로 귀를 뚫었다. 아니, 5년은 이른 게 아닌가... 하고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아내와 딸은 뚫고 왔다.
지금도 딸은 이모가 준 귀걸이를 잘하고 다닌다.
딸도 하는데 이참에 애비도 문신해볼까...
입사 후 처음에는 줌으로 회의를 할 때 나는 내가 말할 내용만 보느라 급급해서 누가 방에 들어왔는지도 파악을 못했다. 두어 달 지나니 그제야 직장 동료들 얼굴을 익히게 되었다. 그리고 좀 더 지나니 동료들의 특징이 보였다. 한분이 팔에 문신을 새긴 게 보였다. 또 다른 분의 경우도 자세히는 못 봤지만 팔에 문신이 있어 보인다.
아무래도 공공기관이나 사기업에 비해 좀 더 자유로운 NGO여서 그런지, 아니면 이미 입사하기 전부터 자유로운 분들이 입사해서 그런지 여기 문신의 비율이 높아 보인다. 두 명밖에 못 봤는데 내가 스스로 문신할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화를 시켰다.
아니면 공공기관이나 사기업 다니는 사람들은 안 보이는 곳에다 문신을 해서 내가 모를 지도.
다시 나의 문신에 대한 생각이 꿈틀거린다.
아내는 다시 한번 본인 이름은 새기지 말라고 한다. 내가 귀는 뚫어도 좋지만 이름은 새기지 말라고 한다. 차라리 그림이나 문구를 새기라고 한다. 난 반영구적 문신을 하는데 내 가치관이 바뀌면 조니 뎁처럼 지워야 하지 않냐고 반박했다. 세례명을 제안했지만 그것도 기각당했다.
일단 논란이 많은 문신 디자인은 뒤로 하고 문신할 장소로 어깨, 손목, 발목 등 몇 군데로 추려본다.
더 늙어서 살이 찌면 가슴 문신은 이상해질 것 같다. 아내의 이름이 늘어나거나 아내를 상징하는 그림이 늘어나면 다른 사람 남편이 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여전히 많은 상황이다. 코로나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나의 문신 고민은 계속될 듯. 이러다가 70살에도 고민하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