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단편

by 장순혁

아버지, 당신께 벌써 몇 번이나 적었는지도 모를 편지를 적습니다.
오늘도 몸 성히 잘 지내시는지요.
저는 잘..
저는..
음..
솔직히 잘 지내지는 못합니다.
아버지께 보낼 편지를 적으며 새벽을 보냈던 날들이 늘어날수록
제 마음은 편해졌었지만
이젠 그렇게 현실을 직시하지 않기에는,
현실이 너무나 커다랗게 저를 덮쳐오고 있습니다.
차가운 현실은 언제나 상상을 웃돈다는 것을
저는 이곳에 오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평생 모를 이 감정을,
몰라야만 할 이 감정을 저는 너무나 절실하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탓해야 할지도, 아니, 탓할 수도 없는 지금이 스스로를 탓하게끔 하는 듯도 합니다.

어제의 악몽은 오늘의 현실이 되어가니,
오늘의 악몽은 내일의 현실이 되겠지요.
어쩌면 저는 낮 동안 큰 악몽 속을 헤매이다가 밤이 되어,
잠에 들고 나서야 작은 악몽 속에서 숨을 돌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편지를 적는 것도 아마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어제 잡아온 그들 중 하나가 털어놓았습니다.
내일, 즉 오늘,
이 새벽이 지나면 그들이 쳐들어온다는 말을 하더군요.
그자를 묶어 놓으려고 했지만
주변 이들의 불안감 어린 눈빛을 보고 죽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몰라도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되뇌었습니다.
총에 튄 핏방울은 아직도 닦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짊어지고 가야 할 업이라 생각하려 합니다.
그렇게나마 제 주위 이들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일 지라 하더라도요.
탄약고와 주변 건물들, 시체들의 품까지 뒤져
저희에게 남은 총알들을 모조리 모아 세어보았습니다.
한 명당 서른 발 정도의 총알이 돌아갈 것 같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수입니다.
한 발에 한 명을 쏴 죽인다고 해도 부족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 죽는다고 해도 지옥에 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저는 지옥에 있으니까요.
이곳만 벗어날 수 있다면..
아니, 아닙니다.
이런 생각은 하지 않겠습니다.
모두를 쓰러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백명에서 백오십명으로,
백오십명에서 백명으로,
백명에서 오십명으로,
오십명에서 이젠..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겨진 이들은 저를 더는 동무로 보지 않습니다.
따라야 할 상관으로 보지요.
그저 조금 더 침착했고,
조금 더 예민했고,
조금 더 빨랐을 뿐인데.
그러나 거절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이에게 책임을 돌리기에는 모두 지쳐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다면, 해야겠지요.
아버지의 가르침 중 하나가 이것이었기에.
조금 더 아버지의 가르침들을 가슴에 새기며 기억할 것을.
후회가 불쑥불쑥 두더지처럼 튀어나옵니다.
티는 내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흔들리면 모두가 흔들릴 테니까요.
제가 한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죽어나간 이들은 마른 땅을 파내어 묻어주었습니다.
나뭇가지를 엮어 십자가를 만들어 세워도 주었습니다.
이 사람들, 부디 천국에 가게 해 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천국이든, 고향이든, 그 어디든.

아버지.
제가 아버지께 보낸 편지들을 읽어보셨는지요.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편지에 적어 보낸 준철이 형은
편지를 보낸 다음 날 죽었습니다.
제가 죽인 거지요.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고 말렸어야 했는데.
어느샌가 포위되어 감히 움직이지조차 못할 때,
적의 주의를 돌리겠다고 뛰쳐나가던 준철이 형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아마 그 모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날이 밝은 후 남은 이들을 이끌고
준철이 형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수류탄에 맞아 조각나버린 준철이 형.
살점 덩어리들과 핏자국만이 남아있던 때,
누군가 발견한 익숙한 오른손에는 형의 자그마한 십자가 목걸이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형.
매일 땅 속에 묻힌 이들을 위해 기도하던 형.
매일 우리를 위해 기도하던 형..
저는 형 대신에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형처럼 말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던 형이 누군가 중 하나가 되어버렸으니까요.
준철이 형의 십자가 목걸이를 저는 제 목에 걸었습니다.
자그마한 금속 사슬이 뭐라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온 준철이 형의 삶은 참 고된 삶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프지만 울지는 않았습니다.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면 멈추지 않을 것이란 생각 때문입니다.
바보 같다고 하셔도 할 말은 없습니다.
그냥.. 그랬으니까요.

오늘은 옆에 있는 이들의 권유에 담배 한 개비를 피웠습니다.
폐 깊숙한 곳에서부터 하얀 기침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머리가 핑 돌며 무척이나 어지러웠습니다.
어린 시절, 마루에 걸터앉으신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시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때와 같은 냄새가 났습니다.
냄새는 순간을 기록한다는데, 그 말이 참 맞는 말이었구나,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직 담배를 피우시나요.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아버지께 묻고 싶은 것들이 많이 생각납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과거는 허여멀건하게 희미해지고
원래의, 이곳에 오기 전의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성격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평생 이곳에서 누군가를 죽이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이곳의 규칙.
누가 그런 규칙을 만든 것인지..
그 규칙을 만든 이를 제일 먼저 죽여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닐까요.
거센 파도처럼 떠오르는 구역질을 억지로 참습니다.
이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토해내면 모든 것들을,
아버지에 대한 것들까지 모두 토해내게 될 것만 같아 두려워서 그리 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무감각해졌습니다.
이제 저는 저의 주변 이들을 이름으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차갑고 단순하게 나열되기만 한 숫자로 기억합니다.
엊그제는 스물, 어제는 열, 오늘은 다섯, 아마 내일은..
내일이 오면 알게 되겠지만,
아마 숫자를 셀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이런 생각을 할 시간에 더 생산적인,
더 도움이 되는 생각들을 해야 할 텐데.
어떻게 아군들을 살려 보내야 할 지에 대해 모든 시간을 할애해도 부족할 텐데.
어떤 게 좋고, 어떤 게 나쁜지도 희미해졌지만,
남들에게 말해서는 안될 생각들이 나쁜, 안 좋은 생각이겠지요.
안 좋은 생각이 들 때마다 저는 제 뺨을 스스로 후려칩니다.
볼은 발갛게 부어오르고 입에서는 비릿한 피맛이 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아니, 괜찮아야 합니다.
괜찮아야만 합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저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정신을 차려야만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 다짐해야만 합니다.

아버지, 이곳에 와 제가 처음 죽인 적의 마지막 말을 저는 아직 기억합니다.
빼앗긴 구역을 재탈환하고 살아남은 이들을 찾아 해맬 때
발견한 적이었습니다.
기껏해야 열여섯 남짓해 보이는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왼쪽 팔과 다리가 날아간 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어머니.. 어머니..'를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 모습을 보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총을 견착하고
떨리는 손으로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 소년은 더는 움직이지도, 중얼거리지도 않았습니다.
몸 안에 가둬 둔 피가 끊기지 않는 줄기가 되어 새어 나왔습니다.
더는 피조차 흘러나오지 못하자
저는 그의 눈을 감겨주었습니다.
아직 따스했습니다.

그제야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저들은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저들도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어머니가 그리운 사람.
우리와 같이,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었던 사람.

실은 오늘 점심즈음에
남은 이들을 모아 말해두었습니다.
떠나고 싶으면 지금 당장 떠나라고.
가족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가라고.
이곳에 남으면 그저 개죽음만 당할 뿐이라고.
혼자 남겨지는 것은 각오했습니다.
저는 그 어디로도 돌아갈 곳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제 말을 들은 이들은 그저 고개를 떨굴 뿐
아무도 떠나는 이가 없었습니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혼자 남겨지지 않았다는 안도감인지,
혼자 남겨지지 않았다는 절망감인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돌아갈 곳이 있을 텐데.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텐데.

이 편지를 다 적고 나면 그들에게 총알을 나눠줄 것입니다.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어떤 표정이든, 그 표정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 오늘이 지나면 아마 아버지의 곁에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굳은 살 박힌 손으로 제 눈물을 닦아주시려나요.
아버지는 저를 안아주시려나요.

아버지, 슬슬 동이 트려고 합니다.
오늘이 시작되려 합니다.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다음 편지는 아버지 앞에서 직접 읽어드릴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keyword
이전 09화연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