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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나 걷는 힘

당신은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습니다

by 주명



길게는 아니지만 짧은 시간 동안 넘어져 있었습니다. 누군가 저를 넘어뜨렸기 때문입니다. 아팠고 괴로웠습니다.

넘어뜨려도 제가 넘어지지 않았다면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었겠지만 넘어지는 바람에 괜찮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삶에 일어나는 일들이 그 자체로는 큰 무게와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가 내게로 쏟아져 아파하기 시작하면 커다란 문제가 됩니다. 문제는 눈 앞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아파하며 울고 있는 나에게서 시작되는 일인가 봅니다. 그래도 타인이 내게 준 상처가 ‘내가 올바로 서 있지 못해서’라는 이유로 받아들이기엔 성가시고 괴롭습니다.

다시 일어나기보다 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나를 가엽게 여기고 싶었습니다. 작아지고 싶었고 움츠러들고 싶었습니다. 몸이 아플 때 온몸을 곧게 하고 눕기보단 몸을 굽히고 쭈그리는 것이 더 편한 것처럼요.

일주일이 안 된 시간 동안 가슴이 쿵쾅거리기도 손이 떨리기도 얼굴이 굳기도 열이 달아오르기도 했습니다. 주말에도 온전히 쉬지 못하고 나에게 도움도 안 되는 고민으로 전전긍긍하고 신경 썼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동생이 말을 걸어도 그 날의 상처가 계속 떠올라 제대로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짜증을 내더라고요. 도대체 옆에 누가 있긴 한 거냐며, 왜 대답이 없냐며. 대답했어야 했나 싶지만 제가 얼마큼 고민하고 있는지 모를 테니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아픔은 지금까지 겪은 아픔과는 왠지 다른 생채기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참 웃기지요.

예전엔 분노와 아픔을 다 토하기 위해서라도 글을 써댔습니다. 글쓰기라기보다 그냥 혼잣말, 막말 같았습니다. 혼잣글, 막글이라고 해야 하나요?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감정이 드러나는 글을 썼는데 글쓰기를 배우면서부터 어느새 내 고통도 영감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차분해지면 멋진 글 하나를 더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한한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어둠의 시간을 통과하고 나면 한 겹 더 튼튼한 옷을 입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을 경험했으니까요. 다만 '강한 나', '변한 나' 그게 언제 될지 몰라 언젠가 쓸 수 있겠지 생각했습니다.

좋은 글을 읽어도, 좋아하는 영상을 봐도 마음이 쉽게 달래지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제 뒤에서 하는 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고 욕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앞뒤가 다른 사람의 태도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피해자였으니까요. 온갖 좋은 생각을 다 끌어안아도 쉽게 마음과 머리가 깨끗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제 설교 말씀 영상을 하나 보았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았던 주일, 점심이 지나서 시작되는 청년예배를 가지 않고 일찍 예배를 드리고 개인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듣지 못했던 청년예배 설교를 들었습니다.

설교의 제목은 ‘일어나 걷는 힘’이었습니다.

38년 동안 앉은뱅이로 살던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일어나 걸었다는 내용의 설교였습니다. 앉은뱅이는 누군가가 병을 낫게 하는 연못에 그를 담가 주지 않으면 나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평생을 앉아있었고 자신을 연못을 데려다주지 않는 사람들을 원망했고 그래서 마음까지 아파하며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앉은뱅이에게 한 말이 마치 저에게 하는 말 같았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라”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제가 험담을 들었을 때만큼 충격적이었습니다.

화가 난 상태의 평소 저였다면 ‘아니 왜 도대체 일으켜주지 않고 말로만 하지? 전지전능하신 분이 왜 그걸 안 해주셔?’하며 반문했겠지만 그 말에서 제 답을 찾았습니다.

인생에 자유 의지가 있다는 사실이 제게 완벽한 해결책이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원래 늘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으로만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에게 자유는 애초에 주어지지 않을 겁니다. 초월적인 힘이 늘 우리를 도와야만 하니까요. 하지만 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안에 충분히 있기에 언제나 일어나 걷을 수 있습니다.

소망하는 사람에겐 이미 그것을 이뤄 낼 능력이 있습니다. 무언가 소망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소망과 목표, 꿈들을 언제나 이뤄낼 수 없는 것처럼 여깁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생각에 머물러있는 것이고 해보지 않은 것뿐입니다.

그래서 주저앉지 않고 일어나기로 했습니다. 아직 상처 딱지를 털어내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요. 저도 일어났으니 당신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앉은뱅이는 걸을 수 없는 삶에서 일어나 걸었지만 우리는 원래 걸을 수 있었고 잠시 넘어졌던 것뿐입니다.


우리는 ‘다시’ 일어나 걷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일어나 걸어본 적이 많습니다. 사랑에 실패했지만 다시 사랑했고 시험에 떨어졌지만 다시 공부해 합격했습니다. "다시!"라는 부모님의 말에 구구단을 외웠고 떨어진 단추를 다시 달아서 셔츠를 입었고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잠시 멈췄다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당신은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다시 일어나 걷는 힘, 당신에게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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