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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숙 Oct 06. 2022

출간 복권

워킹맘, 퇴사의 세계

"나, 복권 2등에 당첨됐어!!"

"어머, 정말? 웬일이니~2등이면 얼마 받는 거야?

 응? 백만 원? 백만 원 밖에 안돼?"

"야, 2등이 얼마나 힘든 건 줄 알아?"

 모든 숫자가 다 맞고 딱 하나가 안 맞았을 때가 2등이야.

 확률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건데~"


친구가 복권 2등에 당첨이 되어 백만 원을 받게 되었다. 한 자리 빼고 모든 숫자를 맞춘 거치고 금액이 적긴 해도 퇴근길에 재미로 산 복권인데 백만 원이면 큰돈이다. 복권을 사본 일은 기억에도 없을 정도이고 산다 하더라도 친구처럼 2등에 당첨될 가능성도 희박하겠지만 복권처럼 행운의 여신이 와준 경험이 내 인생에도 몇 번 있겠다 싶다. 어릴 적 자주 보던 만화 종합지 보물섬 사은품 응모에서 둘리 인형이 당첨됐다던가 은행에서 보내주는 해외 연수에 당첨이 되었다던가 하는...


출판에는 크게 자비출판과 기획출판이 있다. 자비출판은 말 그대로 내 돈을 들여 출판하는 것을 말하고 기획 출판은 인쇄, 마케팅과 같이 출판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을 출판사에서 부담을 하고 저자는 인세를 받는 것을 말한다. 나 같은 초짜가 여러 출판사에서 기획출판 제안을 받는다는 건 복권 당첨과 같은 행운이다. 매일같이 투고되는 수많은 원고 중에 눈에 띄어 제안을 받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을 1등 복권은 아니지만 2등 복권쯤은 되겠다 싶다.


완성된 원고를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을 들여다보다 이제는 정말 전송해야겠다 싶어 새벽녘 이메일을 발송했다. 전송 버튼 하나로 그간 애쓴 원고는 출판사로 전송될 것이고 매일 적게는 몇 개, 많게는 수십 개씩 들어오는 수많은 원고 중 하나가 된다. 간절한 마음으로 그 새벽녘 전송 버튼을 누르고선 노트북을 그대로 덮어버린 채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출근 버스에서 출간 미팅을 해보자는 문자를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눈을 떠도 뜬 것 같지 않은 수면 부족 상태로 모두의 셔틀(출근 버스를 공유하는 시스템)에 올랐다. 출간을 제안하는 문자를 보면서도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했다.


그렇게 출간이라는 난생처음 겪어 보는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고 연락 온 출판사는 다 만나보기로 했다. 출판업에 계신 분들은 대단한 미사여구를 쓰지 않는데도 간결한 말 한마디에 한결같이 진심이 담겨 있었고 나의 단어 하나하나 흘려듣지 않고 시간을 들여 경청해 주셨다. 시간이 생명인 은행에서는 늘 중간에 말이 잘리는 경험이 많은 나로서는 미팅 자체가 경이로웠다. 몇군데의 출판사 중 고민을 하다 온화한 편집장님의 손을 잡기로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를 출간이라는 착륙지까지 편안하게 인도해 주실 것만 같았다. 출간을 하면 퇴사라는 내 생애 이벤트도 좀 더 빨리 다가오겠지.





퇴사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내 머릿속에 떠오를 때부터 늘 고민했다. 퇴사를 하고 나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럴 때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자문하고 고민했다. 퇴사해서 소위 주부가 되는 것보다는 나만의 단단한 무기를 가지고 싶었다. 그래도 20년 은행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건데 무어라도 이루고 나오고 싶었다. 내 일이 하나도 없는 전업맘 말고 그래도 조금은 차별화된 아줌마를 꿈꿨다. '그래, 책을 써야겠다. 나는 꼭 책을 쓸 거야.' 언젠가부터 책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생각은 나날이 커져 확고한 신념 같은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늘 정리하고 보고하고 전달하는 등 글쓰기는 일상이지만, 소위 책 쓰기는 처음이라 고민이 됐다. 여행을 앞두고 잠 못 드는 사람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고 여러 가지 계획만 앞섰다. 어떻게 책을 쓰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 네이버, 인스타, 페이스북을 수십  번 검색하고 교보문고, 영풍문고를 돌아다녀보며 책 쓰기에 관련된 책을 찾아냈다. 몇책이 있기도 했지만 왠지 나와 맞지 않는 듯했고 또 어떤 책은 진부해 회의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회사 다니며 책 한 권 써볼까>     


' 응? 나에게 딱 맞는 책인 것 같네?' 

너무 무겁지도 않으며 회사를 다니는 중에 쓸 수 있겠다는 느낌이 딱 오는 제목. 누가 가로채기라도 할까 바로 집어 들었고 소중히 집으로 모셔와 몇 번을 완독 했다. 이 소중한 책에는 어떻게 시작할지 아무 생각이 없던 나에게 구체적인 실천 목록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실행’이라는 소제목이 눈에 띈다. 실행하지 않고 머릿속에만 넣어두는 것은 부자가 되지 못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모든 것은 실행이다.     


" 고 팀장, 자기네들은 온실 속 화초야. 은행 밖 세상은 얼마나 치열하다고! "

가끔 오시는 고객이 말씀하셨다.

" 은행원들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한 온실 속 화초처럼 일해서 바깥세상이 얼마나 삭막하고 치열한지 몰라."  

" 은행원들은 이 서류 하나 떼오라고 말만 하면 그만이지만 이 서류 하나 떼 오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모든 일을 서류로만 하니까 어려운 걸 잘 모르지! 다음에 퇴사하고 세상에 나가봐. 얼마나 살기 어려운지.. "


은행을 박차고 나서려니 비로소 이해가 된다. 은행원은 서류로 일한다. 직접 발로 뛰는 일이 아니라 서류상으로 확인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기업 영업을 하는 분들은 외부에 나가 영업을 하기도 하지만 VIP 고객의 자산을 담당하는 나는 은행 밖으로 나갈 일도 그다지 없다. 곧 길가에 핀 잡초처럼 그 누구의 돌봄도 없이 척박한 환경을 견뎌야 하고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니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나가게 되면 조직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알아보고 터득해야 한다. 책을 출간하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OO은행 OO팀장이 아니라 그저 한 권의 책을 내고 싶은 아주 작은 인간이다.






“편집장님, 부탁이 하나 있어요.”

“네, 뭐죠?”

“계약을 하고 출간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건 알고 있지만, 최대한 빨리 출간되었으면 좋겠어요. ”

“아,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신가요?”

“제가 내년 1월 정도에 퇴사를 하려고 계획하고 있거든요.”     

"아, 그럼 정말 촉박하네요."

"초면에 이런 말씀드려 너무 죄송해요. "


이렇게 속에 담고 있던 말을 생전 처음 만난 출판사 편집장님께 게다가 출판 계약이라는 어려운 난관을 앞둔 자리에서 툭 내뱉고야 말았다. 가까운 가족, 친구, 직장 동료에게는 꺼내지 못했는데 말이다. 겹겹이 포장한 배달 음식처럼 꽁꽁 싸매 둔 마음속 비밀을 이렇게 어려운 출간 미팅 자리에서  던져버렸다. 규모가 있는 출판사는 출판 계약을 하고도 출간이 되기까지 1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런 작업을 초보 저자가 당돌하게 빨리 해달라고 조르다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근데 퇴사를 조금 미루시면 안 될까요? 아무래도 현직에 계실 때 책이 나오는 게 마케팅 효과가 좋아서..”

“아,,, 그렇군요..”      


왠지 마음 한편 안도의 한숨이 흘러내렸다. 한편 편집장님이 '네 그러시죠'라고 하면 어떡하나 두려운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퇴사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거다. 퇴사를 하면 안 되는 이유를 편집장님께서 하나 만들어 주셨다.

' 책이 나올 때까지는 퇴사를 하면 안 되니 조금 더 기다릴 수밖에. 그래 몇 달 늦춘다고 죽을 일은 아니지. 사실은.. 다행이야. 관둔다고 맘먹긴 해도 겁도 나고 두려웠는데 이렇게 그럴싸한 이유가 하나 생겼으니 남들한테 할 말도 있고 다행이다.. 아이고  됐다. '


그렇게 퇴사가 조금 미루어졌다. 조금 더 '은행 온실'에서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인생이란 게 계획대로 흘러가지만도 않지 않은가. 책을 내고 퇴사하려던 계획이 틀어진 것처럼 어쩌다 승진까지 하게 되어 좀 더 일하게 되었다.관두겠다는 의지가 강했다면 승진을 했건 말건 박차고 나갔을 테지만 현실적인 여건, 주변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조금 더 일해보자 싶었나 보다. 또 그렇게 그럭저럭 근무하는 것도 참 신기했다. 가끔은 그냥 이대로 다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결정적인 상황에서  인생 위업 중 하나인 퇴사를 면서도 참 잘했다 싶은 건 그동안 책 쓰기를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는 거다.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무방비 상태에서 퇴사를 경험했겠지만 나는 준비했고 많이 성장했다.  


친구가 2등 복권에 당첨된 복권판매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 저 집이야. 나 2등 당첨된 곳. 이리 와 봐. 복권 하나 사줄게. "

" 으응? 나 복권 필요 없는데?"

" 아니야, 그래도 하나 가져가. 혹시 모르잖아. "


 출간 복권이라는 게 있어서 당첨면 글쓰기 코칭부터 편집, 출간,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알아서 해준다고 면 책을 내고 싶은 수많은 예비 저자들이 출간 복권을 사지 않을까 하는 허튼 상상을 하며 친구가 내 손에 들려준 복권에 하나의 작은 희망을 걸어본다. 복권에 당첨되리란 요행 따위는 바라지 않지만 퇴사를 더라도 내 인생을 계속해서 충실하게 살아낸다면 나에게는 또 다른 복권 당첨이 있을 것이라 믿으며 나는 3번째 책(기록)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오늘도 글쓰기를 통해 하루를 정리해 본다.


(사진 출처.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안병현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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