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김장이란 걸 하는 날이다.
이 추운 날씨에 굳이
누군가 담가주거나 잘만 사 먹던 김치를
왜 직접 하자는 건지,
무엇보다
겨우내 두고 먹을만한 맛일런지... 걱정됐지만
호기심 많은 처제가 일을 벌였고
실행력 높은 아내가 덥석 물었다.
용감한 자매다.
전원주택에 터를 잡고
여전히 신혼처럼 알콩달콩 사는 처제네 집에
점심때가 다 되어 도착했다.
만반에 준비를 마친 '오늘의 작업반장' 처제가
배추가 겨우 12 포기 밖에 안된다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는다.
(하긴, 어릴 적 김장 100 포기는 기본이지 않았던가)
자~ 빨리 끝내고 점심 먹자고!
처제, 난 뭐 하면 돼?
호기롭게 팔을 걷어 부치니
나는 무채 담당이란다.
대패 모양의 칼로 힘만 쓰면 되는 단순 노동인데도
둥근 무 토막을 잡고 요령껏 썰어내는 게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한때, 주말마다 앞니 두 개로 무를 연신 갈아댔던
TV속 모 개그맨처럼 30분 넘게 무만 갈았다.
본격적으로 김치 속을 만드는 시간이 왔다.
대수술을 앞둔 의사처럼
처제는 고무장갑을, 아내는 앞치마를
내게 장착해 주고는
큰 통에 고춧가루를 왕창 붓고
젓갈, 설탕, 사과 간 것, 다진 마늘 등등
갖은양념들을 끝없이 넣으며 열심히 비비라고 한다.
양손을 깊숙이 담그고
넘치지 않으면서 골고루 잘 섞이도록 계속 치대니
어느새 걸쭉한 양념으로 조금씩 변한다.
마지막으로
썰어둔 갓과 파에 무채까지 다 넣고 마무리하고 나니
시작한 지 3시간이 후딱 지나버렸다.
꼬르륵
이러다 과로사하겠다 싶은 순간,
배 속 알람소리가 살렸다.
배추에다 양념 속 넣는 하이라이트는 잠시 미루고
라면을 끓여 급하게 허기를 때웠다.
한주먹 정도 빠르게 완성한 김치를 입안에 넣는 순간,
눈물이 핑 돈다. (꿀맛이다...)
신이여,
이것이 진정 제가 만든 김치 맞나요?
고춧가루 한 조각 남김없이
그릇을 싹 비웠다.
허기나 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흔한 김치 하나에도
엄청난 노동의 숭고함이 담겼다는 사실을
이제 알아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