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이 가득한 날
나도,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어요 ㅠ.ㅠ
피곤이 가득한 날
어차피 점심에 또 먹을 건데
어차피 저녁에 또 입을 건데
어차피 아침에 또 씻을 건데
한 번쯤 안 해도 되지 않을까요?
한 번쯤 그냥 둬도 되지 않을까요?
하루만 하루만 하루만
오늘만 오늘만 오늘만
그냥 넘어가주시면 안 될까요?
그냥 모른척하시면 안 될까요?
아이들에게 하는 잔소리 중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씻. 으. 라. 는 말인 것 같다. 양치질, 손발 씻기, 머리 감기, 샤워까지... 아기시절에는 그냥 내가 안고 가서 뽀독뽀독 씻기면 되니까 잔소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대신 내 몸도 씻기 귀찮을 만큼 피로가 쌓이는 육아기에 매번 아이들 몸까지 씻기니 몸이 피곤했다. 크고 나서는 몇 번의 연습 과정을 거쳐 각자 알아서 씻게 되니까 너무 좋았다. 내 몸도 피곤하지 않고, 씻기는 시간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가 원하는 시간에 스스로 욕실로 들어가진 않기 때문에, 씻으러 가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야 한다. 집에 왔느니 옷을 갈아입어라~ 이제 오빠 올 테니 너 먼저 씻으러 들어가라~ 잘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양치질은 했느냐? 이런 말들 말이다. 말을 한다고 바로 듣는 경우는 거~~~ 의 없다. 일단 대답은 '네~~' 하지만 몸은 욕실로 가는 도중 자꾸 어딘가로 이탈해 있거나, 갑자기 다른 일에 몰두해 있거나, 옷을 아주 천천히 벗고 있기 일쑤이다.
때로는 이런 말도 한다.
" 엄마~ 어차피 있다가 또 간식도 먹고 저녁도 먹을 건데 양치질 안 하면 안돼요? "
" 어차피 내일 아침에 또 세수할 건데, 그냥 안 하고 자면 안돼요?"
그러면 어차피 또 입을 옷인데 난 빨래를 안 해줘도 되고, 어차피 또 잘 거인데 이불도 안 개어도 되는 걸까? ㅎㅎ 나도 그렇게라도 집안일을 줄이면 좋겠지만, 깨끗한 환경과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서 매번 해야 하는 일이다. 아이들도 어. 차. 피. 엄마가 안된다며 하러 가라고 잔소리할 걸 알지만, 그냥 던져보는 것이다. 자기들도 정말 귀찮을 때가 있으니까.
단지 귀찮아서 그런 게 아닌, 정말로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도 있다. 어른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몸이 녹초가 된 날은 씻지도 않고 청소, 설거지도 안 하고 바로 자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나에게도 하루쯤 일상의 규칙을 지켜나가는 엄격함을 풀어줘도 좋을 것 같다. 사실 하루 안 씻고 잔다고 해서 몸이 크게 아프지도 않고, 내일 설거지한다고 해서 그릇을 못 쓰게 되는 것도 아니니까. 평소에 잘하고 있는 나라면 매 번 이러지는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 사실 자신에게 많이 엄격한 사람은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힘겹게 몸을 일으켜 일을 다 끝내고 잘 것이다. 내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후회하기 싫으니까.
아이들에게는 엄마 아빠가 감독관이다. 오늘 밤 양치질을 하고 자느냐 그냥 자느냐에 관한 결정권은 감독관에게 있다. 아이들은 한 번 허락하면 비슷한 상황에 계속 요구하는 경향이 있어 웬만하면 해야 할 일은 꼭 하게 하는 게 좋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관용을 베풀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특히 피곤해서 잠든 어린아이를 꼭 깨워서 양치질을 시켜야 하는지, 큰 아이라도 몸이 아픈 날은 머리 감는 걸 미루게 할 것인지 등을 잘 생각해서 판단하길 바란다. 아이의 습관과 청결에는 도움이 되지만 아이의 짜증과 엄마에 대한 섭섭함은 감당해야 할 것이다. 원칙을 지키는 것과 지키지 않는 것, 적당히 유. 도. 리. 있게 행동하는 게 어느 선까인지 결정하는 건 언제 어느 순간에나 어려운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