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던 토마토가 싫어지기도 하다니

적당히 마음을 소분해서 간격을 둔 채 좋아했어야 했나.

by 주또

투명한 비닐봉지 안에 담긴 빨간 토마토. 키워볼까, 하다가 관둔다. 예전엔 참 좋아했었다. 어린 시절엔 말이지, 너무 좋아하는 걸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다시피 하여 질리도록 먹을 수 있었다. 왜냐 집에 오는 모든 손님들의 손엔 묵직한 토마토 한 봉지가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엄마와 아빠도 시장에 가실 경우 토마토를 필수 구매 목록에 적어두신 것처럼 영락없으셨다.


덕분에 커다란 토마토, 중간 사이즈의 토마토, 아주 작은 방울토마토를 종류별로 즐길 수 있었다. 그 흔한 ‘토마토를 맛있게 먹는 법’ 중 하나인 설탕에 절여 먹거나 뿌려 먹지도 않았다. 오로지 생 토마토 그대로 입에 넣었고 베어 물었다. 과즙이 톡, 터지는 것이 어찌나 재미나고 달콤하던지. 세상에 이만한 과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중학생 때는 토마토 주스에도 빠져 줄기차게 물 대신 그것만 마시기도 했는데. 온몸이 온통 빨갛게 물들지 않은 것이 다행일 지경으로 말이다.


그러나 부작용이 있다면 그 이후로는 토마토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거다. 어릴 적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많이 먹어버린 탓에 성인이 된 지금에서는 토마토를 쳐다도 보지 않는다. 음식 어디 끼어있으면 빼놓고 먹기까지 한다. 토마토를 왕따시키는 거다. 누군가가 ‘먹어봐’ 하면 그제야 억지로 한 개 맛보고 마는 정도이다.


그토록 미쳐있던 무언가가 싫어지기도 하다니, 아이러니했다.


며칠 전엔 정말 오랜만으로 토마토가 그리웠다. 요즘 토마토가 유행하는 까닭이었을까. 강릉에 가서는 토마토 주스를 먹어보기 위해 뙤약볕에서 이십분가량 걸어가기도 했다. 어디 아픈 사람 마냥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입안이 바짝 말랐다. 손 선풍기를 사용했으나 무용지물이었다.


그렇게 다 죽어가는 찰나에 마침내 도착한 카페에서 다른 메뉴는 보지도 않고서 토마토주스를 주문했다. 그리고 몇 분 안 가 토마토 주스가 눈앞에 등장했다. 신기하게 토마토 윗부분을 잘라 보기 좋게 올려놓은 모습이었는데, 특이하고 귀여웠다. 신선한 데커레이션.


게다가 꿀꺽 한 모금 넘겼을 때 입안 가득 퍼지는 싱싱한 토마토의 맛이란. 시중에 판매하는 보통 토마토 주스와는 달리 달짝지근한 맛도 아녔으나 무진장 새롭게 느껴졌고 몹시 맛있었다. 오죽하면 순식간에 양이 줄어들었다. 빨대와 유리컵 바닥이 부딪혀 뻑뻑한 소음을 냈다. 단숨에 원샷을 해버린 셈이었다. “와, 진짜 맛있다.”라는 소리만 그 자리에서 스무 번은 넘게 한듯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토마토를 좋아하게 된 건 아녔다. 그 카페에서 먹은 토마토 주스가 얼마나 인상적이었으면 다음 신간의 표지에 그 토마토 주스를 찍은 사진을 넣기로 했다만. 도로 토마토를 찾진 않았다. 편의점 가서 딱 한 번 토마토 주스를 사긴 했다. 그 카페에서 먹은 주스가 떠오르기도 하고 지난날 몸에 물보다 많이 돌던 토마토 주스가 아른거리기도 하고. 겸사겸사. 물론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토마토 주스는 그 카페에서 마신 주스의 맛을 절반도 따라오지 못했다.


토마토는 생긴 것도 희한했다. 왜 빨간색이지. 초록색 모자를 쓰고 있지. 쪼매난 게. 시비를 걸고 싶기도 했다. 좋아하다 싫어진 터라 삐뚤어지는 건가. 애증, 뭐 그런가.


근데 사람들은 토마토 자주 먹지도 않는 것 같은데 왜 그리 토마토에 환장하고 있지. 여기저기 인기인 토마토. 케이스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엽서로도. 책 표지에도. 스티커로도. 네일아트. 키 링과 옷 프린팅에도. 죄다 토마토투성이다. 그렇다고 해서 토마토를 들고 다니며 먹는 사람은 절대 못 봤던 거 같은데.

실은 나 역시 최근 동생의 친구가 만든 에어팟 케이스와 키 링을 받았다. 케이스에는 토마토가 그려져 있었고 키 링은 토마토 모양 그 자체였다. 군말 없이 바로 장착. 토마토 특유의 풀 내음이 나는 것도 같다.


토마토의 꽃말은 ‘완전한 사랑’, 또는 ‘사랑의 결실’. 토마토에도 꽃말이 있다는 게 무척이나 놀라웠고, 이런 의미를 지닌 토마토가 싫어졌다는 것에 대해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사랑의 완성이 미움이 되어버린 느낌. 엄청 좋아도 적당히, 적당히 마음을 소분해서 간격을 둔 채 좋아했어야 했나. ‘질리도록’에 가지 않도록 조절했어야 했나.


토마토를 한 개 집어 입안에 넣었다. 몇 번 굴리지도 않았는데 톡, 터져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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