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친절한 James Dec 01. 2024

은반지에 대해 써라

2024.12.1.


이런 생각을 해봤다. 

지나온 삶의 모든 순간을

작은 반짝임 하나에 모을 수 있다면,

그건 어떤 모습일까. 

두고두고 곁에 두며 특별한 추억이

책갈피처럼 기억 속에 꽂힌 풍경을

돌아볼 수 있다면 어떨까. 

당신에게 그런 대상이 있는가. 


나에게는 반지가 그렇다. 

커플 은반지다. 

정확히 말하면 

은빛깔이 나는 반지다.

아주 작은 다이아몬드가

맑은 어느 겨울밤의 별빛처럼

반짝이는 겨울 반지, 

단순하지만 섬세한 무늬가

봄바람처럼 새겨진 반지,

고리 안쪽에는 우리의 이니셜과 

결혼기념일이 솜털처럼 새겨진 반지다. 

아내 반지는 로즈골드 빛깔이고

내 것은 은빛깔이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같은 궤도 속에서 

서로를 닮은 물결로 하나가 되었다. 

아마도 백금은 아니었고

18K 금에 은빛 마감을 한 것 같다. 

반지를 맞추러 아내와 매장에 

다녀온 날의 향기를 기억한다. 

푸른 향기를 담은 하늘의 내음이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날의 티타임도, 대화 속 단어들도 

머그잔의 온기와 함께 뭉게구름처럼 떠올랐다.


집을 나설 때는 왼손 넷째 손가락에 반지를 낀다. 

반지는 금환일식을 닮았다.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지 못해

태양이 마치 반지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달을 품은 해처럼 그대를 내 품에 안고 길을 나선다.

반지는 이제 착용을 잊을 만큼 익숙해졌다. 

내 몸의 일부처럼 편안하다. 

없으면 허전하다. 

부부란 그런 존재가 아닐까. 

보이지 않아도 없으면 살 수 없는 공기처럼.

2095년 11월 27일에는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서 금환일식을 볼 수 있다던데

그때까지 아내와 동고동락하며 즐겁게 살아야지. 

포개어 둔 두 반지처럼 말이다. 


반지를 두 손으로 만져본다. 

작지만 단단한 감촉, 믿음이 간다. 

손가락에 껴보고 주먹도 쥐었다 펴본다. 

거실 책상에서 글을 쓰는 지금

새벽 5시가 다 되어가는데 

눈앞 태블릿 PC속 잠든 아기도

주먹을 쥐었다 펴는구나. 

팔도 허우적거리고 다리도 흔들흔들,

몸을 뒤척이다가 다시 잠들었다. 

너도 반지를 품을 날이 오겠지. 

마음을 다해 마음껏 사랑하렴.

시간이란 참 애틋하고 소중하다. 

오보에 음색처럼 부드럽고 애잔한 감정이

반지를 타고 추억과 기대를 어루만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