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단편

by 장순혁

“음.. 켜진 건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는 그.

"흠, 흠..
안녕.. 안녕하세요?
흐.. 이거 되게 쑥쓰럽네.
우선 반갑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를 소개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구인입니다.
아름다웠고 푸르렀던 둥근 행성에 사는 생명체죠.
아름다웠고 푸르렀던..
예. 맞습니다.
더는 아름답지도, 푸르지도 않아진 행성입니다.
몰아치는 모래바람 떄문에 새들은 죽었고,
밀물과 썰물이 멈춰 움직이지 못하는 바다 때문에 물고기들이 죽었어요.
그 다음은 땅에 사는 인간들의 차례겠죠.
유일한 식량이란 감자나 옥수수 뿐인데, 그것들마저 이젠 고갈될 기미가 보여요.
그전에 우리가 뭔가를 가지고 돌아가야 합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무언가를.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와는 다른,
훨씬 진보해있을 여러분의 과학이 필요합니다."

멋쩍게 웃어보이는 그.

"어.. 당신들이 이걸 본다는 전제하에 말하는 건데요.
물론 당연한 소리지만요. 하하.
아! 우주, 우리가 존재하는 이곳.
빅뱅부터 시작해 참 많은 일들이 있었죠.
아직도 설명되지 않는 일도 많고요.
우리가 살던 곳은 더는 살 수 없게 됐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자원은 고갈되고, 거주하는 이들은 늘어가고,
산들과 바다는 오염되고, 공기는 점점 희박해지고.
그래서 우리는 떠납니다.
우리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커다란 우주로요.
도박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도박이라면 희생할 것이 무엇이든지 감수할만 하죠.
우리는 이제 당신들을 찾아서 떠납니다.
어쩌면 당신들이라면 문제를 해결할 대단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는 한숨을 푸욱, 내쉰다.

"하아..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우리는 아직도 당신들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릅니다.
그러나 이 넓은 우주에 우리만 살 거라는 생각은 감히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엔 이 우주가 너무 넓으니까요.
상상에 상상을 더하고, 거기에 또 상상을 더해도 그 끝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이렇게 끝을 모를 광활한 곳에 우리만 있으면 너무 심한 낭비겠죠.
우주가 헛된 낭비를 할 정도로 멍청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의 표정에 어린아이같은 순수함이 보인다.

"만나겠죠. 만나게 되겠죠. 만날 수 밖에 없게 되겠죠.
당신들을 만나면 어떻게 인사를 주고받아야 할까요.
악수를 해야하는지, 목례를 해야하는지, 허리를 숙여야 하는지,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
어쩌면 이 행동들이 모두 당신들에게는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일지도 모르니까,
우선 가만히 있어야 할까요.
인간도 처음 만난 생명체들과 마주할 땐 예의를 갖추는데,
어쩌면 당신들이 먼저 인사를 건낼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면 그 인사는 어떻게 받아야하나.
공격할까? 아니면 반가워할까?
후자이기를 바라기는 하는데..
우리에게는 공격으로 여겨지는 행동이
그들에게는 반가움의 표시일 수도 있어요.
뭐.. 어떻게든 되겠죠.
설마 이 불쌍한 우주난민들을 괴롭히려 들지는 않을 테니까요, 하하.
부디 그 정도의 지능 체계는 잡혀있으면 좋겠는데.."

그는 카메라를 들고 우주선 내부의 이곳 저곳을 비춘다.

"저곳이 샤워실, 저곳이 식량 창고,
저곳이 흙과 각종 식물들의 씨앗들 창고입니다.
지구의 흙에서도 외계 식물들이 자랄 수 있는지,
외계의 흙에서도 지구 식물들이 자랄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착잡한 표정의 그.

"저곳이 제 친구들의 수면실입니다.
저를 제외한 제 친구들은 이미 모두 잠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우주선은 주기적으로 사람의 손으로 직접 점검을 해야합니다."

입고있던 셔츠의 단추를 푸는 그.
심장 쪽에 작은 흉터가 보인다.

"여기, 심장에 자그마한 기계, 칩을 달았어요.
심장 박동이 멈추면 다음 순번의 칩을 가진 이의 차례가 돼요.
제가 죽을 때쯤이면 제 친구들 중 한 명이 깨어나는 거죠.
제 시체와 친구들의 시체는 우주선 밖으로 방출되어 각각,
동, 서, 남, 북.
동서, 동남, 북동, 남서, 남북, 북서.
다양한 방향으로 사출될 겁니다.
그렇게라도 효율적으로 우리의 흔적을 전 우주로 보내는 거죠.
우주선이 가는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도
우리의 시체를 보내는 걸로요."

잠시 표정이 굳더니,
한숨을 내쉬는 남자.

"..사실 조금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빛의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이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걸 감당할 정도의 인원을 충분히 태우긴 하지만,
만약, 만약에라도 당신들을 만나기 전에 우리의 삶이 끝이 난다면..
모두 죽기 전에 당신들에게 닿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뭐, 어두운 얘기는 하지 않기로 하죠.
지금도 창밖은 충분히 어두우니, 하하.
물론 걱정보다도 훨씬 큰 욕심이 생기긴 합니다.
저는 사실 직접 당신들을 만나길 바라고있거든요. 물론 제가 살아 있을 때. 하하,
운이 좋다면, 아주 운이 좋다면 제가 깨어있을 제 차례에서 당신들을 만날 수도 있겠죠.
당신들의 과학기술은 과연 얼마나 발전해있을까요?
우리보다는 더 진보했겠죠?
아마 우리랑 말을 할 수 있는 기계도 있을지 몰라요.
어쩌면 아량과 친절함이 기본 천성이라
우리를 불쌍히 여겨 지구를 구원해줄 수도 있고요.
당신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우리를 본 적이 있나요?
우리의 존재를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우리는 당신들과 친해지고 싶어요.
우리는 당신들을 적대하지 않아요.
우리는 지구인입니다.”

딸깍.

영상은 그렇게 끝이 났다.

‘다시 재생할까요?’

“...아니. 괜찮아.”

그렇게 말한 이는 창밖을 내다본다.

내일이면 우주선에 올라타 출발할 것이다.
황폐한 지구 대신에 살 곳을 찾아서.
지구의 마지막 결사대가 되어.

창문 옆에 놓인 거울을 바라보는 이.
영상 속의 사람과 동일 인물이다.

이 영상은 예정대로라면 내일 출발한 후,
동료들이 동면에 들어가면 기록용으로 촬영해야 한다.
그가 혼자, 직접.
그말인즉슨, 그는 아직 이 영상을 촬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 촬영하지도 않은 영상이 그에게 도착했다.
그것도 그가 출발하기 전날에.
이게 무슨 의미일까..
채 그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곧이어 다른 영상들도 속속들이 도착했다.
그와 같은 우주선 탑승자들인 그의 친구들이다.
그는 차례차례 영상들을 재생해본다.

“안녕하세요. 두 번째 지구인입니다...”

“안녕하세요. 세 번째 지구인입니다...”

...

어느새 마지막 영상만이 남았다.
그는 조심스레 재생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마지막 지구인입니다.
음.."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는 그.

"이미 아시다시피
내 친구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이제 나 혼자 남았습니다.
지구를 떠나온지도 어느덧..
하아, 잘 모르겠군요.
그동안 지구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기적적으로 황폐화 된 지구를 다시 푸른 별로 되돌릴 방법을 알아서 찾아냈을까요?
..이것도 잘 모르겠네요.
사실 친구들이 죽기 전 남긴 기록 영상들을 모두 봤습니다.
당신들은 아주 작은 흔적마저 보이지 않은 모양이더군요.
아직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 정도로 진행되지 않았나?
아니면 그 흔적을 우리가 보면서도 깨닫지 못했나?
..이제는 인정할 수밖엔 없겠어요.
당신들은 없습니다.
존재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 드넓은 우주에는 우리밖에 없었던 겁니다.
지구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말을 남깁니다.
이 우주 어느 곳에는 지구라는 행성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우리는 살았고, 그곳은 이제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라는 명칭의 생명체는 멸종했고 지구는 멸망했습니다.
우리가 한 행동들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겁니다.
아무런, 아무런 의미도..
...이상입니다.”

딸깍.

마지막 영상도 끝이 났다.

‘다시 재생할까요?’

“...아니.”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똑똑’

누군가 그의 방문을 두드린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 화면을 끄고
누군가에게 들어오라고 말한다.

"안녕하십니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
마지막 영상 속의 인물이다.
영상에 있었던 얼굴보다는 훨씬 젊다.
남자는 아마 자기 삶의 마지막에 영상을 촬영했나 보다.
넓은 우주에서 혼자 남겨지게 되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아직 안주무셨어요?
내일 출발하려면 일찍 주무셔야죠.”

현재의 젊은 얼굴과 영상 속 나이 든 얼굴이 겹쳐보인다.
현재의 희망과 미래의 절망 또한, 겹쳐보인다.

“어.. 그래야지.”

남자는 방문을 조심스레 닫고 나가고,
다시 그는 홀로 남겨진다.
생각에 잠기는 그.

이 영상을 동료들에게 보여줘야 하나?
동료들에게 알려줘야 하나?

우리가 촬영해 우주로 보낸 영상들이
우주의 끝에 다다라 부딪힌 뒤,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고.
우주에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지구만이 생명체들의 희망이었다고.
그 희망을 망가뜨린 뒤, 버리고 도망쳐나온 우리는..
우리는 이제 끝이라고..

그는 고민하다가

"..나한테 온 영상들 전부 삭제해.
아무도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오로지 그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적어도 동료들에게 마지막 희망이라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거대하고도 거대한 우주에
우리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지금은 그 하나면 족할 것이다.

아니, 영원에 근접하는 시간동안 그 하나면 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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