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않아도 피어나는 것

by 글그림



소문 없이 도착하는 계절처럼

피지 않아도 향기 나는 것들이 있다


눅눅함이 손을 뻗은 수건은

베란다에 해가 들기를 기다린다


모기 한 마리의 방문을 허락했고

식탁에서 참외 하나를 깎는다


텀블러에 담긴 얼음이 녹는 시간

할 말을 고르다가

다시 삼키는 것도

피는 일인지 모른다


피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이 있다

눈을 다물수록 선명해지는 얼굴처럼


여름은 돌담 그늘에서 자라고

나는 담을 따라 걷는다

길고 긴 오후 한복판

모든 것은 흔들리는 아지랑이가 된다


달궈진 아스팔트에 땀자국도

꽃이라 부르기로 한다


아니 모두 피어나는 것은

나는 꽃이라 부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