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2.
"곧 새해구나. 올해도 다 갔네."
Q는 책상 달력의 마지막 한 장을 넘기며 중얼거렸다.
목적 없는 혼란이 가득한 1년이었다.
이룬 것이 없지는 않았다.
Q는 작년 이맘때 적어둔 소망 목록을 꺼내 보았다.
악기 배우기는 칼림바로 몇 곡을 제법 능숙하게 연주할 정도가 됐지.
퇴근 후 매일 산책하기는 그럭저럭 잘 지켰다.
집 앞 공원을 다 돌지 못한 날도 아예 안 한 건 아니니까.
외국어 배우기는 글쎄다. 어학원을 다녀 보았는데
세 달을 넘기지 못했다.
그냥 온라인 수업을 들을걸 그랬나.
그래도 여행은 좀 다닌 것 같다.
비록 해외는 못 갔어도 한두 달에 한 번
가고 싶었던 국내 곳곳을 둘러보았다.
아직 차가 없어서 기차나 버스를 타고
많이 걸어 다녔지만 나름 좋았어.
이 정도면 뭐 나쁘지 않은데.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 걸 빼면.
그런데 뭐랄까. 허전함이 채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올해 했던 모든 일들은 이 공허함을 감추려는
서글픈 몸짓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만나는 사람 없이 지냈는데 그것 때문일까.
결혼은 일찌감치 포기했는데 그래도 가슴 한구석에는
미련이 남은 듯했다.
빚에 시달리고 다툼에 젖어든 어린 시절이
아마도 영향을 주었을 텐데, 부모를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껏 누군가를 만날 기회가 생겨도 애써 외면했고
스스로를 가두어 왔다. 그래, 나도 알지.
Q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언젠가 이런 글을 봤다.
"사랑하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갖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그러므로 사랑을 일부러 만들지 말라. 사랑은 미움의 근본이 되니까."
사랑에 빠지지 말라. 그래, 혼자가 속 편하지.
Q는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잘 되었을지도 모를 첫 연애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만남이 더해 갈수록 불안도 더해졌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은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이를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사랑이 두렵지만 사랑을 하고 싶은데 사랑할 수 있을까 겁이 났다.
용기를 내보려 하다가도 스스로를 옥죄었다.
그럴 때마다 가슴 한편이 따갑게 시렸다.
이게 맞을까 싶다가도 그것이 성장통이라고,
삶의 고뇌를 이겨내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살아왔다.
Q는 기분 전환할 겸 영화를 보기로 했다.
OTT를 둘러보다 눈에 들어온 건 <러브 어페어>.
워낙 유명하다기에 봤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왜 그랬을까. 서로가 서로를 바라는 마음이 이어졌기 때문일까.
저렇게 애절한 사랑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좌절감 때문일까. 안타까웠던 지난날에 대한 회한 때문일까.
그저 마음이 저려 왔다. 감동일까 슬픔일까. 모르겠다.
그 사람은 잘 있을까 문득 생각이 났다.
누군가는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했는데
새해에는 사랑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Q는 긴긴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