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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Sep 22. 2024

이곳에서의 아침들

14. 모닝커피


혼자 여행을 할 땐 되도록 저녁에는 돌아다니지 않는 편이다. 지금보다 더 체력이 좋았을 땐 위험하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서였지만 사실 요즘은 그것보다는 더 이상 돌아다닐 힘이 없다는 것이 슬프지만 가장 큰 이유다. 내 여행에 밤 시간이 사라진 대신 다행히 아침이라는 시간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참 오랜 시간 저녁형 인간, 아니 새벽형 인간으로 살아왔다. 해가 중천에 떠야 겨우 일어나 해가 져야만 정신이 깨어나던 시절이 있었다. 저녁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들어야 하는 라디오 스케줄이 꽤 빽빽해 방에 앉아 이리저리 주파수를 돌려가며 낄낄거리고 작업하는 것이 그 시절의 낙이었다. 조용하고 어둡고 모든 것이 잠들어가는 시간이 참 좋았다. 그 고요한 시간에 라디오를 들으면 오직 ‘우리’만 아직 깨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특별한 기분도 좋았다.


취업을 하고 출근을 해야 되는 월-금요일이 생기며 나는 심야라디오와 멀어졌고 힘겹게 아침에 눈을 뜨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밤을 사랑했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그렇게 산지 10년이 넘어서일까. 요즘은 부쩍 밤보다도 아침이 좋아지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겨울보다 여름이 좋아진다. 나이가 들어가며 꽃이 좋아지는 건 내가 잃어가는 생명력과 화려함을 가져서라는데, 그런 이유에서 일까. (엄마가 듣는다면 젊은 게 까분다! 라며 등짝을 내려치겠지만 실제로 모든 것이 잠드는 시간이 서글퍼지는 건 어쩔 수 없는걸요.)



여행을 하면 평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부지런을 떤다. 아침 공기라는 게 회사 가는 길에 맡으면 고단함이 느껴지지만, 여행길에선 어찌나 상쾌하고 기분이 좋은지! 특히 교토에는 아침 일찍 문을 여는 곳이 많기 때문에 평소에는 절대 먹지 않는 아침밥을 먹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며칠간 나는 계획 없이 그저 일상을 살듯이 여행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책 한 권을 들고 산책을 하다 고요해 보이는 카페가 있으면 들어가 커피를 한잔 마시거나, 맛있어 보이는 샌드위치를 곁들였다. 목이 뻐근해질 때까지 책을 내려다보다가 남은 커피가 없어 고개를 한 바퀴 돌리며 스트레칭을 하곤 일어나려 핸드폰 시계를 보면 9시였다. 한낮의 해를 빛이라 표현한다면, 아침의 해는 볕이라 부르는 게 적당할 것이다. 볕 아래서 눈을 끔뻑끔뻑 느리게 감았다 뜨면 이 시간 지하철에 갇혀있었던 수많은 시간을 보상받고 싶어 진다.


아침은 깨어나는 시간이다. 여름의 아침은 길고, 가벼우며 하루를 준비하는 소란스러움이 가득하다. 완전한 타인이 되어 사람들의 부산한 아침을 바라보면 아름답다. 내 출근길은 참 고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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