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웃 터지는 독일어 일화들
어느 목요일 아침 진료 시간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병원 안이 왠지 어수선 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여기저기서 환자들은 들락날락하고 병원 전화와 초인종 소리는 BGM을 깔은 듯 끝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날따라 혈액검사받으러 온 환자들이 많아서였는지 여름휴가 전에 미리 처방전을 가지러 온 환자가 많았던 이유 이선지 다른 목요일에 비해 분위기가 달랐다
보통은 혈액검사와 맞물리는 10시를 전후해서 혼잡하던 병원이 잠시 잠잠해진다.
그걸 우리끼리는 첫 번째 태풍 지나갔다라고 이야기 한다. 왜냐하면 11시 전후로 환자들이 또 몰리는 경우도 자주 있기 때문이다.
세 명이서 일을 해도 어느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날이 그랬다
Bf는 1번 진료실에서 혈액검사를 하고 있었다
보통은 혈액검사실 에서 하는데 지난번 그 환자가 갑자기 쓰러 지는 바람에 난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리 진료실 침대에 눕혀서 혈액채취 중이었다.
가끔 체격이 당당한 젊은 남자 환자들 중에서 주사 공포증이 있는 분들이 있다.
팔에 소독약 뭍은 솜 댈 때부터 움찔 움찍 하다가 심한 경우는
건장한 팔뚝에 얇은 바늘 꼽자마자 까무룩 하고 쓰러지고는 한다.
우리 병원에서는 버터플라이라는 아주 작은 바늘이 달린 것으로 혈액 검사를 한다(위에 사진)
처음엔 바늘이 저렇게 작은데? 저 체격에? 남자가? 하며 놀랐는데...
생각 보다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보니 이제는 그런가 보다 한다.
사실 무서운 건 무서운 거지 거기에 남자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사람마다 다른 것뿐이니 아이고 체격도 당당한 남정네가 왜 이러나 할 이유가 없다.
그냥 그분은 바늘이 무서운 분이고 누워서 릴랙스 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야 혈액검사 시 안전하다.
그리고 2번 방에서는 직원 Gl이 환자가 수술 전에 필요한 심전도를 쓰고 있었다(*독일에서 40 이후의 사람들은 안과 또는 정형외과 수술 전에 가정의 병원에서 피검사와 심전도를 해서 오라고 하는 경우들이 자주 있습니다)
나는 1번 진료실에서 통증 치료받고 있던 환자 침을 뽑고 드레싱 해드리고 나오는데
병원 입구가 또다시 혼잡해지고 있었다.
(*독일 양방 병원에서도 침을 놓는 곳들이 있습니다. 물론 의사가 그전에 침에 관한 과정을 따로 이수해서 자격증을 받아야 하고 실습시간을 모두 채우고 나서야 진료를 할 수 있습니다. 요 이야기는 다음번에..,)
병원 현관 앞 환자 대기실 맞은편에 나와 있는 접수처 창구 에는….
진료가 끝나고 병가가 필요한 사람, 또 다음번 진료예약이 필요한 사람, 처방전 또는 소견서가 필요한 사람, 진료예약은 하지 못했지만 갑자기 아파서 그날 당장 진료가 필요한 사람, 등등.. 사람들로 붐볐다.
빠르게 상황 정리를 하고 환자 대기실에서 이미 기다리고 있던 환자를 2번 방으로 안내할 때였다.
이환자가 뭣 때문에 내원했는지 차트에 적혀 있지가 않는 거다.
보통은 차트에 환자번호(*독일 개인 병원에는 등록된 환자들의 고유 번호가 있습니다) 환자이름 그리고 진료 예약된 사람인지 아닌지 (아주 응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진료 예약 되어 있는 환자 순으로 진료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환자의 진료 목적이 간단하게 체크되어 있다. 예를 들어 혈액검사 후 검사결과 상담 이라던가, 상처치료,
혈압문제, 정신적 문제, 또는 정형외과 질환 가로 열고 허리, 다리, 발, 어깨, 퇴원 후 진료, 수술 후 실밥, 피부과 질환, 등등,
우리끼리의 암호 같은 의학용어 줄임말로 진료 목적을 적어 둔다.
병원 진료실에 환자가 안내되면 그 앞에 항상 진료 차트가 대기 중이다.
그래야 원장쌤이 진료실 들어가기 전에 차트 확인 하고 빠르게 환자 진료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도 환자가 초음파가 필요한지 통증 치료가 필요 한지에 따라 진료실을 나누고 주사 등을 미리 준비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가끔은 너무 바쁘면 직원들이 컴퓨터 안에 환자 기록 페이지 에는 써 두고 차트에는 못 적어 두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는 환자를 진료실로 안내하며 빠르게 확인하고 적어 두면 된다.
나는 그 예의 질문을 가볍게 날리며 "환자분 어디가 불편하셔서 오신 거예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40대 후반의 키가 크고 안경을 쓴 남자는 안경 너머로 눈동자를 이쪽저쪽 굴려 가며 생각이 날듯 말듯한 표정으로 "음 헤..."라며 버벅 거렸다.
나는 바로 그 말을 알아채고 받아
“아 Hämatom 헤마톰 이요?"라고 물었고 환자는 마치 연예인 누구 더라 하며 한참 이름 찾아 헤매는데 옆에 있던 사람이 "아 누구잖아!"라고 이야기해 주면 "아 맞다 누구!"라고 반가워할 때 와 같은 표정으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환자에게 미소를 지으며 "정확히 어디 부위에 헤마톰이 있으세요?"
라고 물었다.
Hämatom 헤마톰 이면 우리말로 혈종을 이야기한다. 젊은 남자들 중에서도 축구나 격한 운동을 하다 부딪히거나 넘어져 다쳐서 혈종이 생겨서 오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이럴 때 원장쌤이 초음파를 해서 정확하게 안을 들여다보아야 하기 때문에 부위가 중요하다
그래야 진료 침대에서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환자가 누워 있어야 하는지 또는 앉아 있어야 하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다정한 질문에 환자는 급 당황 하더니 매우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순간 나는 ‘뭐지?’싶었지만....
그렇다고 확인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다시 한번 찬찬히 물었다.
"환자분 정확히 어느 부위에 혈종이 생기셨나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세요!"
그랬더니...
환자는 얼굴이 불타는 고구마가 돼서는 손가락으로 한참 아랫동네를 가리키며.."뒤쪽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제야 나는 이환자가 혈종과 치질을 헛갈렸구나 싶어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야 했다
가급적 환자가 무안하지 않도록 덤덤하게 “”치질 이요,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라며 최대한 자연스레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이해한다 독일 사람이어도 의학용어는 어렵다 그냥 일상에서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도 많지만 주로 라틴어로 되어 있는 독일어 의학용어들은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 들 일 때가 많아 일반인들은 잘 모르실 때가 많다.
그래도 치질과 혈종 정도는 일상 용어 중에 하나라 할 수 있지만 Hämorrhoiden헤머로이든, Hämatom 헤마톰 서로 발음이 비슷하기도 하고 살다 보면 어느 때는 단어가 딱히 잘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지 않겠는가.
단어가 안 떠오르는 것도 무안할 판인데 속도 모르는 아줌마가 자꾸 정확하게 어느 부위냐고 가리켜 보라 하니 환자는 미치고 팔짝 뛸 판이었던 거다.
나는 휴게실에서 한참을 웃고 커피 한잔 내려 마시며 그 환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던 지난날을 떠올려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미대 출신의 미대 언니였지 의대 또는 간호학과 출신이 아니다.
그러니 병원일 시작 했을 때 그놈의 의학용어들이 월매나 낯설고 어려 웠겠는가.
다행히 그전에 자연치유사 과정을 이수하고 있었기에 기본 적인 용어들은 알고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에브리데이 모르는 것들 과의 전쟁이었다.
어느 날 우리 직원 중에 한 명이 자기 엄마가 벌써 갱년기라는 거다.
그때까지 갱년기 또는 폐경기를 일컫는 단어 Wecheljahr 벡셀 야 하나만 알고 있던 나는
그녀가 말한Menopause 메노파우제 를
männerpause 메너파우제 로 알아듣고는
속으로 '뭔 단어가 이렇게 노골적이야!'라고 했었다.
Männer는 일반적으로 남자를 일컫는
(복수) 단어 이고 pause는 쉼, 휴식을 말한다 붙여 말하면 남자 휴식
나는 아따 폐경도 서러운데 단어가 왜 이따구야 싶었다.
우리는 폐경이라는 단어가 친절하지 않다고 해서 완경이라는 말을 한다는데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병원 일 을 이야기 하다
남편에게 아니 독일어 갱년기 단어는 왜 그따위 인지에 대해 물었다.
남편은 나의 말도 안 되는 세상에 없는 단어
männerpause 를 듣고 정말이지 눈물까지 찔끔 거리며 웃어젖혔다.
독일에서 살아온 수십 년의 세월이 무상해진 순간이 였다고 하겠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틈만 나면 의학용어 공부를 한다. 남편이 가끔 "이야 그렇게 공부하면 명문 S대도 문제없겠어 안 그래 남자휴식?"이라고 나를 놀려 대도
아랑곳하지 않고 짬짬이 열공한다.
나의 개똥철학
몰라서 틀리는 것은 하나도 창피할게 없다모르면서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거다.
라는 것을 읊조리며 지천명이 훨씬 지난 나이에 열 번 읽어도 금세 사라져 버리는 단어들을 보고 또 본다.
무한긍정 마인드로 언젠가는 먹고 말테야 가 아니라 '언젠가는 몽땅 알게 될 거야! 를 외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