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방출
3개월가량의 악몽 같았던 세브란스 병원 점포에서의 근무는 끝이 났다. 바로 예상치 못한 발령 때문이었는데, 대부분의 신입사원들은 서울에서의 근무를 희망하기 때문에 지방 근무 인력이 다소 부족한 상황이고, 그로 인해서 지방 발령을 받는 인원이 생기곤 한다. 일단 연고지가 지방인 경우 가장 유력한 후보자가 되기도 하지만, 사실 팀장이 이 직원을 보내지 않겠다고 하면 보낼 순 없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엔 점장의 눈 밖에 제대로 나 있었고, 연고지도 지방이니 어찌 보면 방출 0순위였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살짝 재밌는 부분은, 나처럼 연고지가 광주인 경우엔 대전으로 가는 건 서울 사람이 대전을 가는 것이나 다를 게 없지만, 지방 사람이기 때문에 서울 사람보다는 낫지 않나라는 인식이다. 지방 사람은 어느 지방을 가도 서울 사람이 내려가는 것보다는 낫다는 다소 희한한 인식이 있는 게 현실이다.
어찌 되었건 나는 대전 사무소로 가게 되었는데, 다소 기분이 나쁠 수 있는 이 방출이 나로서는 굉장히 좋은 일이었던 게 대전 지역의 직영 점포로 가는 것이 아닌 전혀 다른 파트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영업팀 소속에서 개발팀 소속으로 변경이 되었고, 당시 회사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이례적인 발령이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1년가량은 직영점에서 근무를 하다가 점장 직책을 맡아서 다시 6개월에서 1년가량을 근무하고 나면 영업관리직으로 가는 것이 정상적인 루트였는데, 나는 6개월가량 직영점에서 근무를 하고 점장을 달지도 않고 바로 다른 파트로 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설명해 주지 않고 가서 들으면 된다라고만 안내해 주었다. 당장 대전에 가서 살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짜증 났지만 이제야 그곳을 벗어난다는 해방감이 훨씬 컸다. 나는 부랴부랴 서울에 살고 있는 집을 정리하고 대전으로 내려가서 사무실과 멀지 않은 곳에 원룸을 구했다. 최종 근무처는 광주 사무실이었는데 그 당시 광주 사무실 직원은 대전 사무실에 있는 팀에서 파견 나가 있는 형태로 근무했기 때문에 우선 대전 사무실에서 업무를 배우고 1년 뒤에 광주 사무실로 간다라고 안내를 받았다. 오래 살 집이 아니기 때문에 풀옵션 원룸으로 대충 깔끔한 집으로 구하고, 부랴부랴 이사를 했다. 보내기 싫다는 아쉬운 얼굴을 하며 위로하는 위선적인 점장의 표정, 어차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송별회도 없는 작별은 마음 한구석에 묘한 설움으로 자리 잡았달까. 그래도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대전으로 향했다.
고요한 사무실, 들어가서 어떻게 첫마디를 떼야할까 머리가 멍해졌다. 별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지만 낯을 가리다 보니 늘 겪게 되는 스트레스다. 나이 차이가 6살 이상은 차이 나는 대리님이 사수라니, 직영점포에서 고작 6개월, 1년 차이 나는 선배를 상대로 긴장했던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게다가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제 입사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입사원이었고,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내가 간 자리는 최소 대리 직급 이상이어야 하는 업무라고 했다. 그런데 왜 나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당시 팀장님과 팀원들 간의 묘한 갈등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서, 팀장님은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을 받아서 자기 사람으로 키워서 세력을 형성하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그 예상은 나라는 인간을 만나서 철저히 무산되었지만 말이다.
이때부터 퇴사할 때까지 나는 중부SD지원파트에서 창업 컨설턴트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아마 계속 영업파트에 남아있었다면 5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그만뒀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소외받고 이방인 취급받던 곳에서의 설움이 오히려 나에겐 기회가 되어 돌아왔다. 이런 게 바로 행복한 방출인가? 편의점 창업 컨설턴트로 활동하기까지의 과정들과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만나기 힘들 선배를 만난 일, 사내 정치 등등 본격적인 대기업 신입사원으로서의 첫 발걸음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