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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스트의 독서법

by 주하 Feb 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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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하나의 세계다. 책을 읽고 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구름과 같다. 생각은 구름을 타고 작가의 세계를 이곳 저곳 떠다닌다. 가보지 못한 장소와 겪어 보지 못한 경험 그리고  만나지 못한 인물들이 가득 펼쳐지는 새로운 하늘 아래 오직 작가와 독자인 나 그렇게 둘만의 은밀한 독백이 축적된다.

새로운 책을 처음 마주할때면 유년시절 하얀 백지 같았던 마음이 떠오르곤 한다. 상상력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잘 모르던 그때 길 모든것이 새로운 세계로의 통로가 되었고 자극이 되어 매일의 신선한 자극이 하루의 재미를 더했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찾아온 독서라는 취미는 내게 유년시절 누렸던 순수한 상상의 귀환이자 회귀의 본능이었다.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읽을때도 있지만 주로 책은 이렇게 독서 본연의 즐거움 그 자체로써 다가온다.

물을 자주 마실수록 목이 마른것처럼, 독서를 자주할 수 록 텍스트에 갈증이 생긴다.

독서 속도는 그 마름을 채우기라도 하듯 함께 자라며 독서욕을 충족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 욕망은 도서관이나 서점에 갈 때면 그 규모만큼 증폭되곤 한다.

내가 읽지 않은 책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언제 이 책을 다 읽어보지?! 라는 생각과 함께 조급함이 생긴다.

이런 갈급함이 서재에도 반영된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서재 한 켠에 ‘읽을 책들’ 을 위한 코너가 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이나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상 책들을 보관하는 자리이다.

독서에 푹 빠지고부터 이곳은 언제나 가득 차 있다. 다 읽지 않아도 또 빌려오고 사다 보니 언제나 붐비는 곳이다.

틈날 때마다 읽고 싶어서 집 곳곳에 책을 뿌린다.  쇼파 위, 식탁 위, 침대 옆, 책상 위, 차 안 등등

예컨대 서재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거실 쇼파에서는<파리의 사생활>을, 반신욕 하는 욕조에서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침대에서는 <내가 확실히 아는것들>을 읽는 식이다.

하루 일과 틈틈이 시간을 조각내서 몇 문장이라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피크닉이나 여행을 갈때도 책은 다정한 동행이 되어준다.

단 몇줄 읽고 책을 덮더라도 바깥에서 읽는 독서는 생생하고 선명한 즐거움을 선사하기에.


미니멀 관련 책을 읽다보면 다독가 보다는 소독가를 더 자주 접하게 된다.

꼭 책이 아니어도 미니멀 철학을 생각해 보면 빨리 여러 권을 읽는 것 보다 천천히 한 권을 깊이 있게 읽는 것이 더 어울린다.

물리적인 책을 비우려고 노력했듯이 독서량 또한 줄이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다.

도서관 갈 때도 여러 권 대신 한 권만 빌리고, 희망 바로 도서 대출을 할 때도 한두 권만 신청했다. 자연스레 ‘읽을 책들’ 코너가 날씬해지고 집 곳곳의 책도 한 권으로 줄였다.

‘다독보다 한 권을 재독 해야지’ 하고선 천천히 읽어나갔다.

머지않아 문제가 생겼다.

마음에 쏙 드는 책은 정독과 재독이 쉬웠으나 그렇지 않은 책은 정독은커녕 1 독조차 어려웠다.

어기적어기적 1 독을 억지로 하려니 독서가 점점 재미 없어지는 거다.

그 와중에 다음 책을 향한 다른 책에 대한 호기심이 고개를 들고 세상 밖으로 기어나가 버리곤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작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 되어주는 지적 양식으로써 책도 좋아하지만 책이라는 물성이 전하는 심미적인 부분또한 내게 큰 기쁨이라는걸 마주하게 되었다.

서점에 갈때 책들 사이에서 뿜어져나오는 희미한 바닐라향과, 책의 종이를 하나 하나 넘길때 손에 와닿는 차가우면서 보드라운 촉감 그리고 바닷가 물결 같이 넘나드는 종이의 파도소리를 들을 때, 서재에서 나만의 컬렉션이 전체적인 하나의 그림으로 다가올때면 책이 제공하는 탐미적 물성에 빠져드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이제는 양 갈래 길에서 선택만이 남았다. ‘다독가 아니면 소독가’ 어디로 가야 할까?

소독가가 나와 맞지 않음을 체감한 뒤 다시 다독가로 돌아가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책 소개란에 다독가 타이틀이 자주 보일때가 있다. 큰 숫자의 수식은 그 사람의 독서를 크게 있어 보이게 한다. 나 또한 '다독가 타이틀의 후광'을 탐하던 때가 있었다. 블로그에 독서기록을 할때면 '달에 몇권씩, 지금까지 총 몇권넘게 읽었다'는 문장들을 포함시키곤 했다. 하지만 이런 숫자는 더 높은 더 많은 것들로 내 앞을 채우려 든다. 독서의 순수한 즐거움이 달성해야하는 목표로 변절되는 순간이다.  

책을 읽을 수록 감한다. 앞을 채우는 것보다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 더 귀하다는 것을.

하여 달에 00권, 1 년에 000권이라는 수식어를 비우기로 했다.

독서 앞에 오는 숫자를 세는 것 또한 그것에 대한 집착이 될 수 있음을 느끼고 더는 수를 세지 않기로 했다.


나의 선택은 다독가도 소독가도 아닌 애서가다.

책 한 권을 꼭 정독해야 한다는 생각도 멀리 보낸다. 세상에는 나와 결이 맞는 책도 많지만 결이 맞지 않는 책도 많다. 결이 맞지 않는 책을 억지로 정독하려 한다면 독서의 즐거움 까지 잃어버릴 수 있기에.

마음에 드는 책이라 할지라도 좋은 부분만 발췌독 하는것에도 더는 자책하지 않는다.

독서 앞의 수식어 보다 뒤에 남는 울림과 교감에 마음을 쏟는다.

덕분에 도서관 서고나 서점 매대 앞에서 더 이상 지적 호기심을 애써 누르지 않는다. 마음이 소리내는 만큼 빌리고 선택한다. 이전보다 자유로운 편안함으로 독서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애서가’라는 말이 좋다. 사전적 의미처럼 ‘책’ 수집광은 아니지만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내 안에 가득하다.

비로소 ‘독서의 양’이라는 굴레에서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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