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맞다!
전참시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데 최강희라는 배우가 나왔다. 이것저것 정신없지만 해맑은 게 딱 우리 딸 같아서 오랜만에 몰입해서 본 것 같다. TV속 최강희는 덤벙대지만 귀여웠다. 하지만 현실을 달랐다. 똑같이 덤벙대고 해맑은 우리 딸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기에 엄마인 난 걱정이 태산이다.
사랑하는 나의 큰딸은 ‘아 맞다’라는 말을 달고 산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때였다. 초등1학년이야 거의 아가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가 챙겨줬다.
상담주간이 되어서 상담신청을 하고 학교에 상담을 하러 갔다.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길 굉장히 밝고 적극적이며 열심히 수업도 듣는다고, 또 3학년때부터는 반에 회장을 뽑는다는 얘기를 해주니 눈이 초롱초롱한 게 나중에 임원 같은 걸 할 거 같다고 얘기를 해주셨었다. 근데... 아이가 책상에 책이 한가득 쌓여있다고, 매 교시마다 책이 쌓인다고, 주변에 연필이나 지우개 등을 자주 떨어뜨리고 줍지를 않는다고, 그렇게 잃어버리고는 매번 옆 짝꿍에게 빌려 쓴다고 했다. 거기다 점심시간에 애들이 나가 노는 걸 좋아하는데 5교시가 시작이 돼서 보면 우리 딸이 없다고, 밖을 보면 운동장에서 혼자 놀고 있어서 몇 번 친구들이 데리고 왔다고 한다. 그리고 잘 운다고... 감정이 풍부하고 여린 아이 긴 하지만 우는 일이 많지는 않았는데... 친구들이 놀리면 운다고 했다. (나중에 다른 엄마들한테 들어 안 사실이지만 선생님이 갱년기가 와서 감정기복이 심하고 아이들한테 별명을 지어 비꼬며 놀리고, 때리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아 그렇군요 하고 넘기기엔 심각했다. 원래 뭐든 하나 집중하면 다른 건 쳐다도 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 딸이었기에 그냥 집중력이 좋은 거겠거니 하고 넘겼던 것이 학교 생활에 지장이 있을 거라곤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길로 바로 나가 알림이 울리는 전자시계를 샀다. (키즈폰을 채우긴 했는데 학교에선 전원을 꺼놓기 때문에 알람을 맞춰놔도 소용이 없다.) 그리고 점심시간 끝나는 5분 전에 진동 알람을 울리게 맞춰두었다.
집에서 아이에게 물어봤다. 놀다가 수업시간 못 맞춰서 늦게 들어간 적이 있냐고, 있단다. 많이 그랬냐니까 많이는 아닌데 몇 번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러지 않게 조심하자고 타이르며 아까 사 온 시계를 채워주고 이 시계가 울리면 교실에 꼭 들어가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시계 덕분인지 그 뒤로는 수업시간에 늦은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 외에 놓고 다니는 것, 잃어버리는 것, 잊어버리는 것 등 여전했다. 그런 것들로 인해서 선생님한테 혼나고, 친구들이 화내고, 놀려서 울고... 그런 부분들이 너무 속상했다. 그래서 하나하나 가르치고 만들어주면 되겠지 하면서 잘 얘기하면서 달래 보기도 하고, 화도 내보고 했다. 그렇게 계속 반복 반복... 그러다가 어느 날 애한테 화를 내고 나서 문뜩
'굳이 이렇게까지 애를 잡으면서 해야 할까? 그냥 내가 챙겨주면 되지. 크면 서서히 좋아지겠지.'
라는 생각에 그 뒤로는 그냥 내가 챙겨줄 수 있는 만큼은 다 챙겨주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없는 곳에선 여전했지만 나아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7년이 지난 지금. 나아졌냐고? 똑같다. 물론 아예 나아지지 않았다 하면 거짓말이다. 컸으니까, 어느 정도는 자기 일, 자기 물건 챙길 줄은 안다. 우선 학교수행이나 숙제 등은 그래도 알아서 한다. 이것만으로도 난 감사할 정도다. 책가방은 들고 다닌다. (아주 가끔 맨 몸으로 가려고 하는 적이 있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 그 외의 것들은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얘기해 보자면 어느 날 유튜브를 보고는 요리를 하고 싶었나 보다. 불도 안 쓰고 그냥 쉽게 할 수 있는 요리였는지 나가서 이것저것 재료를 사 와 만든다고 설쳤다. 그때 난 볼일이 있어 잠깐 외출했고, 다녀오니 집이 난리가 나 있었다. 치우는 건 기대도 안 했지만 왜 주방에서 요리를 했는데 온 집안에 그 흔적들이 남아있는 건지... 안방 자기 방 거실 심지어 베란다 화장실까지... CCTV라도 달아둘걸,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싶었다.
아이의 그런 행동과 성향으로 인해서 좀 성숙한 친구들은 우리 딸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키만 컸지 애가 덤벙대고 너무 해맑거든... 그래도 너무 모범생이기에 선생님들, 일반 친구들은 우리 딸을 좋아한다.
종종 생각한다. 그냥 계속 챙기지 말고 화내고 때려서라도 가르쳤어야 하는 건지...
지금은 그런 행동들을 할 때면 화를 내고 잔소리를 하게 된다. 컸는데도 아직까지 그러면 어떡하냐고 하면서...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 사회생활이나 할 수 있을지, 나 없으면 어쩌지 싶은 맘들이 너무 크다.
오늘도 내가 ‘물통은 내다 놨어?’ 하니까 ‘아 맞다’를 시전 하신다.
난 분명 아이를 위한 일이라고 했던 행동들인데...
좋은 엄마일까? 나쁜 엄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