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사라질 수 있다면
우리는 전시실 입구에서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다.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하는 것은 박물관 입장료보다도 더 비쌌다. 평소 같으면 하나만 빌려서 돌아가면서 들었을 텐데, 우리는 무엇엔가 이끌렸는지 오디오 가이드 세 개를 빌려 각자 하나씩 들고 귀에 꽂았다. 전시실은 시간의 순서에 따라 구성되어 있었다. 4개의 전시실을 순서대로 돌다 보면 베트남 전쟁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따라갈 수 있었다.
나는 박물관의 풍경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복잡한 심경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50년 전 베트남 전쟁에서 이 땅의 어떤 사람들에게는 형언할 수 없는 상처를 줬을지 모를 한국인의 후손들이 그 전쟁의 한복판 사이공에 놀러 와 그들이 만들어 둔 한국어 가이드를 듣고 있다.
1학년 아들은 그 긴 오디오 가이드를 1번부터 60번까지 들으며 전시관을 천천히 따라갔다. 1학년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말이 많았을 것이다. 역사관에 따라 다른 베트남전에 대한 해석을 아직은 알 필요도 없다. 그저 전투기를 비롯한 무기들과 충격적인 몇 개의 사진들이 아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언젠가 "아빠, 전전쟁이 나면 어떡해요. 무서워요."라고 말하던 아들이었다. 아들의 머리와 가슴에는 무엇이 기록되고 남겨지게 될까.
특별 전시실에는 고엽제 피해를 비롯해 베트남 전쟁의 참상이 기록되어 있었다. 고엽제의 피해로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들의 이야기에 걸음을 멈췄다.
'에이전트 오렌지'라고 불리던 독성 물질인 고엽제는 베트남전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 가장 긴 기간 그리고 가장 잔인한 고통을 안겨준 물질이다. 그로 인해 약 400만 명의 베트남 사람들이 중독되었고, 300만 명은 극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사진 속 아이들은 끔찍한 장애를 갖고 있었고, 고통 속에 삶을 마감했다. 아들은 어린이들의 사진에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아빠, 저 아이는 왜 저렇게 다쳤어요?"
"전쟁에서 몸에 엄청 나쁜 물질을 뿌려서 그렇게 된 거야. 전쟁 정말 무섭다."
"네, 그래서 계속 저렇게 살았어요? 안 나아요?"
"응. 한 번 그 물질에 닿으면 계속 그래. 아기를 낳아도 그 아기도 그래."
"아파요?"
"아프지 당연히. 그러니까 전쟁이 나면 절대 안 되겠지? 전쟁은 아픈 거야."
"아빠, 그런데요. 세상에서 미국이 제일 세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베트남이 미국을 이겼으니까 베트남이 더 센 거 아니에요?"
"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지금은 전쟁을 얼마나 잘하느냐보다 경제력이 더 중요해."
"경제력이 뭐예요?"
"돈. 돈이 많으면 나라가 더 강력해져."
"아하 그래서 미국이 1등이라는 거구나. 그럼 우리나라는 몇 등이에요?"
아들은 전쟁의 참혹함에 깊이 몰입하기에는 아직 어렸다. 그보다는 누가 누구를 이기는지에 관심이 더 많았다. 메시와 손흥민 중 누가 더 축구를 잘하는지, 전 세계 축구 클럽 중 1위는 누구인지, 월드컵에서 가장 많이 우승한 나라는 어디인지와 같은 질문이다.
아픈 역사를 체감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개인은 세계사적 흐름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늘의 내 삶도 역사의 흐름과는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역사 안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72살 노인이든, 40살 아저씨든, 8살 어린이든 모든 사람은 역사 속에서 살아간다. 전쟁 안의 개인은 전쟁을 겪고, 평화 안의 개인은 평화를 누린다.
나의 세대는 아들에게 어떤 역사를 물려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