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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Nov 27. 2023

김장하는 날

노동은 숭고하다

난생처음


김장이란  하는 날.


이 추운 날씨에 굳이

누군가 담주거나 잘만 사 먹던 김치를

직접 는 건지,


무엇보다

겨우내 두고 먹을만한 맛일런지... 걱정됐지만


호기심 많은 처제가 일을 벌였고

실행력 높은 아내가 덥석 물었다.


용감한 자매다.




전원주택에 터를 잡고

여전히 신혼처럼 알콩달콩 처제네 

점심때가 다 되 도착다.


만반에 준비를 마친 '오늘의 작업반장' 처제가

배추가 겨우 12 포기 밖에 안된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다.

(하긴, 어릴 적 김장 100 포기는 기본이지 않았던가)


자~ 빨리 끝내고 점심 먹자고!
처제, 난 뭐 하면 돼?


호기롭게 팔을 걷어 부치

나는 무채 담당이란다.


대패 모양의 칼로 힘만 쓰면 되는 단순 노동인데

둥근 무 토막을 잡고 요령껏 썰어내는 게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한때, 마다 니 두 개로 무를 연신 갈아댔던

TV속  개그맨처럼 30분 넘게 무만 갈았다.


본격적으로 김치 속을 만드는 시간이 왔다.


수술을 앞둔 의사처럼

처제는 고무장갑을, 아내는 앞치마를

내게  장착해 고는


큰 통에 고춧가루를 왕창 붓

젓갈, 설탕, 사과 간 것, 다진 마늘 등등

갖은양념들을 끝없이 넣으며 열심히 비비라고 한다.


양손을 깊숙이 담그고

넘치지 않으면서 골고루 잘 섞이도록 계속 치대니

어느새 걸쭉한 양념으로 조금씩 변한다.


마지막으로

썰어둔 갓과 파에 무채까지  넣고 마무리하 나니

시작한 지 3시간이 후딱 지나버렸다.


꼬르륵


이러다 과로사하겠다 싶 순간,

배 속 알람소리 살렸다.


배추에다 양념 속 넣는 하이라이트는 잠시 미루고 

라면을 끓여 급하게 허기를 때웠다.


한주먹 정도 빠르게 완성한 김치를 입안에  순간,

눈물이 핑 돈다. (꿀맛이다...)


신이여,

이것이 진정 제가 만든 김치 맞나?




고춧가루 한 조각 남김없이

그릇을 싹 비웠다.


허기나 맛 때문만은 아니다.


흔한 김치 하나에

엄청난 노동의 숭고함이 담겼다는 사실을

이제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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