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실패했다. 다음번에는 좀 더 세련되게 말해보리라.
마음은 급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 실수도 잦고, 세상에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사고를 칠 확률도 높은, 느리고 서튼 존재들에게 어른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어른들의 갑질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나눴던 대화의 내용은 잊고 느낌만 남긴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나도 뭘 잘못해서 혼냈는지도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화가 잔뜩 나서 소리치던 어른들의 무서운 얼굴과 엄마가 마당에서 회초리를 꺾었을 때의 그 울고 싶던 마음만 진하게 남아 있다.
별것도 아닌 대화에 결국 서로에게 언성을 높이며 비극적 결말을 맞이했다. 영화이야기가 아니다. 고작 14살 사춘기 아들과 엄마의 이야기이다. 같은 질문과 대답이 한 두번 오가면 이런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번주 생일인데 저녁은 뭐 먹을까?로 시작된 대화가 “겨우 두 번 물어봤는데 뭘 자꾸 물어본다고 말하냐고~일정이 있으면 말을 해야지 자꾸 어디 안 가냐고 묻냐며.." 쓰기도 민망한 대화가 오고간다. 남편은 '별거 아닌 일에 둘이서 꼭 그렇더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감사한 마음으로 모이게 해달라고 기도한 게 불과 4시간 전인데 말이다. 기도한 게 부끄러울 지경이다. 심지어 주니를 위해 작정기도를 하고 있는 중인데 말이다. 대화가 길어지면 서로 배려하지 못하는 말투에 '분노버튼'이 자꾸 눌러진다.
우리는 말로도 마음을 긁히고, 침묵 속에서도 멍이 들고, 감정으로도 화상을 입는다.
'대화'는 '화'가 되는 비극적 상황을 지켜보던 소룡이가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엄마 오늘 학교 도덕시간에 STC 버튼에 대해서 배웠어요. STOP 멈춰서 THINK 생각해 본 후 나의 행동을 CHOOSE 선택하자! 오빠에게 그 버튼이 필요할 것 같아요"라고 했지만, 왠지 나에게 하는 말 같아 마음이 상한다. 이미 꼬일 대로 꼬인 마음이니 무슨 말인들 곱게 들리겠는가. STC버튼은 아들보다 정작, 엄마인 나에게 더 절실한 것 같다.
대화에서 시각과 청각 이미지가 중요시된다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이라는 메라비언( The Law of Mehrabian)의 법칙이 있다. 한 사람이 상대방으로부터 받는 이미지는 시각이 55%, 청각이 38%, 언어가 7%에 이른다는 법칙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분명 화를 안내고 말했는데, 주니가 자꾸 화를 내면서 말하잖아"라는 나의 주장은 아마도, 시각적인 55% 때문에 망한 듯하다. 어쩌면 표정으로 잔소리를 하고 있었을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든다.
질문의 깊이가 사랑의 깊이를 결정하고, 질문의 크기가 삶의 크기를 결정한다
작가의 문장에 초공감이라고 쓰고 별까지 그려 두었으면서, 아이에게 전하는 질문과 대화 수준을 보니, 깊이도 크기도 세상 기름종이처럼 얇고 얇게 생겼다. 사춘기 아이와 대화하는 법에 대해 글을 읽고 듣고, 필사를 하면 뭐 하리-알고 행하지 않으면 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하는데 입만 살아서 실천으로 옮기는 쉽지 않다. 심난한 마음에 유튜브를 들어 본다. 덧글이 눈에 들어와 읽어 보면, 다 내가 쓴 글 같다. 사춘기가 그렇다고 알고 있지만 마음이 어렵다는 모두 하나같이 말하는 부모의 마음처럼, 아이들도 제발 우리의 이야기를 잘 들어달라며, 믿고 격려해달라고 외치는 소리도 모두 같겠지?
중2가 얼마 안 남았다. 누구 한쪽이 죽어야 끝나는 전쟁이 결코 아닌데-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그냥 그려려니-남편처럼 편안히 넘어가면 될 일을 그거 이겨 뭐 하겠다고 이리 마음고생인지-
소아정신과 전문의 김붕년교수님이 한 영상에서 사춘기는 도전적, 반항적인 특징을 가져, 당연한 것들이나 규범, 규칙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는 시기라고 한다. 이것을 어른들은 반항이라고 보는데 이것은 아이들은 의견을 제기하는 것이지 결코 반항이 아니라는 것. 사춘기 때는 편도체(Amygdala)의 발달이 활발해지는데, 편도체는 '대뇌의 아몬드 모양의 뇌부위로 감정을 조절하고, 공포 및 불안에 대한 학습 및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 편도체가 수시로 민감해지고 취약해지는데, 이때 부모가 보듬어 줘야 건강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부정적인 언어와 강한 제지로 아이들의 행동이 바뀌길 기대하지만, 이런 행동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만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했다. 결국은 사춘기에 필요한 건 격려와 지지, 따뜻한 말 한마디와 표정인걸 알면서 실천에 옮기는게 너무 어렵다.이러다 진짜 주니와 멀어지는 건 아닌지, 곧 있음 우리 소룡이도 사춘기 임박인데-아..반드시 끝나는 시기라는걸 알면서도, 심연의 굴레속에 있는 기분이다.
아이들은 존재 자체가 웃음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유머도 필요 없이 세상을 밝힌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농담이라고 전하는 걸 보면 유치해 죽을 것 같은데, 그걸 좋다고 꺄르륵 대는 아이들이 귀여워서 나도 웃는다.
진통만 11시간 하고 자연분만으로 얻은 첫 아이. 입만 열면 꼬물 꼬물 귀여운 웃음과 목소리로 세상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만큼 행복했다. 지금은 그 시절은 아예 존재히지 않았던 것 처럼- 이젠, 입만 열면 툴툴거려 11시간 잔소리도 부족할 지경이다. 사춘기에 질세라 삐뚤어진 태도인 나를 보면 부끄럽고, 한심스럽다가도 안쓰러운 마음까지 들기도 한다. 이시기는 아이도, 엄마도 광야에 서있는 마음일 것 같다.
곧 생일인데 생일주간을 망친 거 같아 미안함이 들지만, 이내 엄마한테만 못나게 구는 아이의 모습이 미워진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모습을 엄마 아니면 누구에게 보여주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의 사춘기가 어땠는지 누구에게도 묻고 싶지도 기억해내고 싶지도 않다. 아들과 다른 모습은 아니었을 테니까. 누굴 닮았겠는가!
어쩌면 사춘기시기는 부모와 아이의 각개전투의 시기일지도 모른다. 각자의 상황과 위치에서 자신의 감정을 잘 들여다 보고 돌보며,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모습으로 서로 만난다면, 피튀기는 전쟁의 자리가 아닌 협상테이블에서 고상하게 대화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춘이가 되면, 얼굴에 여드름이 올라온다. 여드름이 붉어져, 고름이 가득 차 있는 상태여서 스치기만 해도 터질 것처럼 탱탱해져 있다. 꼭 사춘기 아이들 모습같다. 여드름을 잘 짜내야 새살이 돋고, 흉터가 남지 않는데 매번, 감정적인 엄마로 인해 마음에 흉 질까 걱정스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주니 말을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말 것
날카롭게 굴었다면, 마음이 흉 지지 않도록 밴드 잘 붙어줄 것.
이미 엎질러진 물의 말들이 너무 많다면, 이제서라도 잘 훔칠 것.
무엇보다 11년 전 아이를 처음 안았던 감격과 기쁨을 잊지 말고 계속 들여다보며, 그저 귀여웠던 순간에서 이제 진정한 성인이 되어가는 아이에게 격한 응원과 지지를 해주자라는 마음을 천 번쯤.. 아니 일억 번쯤 가져보는 밤이다.
(발췌는 아이라는 숲_이진민작가의 글 인용)
(지식인사이드, "오히려 역효과다." 사춘기 자녀에게 절대 하면 안 되는 언행 | 지식인초대석 (김붕년 교수)
https://youtu.be/qKkhqgtDAL8? si=ARXYB8 iirJhSK33 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