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으로 향하는 시간
불교에는 '안거'라는 게 있다. 일 년 중 가장 덥거나 추운 동안 집중해서 수행하는 기간을 말한다. 이제 겨울이니 약 삼 개월간의 동안거가 시작됐고, 불교 수행법을 좇아 나도 나만의 안거에 들어갔다. 뭐 특별한 건 없다. 하루에 특정 시간을 정해 두고 차분하게 정진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내게 가장 적절한 시간은 출근 전이다. 저녁에는 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고, 또 약속이 잡힐 수 있어서이다. 새벽시간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다. 해가 늦게 뜨는 겨울엔 새벽 6시는 한창 어두운 때. 출근 복장으로 준비하고 집 근처에 있는 선원으로 향한다. 밖으로 나가 찬 공기로 잠을 깨고, 절을 하며 차분히 몸을 스트레칭한 후 방석 위에 앉는다. 조용히 앉아 있으면 도로에서 차 지나가는 소리가 간간이 들릴 뿐. 온 세상에 아직 잠들어있는 새벽 특유의 차분함이 깃든 곳에서 좌선을 하는 것이다. 조금 더 오래 앉아있어도 좋겠지만... 아직 잠을 많이 줄이지 못해 매일 10분만이라도 앉아 있으려고 노력 중이다.
대체로 나는 '아침형 인간'보다 저녁형, 아니 '올빼미형 인간'에 가깝다. 어릴 때부터 자정이 넘어 잠들곤 했는데, 안거를 하면서 이른 아침이 주는 상쾌함을 알게 됐다. 보통의 아침과 달리 짧게나마 내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정신이 차려지는 기분이랄까. '이제 나의 하루가 시작됐다' '오늘을 꼭꼭 씹어서 잘 보내자' 그날 하루의 시작을 떠밀리지 않고 내가 직접 열어낸다는 느낌. 그렇게 출발한 날은 하루종일 또렷한 정신이 이어지곤 한다. 무엇이 우리의 사고를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에 대한 답은 첫째로 운동을 하는 것, 그리고 두 번 째는 이른 기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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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에 안거가 만들어진 이유는 인도에 90일간 우기가 이어져 외출이 어렵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가더라도 작은 벌레를 밟아 죽일 수 있기 때문에 그 기간에 동굴이나 사원에서 좌선수행에 전념하는 것이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외부 활동이 어려우니 차라리 혼자만의 활동에 전념하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추위는 무엇이든 꽁꽁 얼리는 기운이 있어서 그런지 저녁이면 밥을 먹고 꾸벅꾸벅 졸다가 일찍 잠들곤 한다. 아무래도 취침시간도 빨라지고 활동량이 확연히 줄어드는 계절이라, 안거를 적용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불교 신자로 몇 해동안 안거에 동참해 보니, 안거는 일상에 '빈틈'을 끼워 넣는 것과 같았다. 빡빡하게 이어지는 일정 사이에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자리한다.
요즘 같이 즐길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빈틈을 챙겨야 할 이유가 있을까. 처음엔 나도 잘 몰랐다. 달지도 쓰지도 않는 맹맹한 물처럼 그저 고요함만으로 채워지는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있으면 처음엔 고요한 주위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만, 다음에 듣게 되는 것은 내면의 소리이다. 하루하루 소화되지 않고 넘어갔던 일들을 돌아보게 되고, 차분하게 질서를 잡아 정리할 기회가 되었다.
몸이 쉬어서 정신적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는 걸까. 인간은 어쨌든 물리적 한계를 가지고 있으니 계속 활발하게 무언가를 할 수 없다. 한겨울이나 한여름처럼 주변 환경이 극한일 땐 분명 스트레스를 더 받을 테고, 그러니 무리하지 않고 평소보다 에너지를 덜 쓰는 방향이 좋을 것이다. 또 연말연초이니 지난 1년을 점검하고, 다음 1년을 계획하기에도 적절한 타이밍이 된다.
어김없이 찾아온 12월. 바깥공기가 차가워지면 조용히 지금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진다.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참선을 하면서 내 안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한다. 바쁘기만 한 일상에서 떨어져 나와 방향을 점검하는 중요한 시기. 그러기엔 겨울이 적당하다.
이때 조심할 것, 한 가지는 남과 비교하지 않을 것. 내가 염려할 것은 남보다 빨리 가는지가 아니라, 내게 맞는 결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할 뿐이다.
'지금, 나답게 살고 있나'
안거 기간 동안 나의 화두이다. 이 질문은 현재 나의 방향을 정리해 준다. 상황이나 현실에 끌려다니고만 있는지, 아니면 내가 의도하는 방향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하게 되는 질문이다. 그리하여 어느 쪽이든 방향타를 잡고 있는 사람인 '나'라는 사실을, 변화를 만드는 주체가 '나'임을 자각하게 한다.
나의 원칙 ㅣ 외부의 자극만 있으면 소진된다. 하루, 일주일, 연중 일과 중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