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그림의 단어사전

by 예그림

여러분은 '꽃'을 좋아하시나요? 일반적으로 꽃은 로맨틱한 상징, 사랑의 상징입니다. 선물로 주고받기에도 좋고, 꽃을 실제로 좋아하시는 분도 정말 많지요. 연인뿐만 아니라 어버이날에도 카네이션이라는 꽃으로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니까요. 또 꽃에 비유된다는 것은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여성에게 긍정적 칭찬이기도 하고요.

오늘은 이런 일반적인 해석이나 이미지를 넘어서 제가 가진 꽃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긍정적 이미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1. 제게 꽃은 '알레르기'의 상징입니다. 가벼운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에, 꽃은 왠지 피하고 싶어 집니다. 꽃향기가 나는 물건이나 향수, 샴푸나 비누 등도 저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특히 봄에는 잠시만 산책을 다녀도 무언가 코도 간질간질 피부도 살짝 간지러운 것을 보면, 봄의 꽃가루가 저에게는 좀 버거운가 싶기도 합니다.

2. 꽃다발과 화분은 '생명'이라는 키워드로 저에게 묶이는데요.. 꽃다발을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꽃다발'은 살아있는 생명을 잘라내어 인간이 즐기기 위한 장식으로 만드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제가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다 보니 꽃다발을 받으면 집에 가져와서도 베란다에 내어두고 문을 닫아둡니다. 그 친구가 말라죽을 때까지요... 그러면서 생명을 죽이는 듯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화분도 비슷합니다. 식물을 키워보려는 시도는 많이 하였지만, 살아 있는 친구는 없습니다. 정말 빠른 친구는 3일 만에 죽기도 했지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화분을 키우는 것이 내 욕심으로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행위가 아닐까 싶어 더 이상 키우지 못하겠더라고요..

꽃다발이든 화분이든 식물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태어남과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생명으로 피워내기보다는 꺼져가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다 보니 피하고 싶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3. '꽃'이 지닌 여성성과 수동성은 저를 불편하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단어에 성의 개념이 들어있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꽃'은 여성성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고전 시가에서 꽃이 여성이나 사랑을 의미하기도 하고, 여성을 꽃에 비유하는 것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 관용적 표현이기도 하지요.

여성성은 그럴 수 있겠지만, 주로 문학작품이나 비유를 보면 꽃은 수동적으로 그려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꽃을 피워내기까지의 생명의 성장과 경이로움을 다루는 작품들도 일부 있습니다만, 전통적 작품들에서 여성성과 결합된 꽃은 '꺾이는' 존재, '유혹하는' 존재, '아름다워야만 하는' 존재, 나비나 벌을 '기다리는' 존재, '잠깐' 피었다가 사라지는 존재 등으로 그려지거든요.

그 안에서 새로운 상징이나 해석을 만들어내는 것도 요즘의 감성으로는 가능하지만, 예전에는 수동적으로 고정된 이미지들에 반감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꽃이 가지는 긍정적 의미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 긍정성은 저를 경탄하게 하고, 성숙하게 해주기도 하지요.

4.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작은 새싹으로 시작한 풀이 생장하여 꽃을 피워내는 그 과정. 잠깐의 달콤한 성과이지만 그 꽃을 피워내기 위한 식물의 노력을 생각하면 꽃이라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자연의 산물인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말이 쉽지 비바람을 견딘다는 게 얼마나 버거운 일인가요.

게다가 식물을 잘 키우시는 분들은 그런 말씀도 하십니다. 식물이 영양분이 너무 충분하고 돌봄을 많이 받으면 꽃을 피울 필요가 없기 때문에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고난을 이겨낸 자들만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말이 멋있기도 합니다.

5. 연결하여 저는 '꽃'이라는 단어는 좀 부담스러워하지만 '낙화'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요. 학창 시절 배웠던 이형기 시인의 '낙화'라는 시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시 '낙화'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낙화는 이별이나 죽음이고 아쉬움의 이미지로 많이 쓰이지만, 이 시에 꽂힌 저에게는 성숙하게 무언가를 피워내고 다가오는 열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그리고 다음 꽃을 피우기 위해 기다리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아직 할머니가 되려면 멀었음에도 지혜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하는 것과 맞닿아있는 것 같습니다. 성숙한 사람의 상징인 것이지요.

꽃을 피우기 위한 온갖 비바람과 시련을 묵묵히 견디고, 또 자연의 섭리에 따라가야 함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 너무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6. 또 저는 수목원의 꽃, 꽃다발의 꽃보다는 자연 속의 들꽃이나 길가의 꽃들이 좋습니다. 누가 관리하지 않아도, 주인공으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것으로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

그래서 저는 봄에 피는 개나리, 붓꽃, 벚꽃, 목련 등의 꽃도 좋지만, 이 시기 길가에서 보이는 민들레, 제비꽃, 이름 모를 들꽃 들에 더 시선이 가기도 합니다. 화려하지 않고 보이지 않아도 끈질기게 그 자리에서 함께, 같이 피어나는 꽃들이니까요.


'꽃'은 그냥 '꽃'이지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결국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남들이 다 좋아하는 '꽃'을 저는 그렇게까지 좋게만 보지 않는다는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글을 쓰다 보니 '꽃'이라는 단어의 긍정적 의미를 너무 선명하게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제 단어 사전도 변화하고 있는 거겠지요.

식물이 싹을 틔워 자라고, 꽃을 피우고, 꽃이 지고, 다시 싹을 틔우는 것처럼. 제 단어 사전도 계속 변화하고 성장하고 자라고, 사라지겠지요. 그 과정 자체를 소중히 여겨보겠다고 다짐하며 오늘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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