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은 남편의 부모님이니 아주 모른척하고 지내기 힘들었다. 그래서 간간히 며느리로서 해야 할 도리를 하고 지내지만 그 집 형제님들과는 굳이 봐야 하나 생각이 들어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도련님이 곧 결혼을 한다며 남편을 통해 청첩장을 보내왔다. 여태 안 보고, 연락도 안 하던 사이에 갑자기 또 만나잔다. 본인 와이프, 그러니까 나의 동서가 될 그분과 함께 부부동반으로 만나잔다.
나는 바로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그냥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도련님 와이프와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형수로 대접해주지도 않았던 도련님과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떤 표정으로 만나야 하지?
결혼식에 큰 형수가 없는 그림은 조금 민망하긴 한가 보다. 몇 년 만에 만나자고 하다니.
남편 얼굴 봐서 만나줘야 하나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 고민을 하는 동안에도 몇 년 동안 잊고 지냈던 트라우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두통이 오고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여전히 우유부단하게 나는 모르쇠라고 말한다. 이도저도 아닌, 그때와 변함없는 태도와 말투,
만나는 것에 대한, 고마움도 없어 보이는.
거기다 시댁에 가서 내가 도련님 부부를 집에 초대할지도 모른다고 떠벌리고 왔단다. 나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미친 거 아니냐고, 만날지 안 만날 지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인데 뭐가 예쁘다고 초대를 한다는 망언을 하고 왔냐고 화가 나서 물었다.
그냥 요즘은 자기 식구들에게 내가 덜 스트레스받는 것 같아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초대의 초자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하지도 않은 말을 지어낸 남편을 보면서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만날까 말까를 고민한 것조차 후회가 됐다.
아마 결혼식 핑계로 만남이 성사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눈에 선하게 보였다. 남편은 1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조금의 기대를 갖고 있었던 내가 한심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남편의 섣부른 행동에 또다시 상처받았고 아직도 내 마음이 완벽하게 아무르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너무 힘이 들었다. 간신히 잘 살고 있었는데 꼭 가야 하는 시댁 행사에 나는 또 기운이 빨린다. 지친다. 가기도 전부터.
장면이 그려진다. 외톨이처럼, 인형처럼 혼자 그렇게 서있을 나, 남편은 하하 호호 자기 가족들과 신이 나서 손님맞이를 하고 있겠지.
술만 마시면 살쾡이 같은 눈빛으로 나를 잡아먹을 듯 달달 볶던 시댁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