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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치 Oct 24. 2024

64살의 슈퍼맨

등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나서야 아빠가 종종 친구분들과 등산을 다니셨다는 것이 생각났다. 한 번도 아빠랑 등산을 해볼 생각은 못했는데, 아빠랑 같이 등산을 하는 것도 재밌겠다 싶었다. 아빠한테 물어보니 생각보다도 아빠가 더 기뻐하셨다. 진작에 물어볼걸 싶었다. 아빠랑 나눠먹을 박카스를 챙기고, 그때까지 나는 등산용 가방도 없던 때라 아빠가 준 가방을 메고 함께 산으로 향했다. 


늘 그랬듯 나는 힘들어서 자주 멍하니 서서 쉬어갔다. 줄줄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고, 물도 한 모금 마신 후 심장과 얼굴 쪽 혈관이 쿵쾅대는 것이 잦아들 때까지 가만히 서 있는다. 그런 나를 돌아보고 아빠는 껄껄 웃으셨다. “잘하고 있어. 하나도 급할 것 없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천~천히 해~.”라고 여러 번 이야기해 주셨다.      

아빠의 뒤에서 아빠를 따라가며 ‘왜 아빠와 산행을 이제야 왔을까’ 싶었다. “아빠 여기 서봐. 엄청 멋있을 것 같아.” 경치 좋은 포인트에서 아빠 사진도 멋지게 찍어드렸다. 평상이 있어서 함께 앉아서 박카스도 나누어 마셨다. 박카스를 하나씩 들고 아빠와 셀카를 찍어서 가족 카톡방에 보내기도 했다. “아빠, 우리 이렇게 자주 오자!” “다음엔 사위들이랑도 같이 오자!”라고 이야기 나누며 즐겁게 내려왔다. 등산을 싫어하는 엄마는 우리가 내려오는 시간에 맞춰서 산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산한 우리를 발견한 엄마는 저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셋이 즐겁게 막걸리에 파전을 먹었다. 참 재미있는 추억이 되었다.   

    

그해 가을이 오면 아빠와 함께 등산을 한 번 더 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인생은 정말 예측불허다. 여름이 가기 전 엄청난 폭우가 내렸던 날, 아빠가 장거리 운전을 하시다가 교통사고가 나셨다. 다행히 수술까지는 필요하지 않을 정도의 갈비뼈 골절만 되었지만 산행은 무기한으로 미루어졌다. 차를 폐차를 해야 할 정도로 큰 사고였음에도 아빠가 더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회복을 하셨고, 아빠가 좋아하시는 탁구 대회도 다시 나가시고 친구 분들과 가벼운 산행도 다녀오신다. 


올해는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아빠한테 함께 산에 가자고 해야겠다.      


그렇게 아빠가 크게 한번 다치시고, 점점 나이도 들어가실수록 나는 그동안 아빠가 해왔던 역할들을 차츰 대신해야 함을 조금씩 느낀다. 물론 아직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아직은 아빠의 역할을 완전히 대신할 능력은 없다.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아빠는 내가 이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비치면 화들짝 놀라며 정말 싫어하신다. '아빠는 아직 신체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필요하지 않고 앞으로도 엄마, 아빠는 알아서 할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해도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강아지 사료 사는 것, 가족여행 때에 숙소 예약하는 것, 무거운 짐을 좀 함께 들거나 대신 들려고 하는 것, 친정집에 필요해 보이는 소소한 물건들을 사는 것 등 밖에 없다. 그럼에도 매번 그런 나를 보면 기겁을 하시고, 심지어는 불쾌해 까지도 하신다. 나는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려는 것뿐인데. 그래서 나도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면 당황스럽기도 하고, 때때로 ‘왜 이렇게까지 싫어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짜증이 왈칵 올라올 때도 있다.

      

그런데 등산할 때 나는 느꼈다. 아빠는 한평생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계속 슈퍼맨이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비록 60이 넘으셨지만 나보다 앞서 걸어가며 잠시 쉬어가는 나를 기다려주는 아빠이고 싶고, ‘잘하고 있다’라며 다독거려 주고, 이끌어주고 싶으신 것이다. 자식은 언제까지나 어릴 때의 그 모습 같고, 한평생 듬직한 보호자이고 싶은 마음. 부모 마음이란 그런가 보다. 그러니 등산할 때처럼 아빠 뒤를 따라가는 어린 딸의 모습을 버리지 않을 필요도 있겠다. 등산할 때는 내가 아직도 아빠보다 한참 느리니까. 그런 면에서도 아빠와의 등산을 자주 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그리고 아빠의 등산화를 멋지고 좋은 것으로 바꿔드리고 싶지만 꾹 참고 “아빠가 산 등산화 정말 좋아 보인다!”라고 말해드려야지 하고 다짐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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