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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서 러닝 하기

휴가지에서도 달릴 준비가 되어 있나요??

by 냥냥별


휴가 중엔 운동도 쉬어야 하나?



쉬어도 상관없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힐링의 시간을 가지러 떠난 휴가지에서, 굳이 매일 하던 운동을 숙제처럼 꼭 해야 할 필요는 없다. '휴가' 란 말 그대로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즐겁게 놀러, 쉬러 간 것이니까. 그런데 '찐 운동쟁이'들은 휴가지에서도 운동을 쉬지 않는다.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그저 본인이 하. 고. 싶. 어. 서. 이다. 그래서 그들은 꽉 찬 여행가방 안네 운동복과 운동화까지 꾹꾹 밀어 넣는다.


예전엔 나도 TV 예능 같은 데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굳이 놀러 가서까지? '나, 운동하는 사람!'이라고 과시하고 싶어서인가?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시댁 가족들과 함께 떠난 이번 여름휴가를 떠나기 전, 4명분 짐을 싸느라 꽉 찬 여행 가방에 기어코 러닝복, 양말, 러닝 모자와 고글 신발까지 꾹꾹 밀어 넣었다. 다른 운동은 굳이 거기서까지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지만, 러닝은 달랐다. 길을 달리는 운동, 집 근처가 아닌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 그러니까 나는 그곳에서 평소에 달지지 못했던 새로운 주로를 달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러너라면 그 기회를 놓칠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기대에 부풀어 휴가지로 향했다. 포항에 있는 '오도리 해수욕장' 근처 펜션에 짐을 풀고 시원한 물회와 끝내주는 매운탕으로 배를 채운 후, 해수욕장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했다. 펜션에서 따뜻한 물에 스파도 즐기다가, 저녁엔 바베큐와 갑오징어 숙회를 곁들인 맛있는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른들은 끝없는 대화와 웃음을 샘솟게 하는 다양한 알콜의 섭취가 이어졌다. 나는 다음날 새벽 러닝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술자리를 거부할 순 없었다. 좋은 방까지 잡고 온 가족이 다 모였는데, 대화에 어색함을 없애주고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술'은 빼놓을 수 없는 묘미 아닌가?? ㅎㅎ 역시나 기분 좋아진 우리는 서로서로 칭찬을 남발하며 예전에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집어넣어 두었던 추억을 또 하나씩 끄집어냈다.


다음날 새벽 5시, 휴대폰 알람 소리에 잠이 깨었다. 알람을 끄고 한 20분 정도 고민을 했다. 어젯밤에 밀어 넣었던 알콜로 약간의 숙취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속이 안 좋은 정도로 과하게 마신 건 아니었음 ㅎㅎ) 하지만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억지로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갔다. 거실엔 벌써 일어나신 아버님 곁에 남편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해가 떴나 싶어 거실 베란다 창문을 바라봤는데, 세상에!! 붓으로 주황색 물감을 칠해 놓은 것 같은 멋진 오션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이다! 지금 우리는 나가야 한다!! 나는 남편을 흔들어 깨워 후다닥 러닝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서로의 퉁퉁 부은 얼굴은 너무 부끄러웠지만 우리는 숙소 앞 해수욕장으로 가 보았다. 거기서부터 둘만의 '해장 러닝'을 시작했다.




사실 이날의 러닝이 뜻깊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 매년 광복절에 열리는 기부런에 신청을 해두었던 우리는, 광복절 이틀 뒤인 이날에 휴가지에서 8.15km를 달리기로 했었던 것이다. 속도는 크게 의미가 없었기에 우리는 천천히 달리기로 했다. 처음에 해수욕장에서 일반 도로로 나가는 언덕길이 좀 힘들었지만 곧 적응이 되어갔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서 그런지 찻길에 차가 없고 한적해서 달리기에 너무 좋았다. 꼭 마라톤 대회 때 차량을 통제한 도로를 달리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조금 위험할 것 같아 다시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 해안 도로를 달렸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도 근처에 바다가 있지만, 여긴 또 다른 느낌이었다. 때마침 아침해가 바다에서 떠오르면서 멋진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고, 주변 경치도 너무 아름다웠다. 남.는. 건. 사.진. 이기에 우리는 도중에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이 새로운 주로를 만끽하며 8.15km를 채워나갔다.




그렇게 목표 거리를 순조롭게 완주하고 다시 돌아온 숙소 앞 해수욕장에서, 남편은 시원한 바닷물에 뛰어들어 열을 식혔다. 러닝 후 이렇게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면서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입수까지는 하기 싫어 신발을 벗고 바다 쪽으로 걸어 보았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모래알과 발등을 찰랑찰랑 간지럽히는 파도가 지친 내 다리를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결국 휴가지에서의 러닝단지 오늘도 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이렇게 우리에게 힐링을 주는 휴가의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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