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생활 2년을 보내고 기다리던 아이가 찾아왔다.
유일한 언어가 울음인 작은 생명체에서 편히 눈을 떼는 시간은 하루에 딱 두 번이었다.
함께 낮잠을 잘 때와 남편이 퇴근해 집에 돌아올 때.
흐트러진 마음과 녹진한 몸 마디마디로 밤의 작은 틈 사이 혼자 남겨질 때면 육아 선배들의 충언이 뼛속으로 들어오곤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 아이 태어나면 어려우니까’
싱글일 때는 공감 가지 않았던 말이었다.
혼자일 때는 너무도 당연한 나만의 시간이 이제는 기다려야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일이 되었다. 그만큼 유일한 공동양육자인 남편은 절대적 위로였다.
하지만 이 위로는 야근이라는 굴레로 인해 자주 막히곤 했다.
남편이 동기에 비해 빠른 승진 소식을 전했을 때도 정작 우린 반갑지 않았다. 월급이 오른 건 반가웠지만 그만큼 늘어나는 책임과 근무 시간이 눈에 보이듯 훤했기에.
언제나 이런 예감은 빗겨가질 않는다.
그날도 혼자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중이었다. 길마다 흐드러진 벚꽃 잎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다. 어여쁜 꽃나무 길을 하릴없이 걸었다. 생경한 향기 사이로 연분홍빛 봄이 피는 것도 모르고 있었구나.라는 작은 한숨이 베어 들었다.
한숨은 다시 작은 바람으로 바뀌었다.
평일 저녁 6시 30분쯤. 다 함께 소담한 집밥을 나누고, 편한 차림으로 사박사박 동네 산책을 한다. 면 어떨까?!
함께 꽃나무 곁을 맴돌고, 꽃잎이 바람에 흐트러지는 모습을 눈에 담고, 계절의 온기를 공유한다. 집에 와서 남편이 아이를 씻기면 나는 밀린 집안일을 한다. 번갈아 가기에 서로의 숨통은 트인다. 6시가 되면 어김없이 든든한 조력자가 곁에 돌아온다는 믿음은 뾰족한 감정을 둥글게 말아준다. 날이 섰던 둘의 언어도 한결 보드랍게 다듬어진다. 는 상상 속 풍경은 그릴수록 선명했다. 희망이었다. 어둠 속 한 줄기 햇살 같은.
육아가 힘들수록 혼자서 혹은 남편과 함께 새로운 풍경을 꾸미는 날이 늘었다. 우리가 바라는 일상의 모습은 지금 회사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투명해져 갔다.
그 투명한 바람 덕분에 11년 다니던 첫 직장을 퇴사할 수 있었다.
떠내 보낸 빈자리는 정직하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비우고 난 뒤에 찾아오는 공백은 그 존재의 진짜 가치를 여실히 현실 속으로 드러낸다. 곁에서 맴돌 때는 주관적인 관점이 첨가되어 객관적인 판단을 흐리기 쉽다. 비워냄으로써 발생한 대상과 나 사이의 거리감은 잃어버렸던 객관성을 확보하고 감정적인 필터를 제거한다.
3개월 정도 누린 휴식은 우리가 비워낸 실체를 삶으로 끌어올리는데 충분한 기간이었다. 그것은 치열함, 경쟁, 불안감, 복잡함, 재촉, 소란 따위였다. 반면 우리가 원하는 삶은 이와는 정반대의 가치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순한 일상, 생활의 안정감, 사는 곳의 느긋함, 고요한 시간 같은 요소들 말이다. 이 가치들이 조화를 이루는 단순한 삶을 살고 싶었다.
많은 불확실한 미래의 선들 사이에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우리가 원하는 삶은 도시 속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전 직장, 연구직은 대부분 대 도시에 밀집해 있었고, 야근은 필연적인 직군이었기에. 우리는 그 테두리로 다시 돌아가길 원하지 않았다.
조화를 이루는 단순한 삶을 살기 위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첫 번째 생각은 시골 마을이었다. 결혼을 하고 우리는 틈이 날 때마다 ‘어디서 살고 싶어?’라는 주제로 작은 토론을 벌였다. 그럴 때면 그는 농담인 듯 진지하게 ‘시골살기’ 로망을 들어냈다. 한적한 시골에 살면서 농사나 짓고 살고 싶다는 그의 소망은 뼛속 깊이 ‘도시인’의 피가 흐르는 나로 인해 가로막혔다.
두 번째 대안은 바닷가 마을이었다. 시골 마을은 아니지만 시골처럼 한적하고 작은 바닷가 마을 말이다. 왜 바닷가 마을이냐면, 20대 시절 '여행 요정'이 내게 심어준 어느 바닷가 마을 덕분이다. 그곳처럼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파란 하늘 아래 길게 늘어진 반짝이는 지평선 사이의 느긋한 여유가 가득한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몇 달간 우리나라 몇몇 바닷가 마을을 여행하며 살 곳을 탐험해 갔다.
도시적 요소는 되도록 배제하고 자연을 더 가까이 품은, 그렇다고 너무 시골 같은 곳이 아닌 바닷가 마을이 드디어 눈에 띄었다.
산과 호수와 바다까지 차로 10분 거리 안으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곳에 마음이 매료되었다.
연고도 없는 낯선 곳에서 평생을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니 덥석 겁부터 났다.
하여 우리 가족의 1년 살기 여행이 시작되었다. 도시 생활이 그리우면 언제든 돌아가자!라는 유동성은 새로운 시작의 부담을 반으로 줄였다.
마침내 상상 속 풍경이 일상으로 펼쳐졌다. 새 터전에서 그는 연구직 대신 관리직으로 전향했다. 월급은 반토막으로 줄어들었지만 주 5일 9 to 6의 칼퇴근하는 하루가 곁으로 왔다.
더 이상 시간에 쫓기는 평일 저녁의 그림체는 사라졌다. 저녁의 시간이 일과에 들어서자 하루는 길게 늘어났다. ‘평일도 인생이니까’라는 책 제목처럼 늘어난 평일 덕분에 그 배경인 우리 인생까지 늘어난 기분이었다.
주말에만 누리는 시간의 여유가 평일에도 찾아왔다. 더는 주말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칼퇴근이라는 루틴은 일주일의 기복을 완만히 맞춘다. 마음의 부침이 심하던 날도 줄어들었다. 쇳덩이처럼 무겁거나 버거울 때면 바다의 느린 품이 다정히 안아준다. 작은 불안감에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 같은 마음이 푹 놓이기 시작했다.
일상 속에서 자주 마주치고 있는 아무도 없는 바다의 모습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지평선과 모래알 위에 출렁이는 타인의 발자국 소리를 배경으로 바다와 우리만 남겨진 시공간은 일종의 해방감을 선사한다.
이 순간만큼은 눈앞의 모든 것들이 나와 우리 가족만의 것이라는 감각은 부족했던 결핍을 안아주는 충만함이다.
지금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는 자각과 우리와 함께 공명하고 있는 안온이 여기에 기인하는 것일 테다.
사회의 보이지 않는 선에서 벗어나는 일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지만, 막상 다수가 가는 길에서 빗겨 난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오히려 홀가분함이 가득하다.
그제야 삶의 기준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스스로 채워가는 것임을 자각한다.
다수가 가는 길 위에 있지는 않지만 내가 원하는 속도의 걸음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향해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에 안정감이 깃든다.
열외가 되면 불안하고, 함께 경쟁하지 않으면 비교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뒤로 보내지고 그 자리에 비로소 충만한 안온이 스민다.
이 긍정의 경험은 삶의 선택권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닌 우리 자신에게 있음을 마음에 아로새기는 계기가 되었고, 삶의 기준을 우리 안에서 찾게 했다.
정해진 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원하는 선을 그리며 우리에게 어울리는 삶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조용한 바닷가 마을은 우리가 원하는 조화로운 가치를 이루는 단순한 삶의 터전이 되어 지금도 바다와 함께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