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연예인이 삶을 마감했다. 살아 있을 때 그녀의 언행은 여러 의미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한때 그녀의 행동에 의구심을 품을 때가 있었다. 옳고 그름을 논하기보다는 왜 저렇게 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이슈도 되지 못하는 일이겠지만, 내가 아는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 급진적인 행동처럼 보였다. 개인의 철학이 점점 중요시되는 사회임은 분명하지만, 사회란 ‘함께’의 관점에서 시작한다. 그녀의 행동에도 ‘함께’가 존재하지만, 다수가 아닌 일부에 가까웠다. 그러나 일부일지라도 그녀의 언행에 따른 파급효과를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셀럽이었다. 아무런 의도가 없었을지라도 대중에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었다.
그녀의 SNS는 언제나 전쟁터였다. 그녀가 올린 사진 한 장에는 많은 사람이 댓글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날카로운 칼이 그녀를 그었고, 단단한 방패는 그녀를 지켰다. 연예부, 사회부 기자들은 그녀가 올린 사진과 사람들이 남긴 댓글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몇 줄 보태고서 알 권리라는 명목으로 기사를 올렸다. 기사에는 SNS보다 더 많은 댓글이 남겨졌고, 그 기사를 보고 그녀의 SNS로 가서 그들은 다시 글을 남겼다. 누군가는 칼춤을 췄고, 누군가는 힘겹게 방패를 들었다. 전쟁의 규모가 점점 커졌다. 가상공간이었으므로 눈에 보이는 사상자는 없었다. 그러나 곧 눈에 보일 것 같은 한 사람은 있었다.
그녀가 한 프로그램에 MC로 출연한다는 소식이 기사로 나왔다. 프로그램은 자신에게 달린 악플을 직접 읽고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올바른 댓글 매너 및 문화에 관해 이야기하며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자 함이었다. 그녀의 팬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심각한 우려를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소위 정공법을 선택했다. 우연히 첫 화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이 아닌 프로그램 자체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다음 날 기사와 댓글에는 그녀의 멘탈을 칭찬했지만, 내 눈에는 그녀의 선택이 악수(惡手)로 보였다. 몇 달 뒤 그녀는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오랫동안 유지했고, SNS 계정에는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댓글이 달렸다. 거기에서조차 전쟁이 일어났다.
나는 그녀의 팬이 아니다. 그녀에 대해 아는 것도 대중이 아는 정도이다. 그런데 그녀의 죽음이 슬프고 안타까웠다. 그녀와 일면식도, 아무런 관계도 없었지만, 그녀가 삶을 마감한 종일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심리 전문가들은 악플을 견디는 방법으로 무덤덤해야 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운동으로 몸은 단단하게 만들 수 있지만, 마음은 여간 어렵다. 누군가는 SNS에 글을 올리지 않고, 기사를 보지 않으면 된다고 하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연예인은 악플보다 무관심이 더 무섭다고 말했다. 인터뷰 기사에 댓글이 달리지 않는 게 불안하다고도 말했다. 연예인은 대중의 관심으로 연명한다. 대중에게서 멀어지면 마주하는 허망함, 많은 연예인이 불안이라 말하는 것이다. 나는 유명인이라 칭하는 부류와 몇 광년 거리에 있지만, 복잡한 감정이 들었던 이유는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세계 일주하며 내 추억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과 글을 SNS에 올렸다. 그때는 SNS를 필수로 해야 하는 프리랜서의 삶을 생각하지 않았다. SNS 마케팅이란 말조차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에게 장문의 DM을 받았다. 내가 금수저니까 퇴사하고 긴 여행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장한 추측이었으며, “부모 잘 만나서 좋겠다, XX야.”라는 말로 문장이 끝났다. 순간, 멍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면 화가 나지도 않는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을 이상한 취급 했다. 못 본 척 지나가려 했다. 그러나 거짓을 진실인양 호도하는 그의 생각과 대응에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에게 답을 보냈다. 그러나 더는 답을 받지 못했다.
프리랜서를 시작하고 책, 강연, 일상을 사진과 글로 옮겨 SNS에 올렸다. 어쩌다 보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SNS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그러면서 한 번의 이벤트라고 생각했던 그날과 비슷한 경험을 몇 번 더 경험했다. 누군가는 작가가 그런 단어를 써도 되느냐고 이야기하며 작가를 때려치우라고 말하며 팔로우를 끊었다. 그 단어는 ‘바보’였다. 누군가는 댓글에 남긴 단어를 스스로 오해했고, 왜 그런 댓글을 남겼느냐고 일방적으로 쏘아붙이며 장문의 비난을 보냈다. 그리고 팔로우를 끊었다. 누군가는 내가 책에 쓴 글을 덧붙이며 글이 왜 이리 볼품없냐고, 발로 써도 나보다 잘 쓰겠다고 말하며 팔로우를 끊었다. 그 글은 베스트셀러라 불리는 책의 인용문이었다.
그들은 내게 칼을 그었다. 얼굴도, 성별도, 나이도 모르는 그들에게 얕게 혹은 깊게 베였고, 마음의 피를 흘렸다. ‘고작’ SNS라고 생각했던 가상공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내 능력에 대한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비판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비난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애써 모른척하고 넘기기에는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이제는 그들의 맞춤법이 먼저 보일 정도로 무뎌진 것 같지만, 상처는 엄연히 상처다.
SNS를 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내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책을 판매하고, 강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와 책을 홍보해야 한다. 그곳이 SNS이며, 아무리 생각해도 SNS의 덕을 너무 많이 받았다. 강연장에서 비직장인이라면 꼭 SNS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SNS를 그만뒀을 때 내 책은 과연 얼마나 판매될 수 있을지, 내게 강연은 요청 들어올 수 있을지 불안했다. 보이지 않는 불안이었지만, 충분히 예상되는 현실이기도 했다. 나는 마음이 단단해진다는 사실과 거짓의 경계선에서 나의 눈과 귀를 속이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악플을 남기는 이유로 세 가지를 이야기한다. 여러 이유로 열등감과 분노에 휩싸여 그것을 세상이 아닌 대상에 이입하여 분노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자신의 가치를 지나치게 결부하여 좋아하는 대상과 상대되는 대상을 폄하하거나, 그저 다른 가치 자체를 경멸하는 막무가내인 경우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조약돌이건, 암석이건 개구리는 맞으면 피를 흘리거나, 죽는다. 돌에 맞지 않으려면 돌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피하면 된다. 그러나 돌이 날아오는 속도는 개구리의 행동보다 언제나 빠르다. 어쩌면 피하는 것은 불가능한 가정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개구리가 자신이 안 된다는 법은 없다는 점이다. 세상에는 양면이 존재한다. 양면을 A와 B로만 구분하지 않는다. A는 B가 되고, B는 A가 된다. 30년 넘게 살면서 느낀 여러 진리 중 하나이다.
그녀는 나와는 비교가 안 될 불안과 중압감을 겪었을 것이다. 그녀의 주변에서도 분명 그녀의 상태를 눈치챘을 것이며, 여러 해결책을 제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명의(名醫)와 명약(名藥)은 그녀에게 치료되지 못했기에 그녀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에게는 마지막 선택이 악수가 아닌 호수(好手)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점 중에 하나는 비난이 아닌 비판의 삶에 살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삶을 마감하기 전까지 불가능한 삶일 것이다. 나조차도 가능할지 자문했을 때 그렇다는 답을 쉽게 내놓지 못한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서평을 잘 쓰지 않는 이유도 나는 비평이라 생각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비난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이 글조차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이 글이 조심스러운 이유이다. 이 글을 빌려 그녀의 죽음에 진심어린 애도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