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선수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껴봐
우리가 가장 쉽게 달릴 수 있는 곳은 집 근처 공원이나 찻길 옆 보도일 것이다. 나는 때로는 해변가나 산길을 달리기도 하고, 우리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이나 완전 비포장 도로를 달리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 남편이 훈련하고 싶어하는 장소는 시에서 관리하는 큰 종합운동장이다. 바로 넓은 육상트랙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 달전 그 운동장 옆에 있는 실내 체육관에서 열린 둘째 아이의 줄넘기 대회를 같이 보러 갔다가, 남편은 혼자 운동장 트랙에서 러닝을 하고 오기도 했다 ^^;;;; 하지만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 이상 가야하는 제법 먼 거리라 그 이후로 다시 운동하러 오지는 못 했다.
이번 주에는 지난번 실패했던 30km 러닝에 다시 도전해보기로 했다. 여전히 낮에는 뙤약볕이 따갑게, 아니 뜨겁게 우리를 노려보는 날씨라 해를 피하는 게 중요했다. 그런데 해가 지고 난 후에는 아이들과 저녁 먹는 시간이 걸려있어 너무 긴 거리를 뛰기는 곤란했다. 그래서 무조건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해 뜨기 전에 시작해야 뭐가 되도 될것 같았다. 새벽에 간다는 조건 하에서 장소는 그동안 남편이 가고 싶어했던 트랙이 있는 종합운동장으로 정했다. 사실 나는 장거리의 경우에는 같은 곳을 빙빙 도는 것은 지겨울 것 같아 좋아하진 않지만, 남편이 원하는 곳에 같이 가주고 싶기도 하고, 트랙에서 뛰는 느낌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토요일 아침, 분명 알람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끄고 다시 잠이 든건지... 좀처럼 떠지지 않는 눈으로 겨우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6시였다. 새벽 5시 전에는 준비해서 나가기로 했었는데 말이다. 전날 남편과 가볍게 한 잔하며 불금을 즐기긴 했지만, 아마 평일 5일동안의 피로가 쌓인 탓이 큰 것 같다. 나는 누워서 오늘은 그냥 넘길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일어나 앉았다. 그래도 일요일보다는 오늘 숙제를 끝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자고 있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창밖을 보니 다행히 흐린 하늘이라 지금 나가도 크게 뜨겁진 않을 것 같았기에, 서둘어 옷을 갈아입고 집을 챙겨 계획대로 종합운동장으로 갔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운동을 끝내고 가시는 분들이 한 두명 보였다. '역시 러너는 저렇게 부지런해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운동장 안으로 들어가니, 아직 러닝을 하고 있는 분들이 보였다. 혼자서 하는 분도 있고 대여섯명이 모여 하고 있는 팀도 보였다. 연령도 다양했다. 우리는 운동장 바깥쪽에 있는 벤치에 짐을 놔두고 몸을 풀었다. 그리고 제일 바깥쪽 레인에서 천천이 2바퀴정도를 돈 뒤, 속도를 조금 올려 6:00 페이스로 30km 뛰는 것을 목표로 훈련을 시작했다. 이렇게 선을 따라 트랙을 달리니 마치 육상 선수가 된 기분이 들어서 더 바른 자세로 달리고 싶어졌다. 그리고 주위에 차나 걸어다니는 사람 등 방해요인도 없고, 주로가 경사나 바닥의 변동이 없이 일정하니 정말 달리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다. 특히 바닥이 푹신해서 러닝화로 바닥을 차고 내딛는 느낌도 좋았다.
그리고 같은 곳을 계속 도는 구조라 내가 달리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러닝크루로 보이는 무리는 다같이 천천히 몸을 풀며 트랙을 달린 후, '인터벌 훈련'을 하는 듯 했다. 빠르게 한 바퀴를 뛰었다가 1분 정도 쉬고 다시 빠르게 달리기를 반복했다. 그들은 모든 훈련을 끝내고 나서는 또 다같이 몸을 풀고 헤어졌다. 늘 둘이서만 훈련하는 우리였기에, 때로는 저렇게 여러명이서 모여 하는 훈련이 부럽기도 했다. 다같이 하면 중간에 그만하고 싶어도 더 참고 끝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혼자 하시는 분들 중에는 우리 보다 나이가 꽤 많아 보이는 분이 묵묵히 트랙을 돌고 계시기도 했고,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시계를 계속 확인하며 천천히 뛰었다 빠르게 뛰었다 반복하기도 했다. 모두들 누가 시킨 것도 아닐텐데 이 더운날 이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보다 몸에 열이 많이 나고 땀도 많이 흘리는 남편은 갈증을 많이 느끼기 때문에, 여름에 장거리 러닝을 할 때 수분 보층이 늘 문제였다. 그래서 긴 거리를 갈때는 조끼에 마실 걸 넣고 갔는데, 오늘은 벤치에 시원한 이온음료가 준비되어 있어 바로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는 대회때처럼 2.5km에 한 번씩 가서 수분을 보충하자고 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완벽한 듯 했으나, 하늘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흐렸던 하늘은 우리가 5km정도를 뛰자 구름이 걷히면서 해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무렵 다른 사람들은 하나둘씩 훈련을 마치고 돌아갔다. 결국 넓은 운동장에 우리만 남게 되었는데, 더 일찍 일어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라 어쩔 수 없었다. 해가 뜨자 너무 뜨거워 우리는 금방 지쳐갔지만, 어떻게 짜내고 짜내어 10km까지는 채우고 잠시 쉬었다. 그만 할까 고민 하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까워 5km는 더 뛰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시작을 했는데, 역시 무리였다. 겨우 2km를 더 채우고는 장거리 훈련은 그만 접기로 했다. 대신 마지막으로 1km를 할 수 있는 최고의 스피드로 뛰고 끝내기로 했다. 트랙에서는 평소보다 더 기록이 잘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지친 몸이라 그런지 반바퀴 이후로는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그래도 끝까지 최선은 다 해보았다.
그렇게 훈련을 끝내자 온 몸에 땀이 비오듯이 줄줄 흘렀다. 우리는 땀이 어느 정도 멎을때까지 조금 기다렸다가, 운동장 본부 건물 안에 있는 화장실에 가서 세수도 하고 몸도 대충 닦고 다른 옷으로 갈아 입고 나왔다. 운동 후 늘 흠뻑 젖은 채로 돌아갔었는데, 그렇게라도 갈아입고 차를 타니 덜 찝찝해서 좋았다. 무엇보다 깨끗하고 넓은 화장실이 바로 옆에 있으니 운동을 하다 갑자기 신호가 와도 가서 바로 해결하고 올 수 있어 좋았다. (이미 러닝하면서 화장실 이슈로 몇번의 고비를 넘겼던 나이기에 ㅎㅎ) 이것 또한 종합 운동장에서 훈련하는 장점 중 하나라고 본다.
다음에는 꼭 더 일찍 일어나서 트랙에서 장거리 훈련을 해보고 싶다. 아니면 인터벌 훈련을 하기에도 최적의 장소인 것 같다. 아무튼 주말에는 이 곳을 자주 활용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