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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엄 May 16. 2024

꾼들의 축제

제주 축제 자랑 - 올레길 축제(1)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 제주도 올레길은 2007년 1코스를 시작으로 각 코스가 차례로 열렸다. 2021년 21코스로 마침내 제주를 한 바퀴 도는 코스가 만들어졌다.


가장 짧은 10-1 코스의 가파도(4.2km)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코스가 15km 안팎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걸을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제주의 오솔길과 마을길, 해안도로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을 부르는 ’올레꾼‘이라는 단어도 생겼다.


올레 걷기 축제는 일 년에 한 번 함께 올레길을 걷는 축제로 전국에 퍼져있는 올레꾼들은 물론 해외 올레꾼들까지 한데 볼 수 있는 축제다.


축제가 진행되는 3일 동안 매일 다른 코스를 걷는데, 올해는 11,12,13코스가 선정되었다. 각 코스의 거리를 알아보고 그중 1km라도 더 짧은 13코스(16.2km)를 걷는 마지막 날로 덜컥 신청했다.


미리 몸을 단련시켜야 한다며 헬스장을 등록했지만 그간 기록한 러닝머신 최대 기록은 빨리 걷기 기준 10분. 분기탱천하게 미리 축제를 예약하긴 했지만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걱정이 잎섰다.


내 체력을 익히 알고 있는 짝꿍은 걱정이 태산인 나를 보며 혀를 찼다.


“그냥 걸을 수 있는 만큼 걷다가 정 안되면 중간에 돌아가자.“


그래. 꼭 길을 다 완주해야 하는 건 아니지. 요즘엔 중간지점 스탬프도 찍을 수 있다니까 반만 걸어도 성공이다.


마음을 가볍게 먹으니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특히 인별그램에 올라온 1, 2일 차 축제 참여자들의 게시물을 보며 마음이 부풀었다. 가방 전체를 올레길 관련 뱃지로 채운 사진이 보였다.


게시물을 눌러보니 가방 손잡이 부분에 하트삔이며 꽃 모양 핀까지 잔뜩 달려 있었다. 그는 글에서 축제장에서, 올레길을 걸으며 만나 호응해주는 모든 분들에게 선물로 핀을 나누어주었다고 했다.


가방 전체를 채운 올레길 뱃지로 보아 올레꾼 경력 최소 5년. 올레길을 걷는다는 공통점 하나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트핀을 나누어 주었다는 그의 마음에서 다른 올레꾼들을 향한 경의와 환대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 이상한 방식의 환대에 올레길 레벨 1, 뉴비는 어쩐지 설레기 시작했다.


3일 차 올레 걷기 축제는 ‘역올레’로 종점에서 출발해 시작점으로 걷는 코스였다. 13코스 종점에 도착해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향하니 주차를 도와주던 스태프 분들이 저 쪽으로 돌아 가라고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분명 저분들이 서 계신 저쪽 길이 맞는데 왜 돌아 가라고 하는 거지?“


긴가민가해하며 스탭들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가자 우리를 향해 외쳤다.


“행사장이 이쪽 방향은 맞는데요! 저쪽 버스 있는 곳 보이시죠? 저쪽으로 가면 좀 돌아 가긴 하는데 길이 기가 막히게 예뻐요!”


길이 예쁘니까 돌아 가라니, 어떤 축제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지만 올레길 축제니 말이 되었다. 축제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올레꾼들이었고, 역시나 길에 진심이었다.


스탭들이 추천해 준 오솔길은 예뻤다. 작은 숲에 들어온 듯 들어서자마자 숲 향에 취했고, 예상치 못한 발걸음에 놀라 도망치는 작은 도마뱀을 보기도 했다.


걸으면서도 멀리서부터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너른 잔디밭의 축제장에 들어서니 행사 부스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양말을 주는 이벤트를 하던 부스에서는 “3일 내내 와서 3켤레 받아가신 분도 있어요~ ”하는 멘트를 던져 ‘혹시 3일 내내 오는 사람도 있을까?’ 하는 생각을 바로 확인시켜 주었다.



올레길을 상징하는 간세(파란 말을 선 형태로 간결하게 표현한 것) 굿즈를 파는 부스는 행사 내내 붐볐다. 간세 인형이며, 간세 로고가 박힌 양말, 모자, 가방 등이 불티나게 팔렸다. 간세 인형은 수제 인형이라 모양과 패턴이 모두 달라 신중을 기해 반려 간세를 골랐다.


그 외에 가장 붐빈 부스 중 하나는 페이스 페인팅 부스였다. 투박하지만 날개를 달고 하트를 뿜어내거나 꽃을 단 간세가 사람들 얼굴 위에 피어났다.


일본에서 온 사람들도 많았는데, 올레길은 규슈에 수출된 제주의 문화상품 중 하나로 2012년 규슈올레 1코스가 개장한 후 일본과 한국의 걷기인들의 많은 호응을 받아 25코스 넘게 개장했다고.


올레꾼의 마음에는 국적이 없어서 서로의 올레길 행사에 함께 방문하는 듯했다. 가방에 ‘미야기 올레‘, ’규슈 올레‘등의 소개 문구를 단 일본인 그룹도 간세를 얼굴에 새기곤 행복해했다.


한켠에서는 역시나 헌신적인 올레꾼들이 꾸린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올레길 완주자 클럽은 어묵을 무료로 나누어 주고 있었는데, 어묵과 무관하게 완주자 클럽의 일원임을 뜻하는 파란 깃발을 단 사람들이 제집마냥 드나들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만났어도 '올레길'로 하나된 듯한 모습에 나도 얼른 올레길 437km를 모두 걸어 저들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이상한 마음이 솟구쳤다. 


한편, 올레길 해설을 하며 동행하는 사람들을 길러내기 위한 '제주올레 아카데미'에서 차린 부스는 멀리서부터 왁자지껄하게 흥을 돋우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각기 토끼 옷, 한복, 바지가 찢어져 엉덩이가 보이는 것 같은 착시효과를 주는 옷을 입은 채였는데, 그제야 나는 올레 걷기 축제에서 '너의 올레룩을 보여줘' 콘테스트를 한다는 것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다채로운 의상을 입고 참여해서 인별그램에 올리면 상품을 주는 이벤트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올레꾼들은 정장과도 같은 등산객 옷차림을 고수했던 것이다. 휘황찬란하게 차려 입은 올레 아카데미 회원들의 개성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실제로 올레 아카데미 졸업생인 외국인 남성 분이 반짝거리는 이벤트용 가랜더를 온 몸에 둘러 제기 코스프레(놀랍게도 제기차기 할 때의 그 제기가 맞다)를 했기 때문에 두 배로 눈이 부시기도 했다.



이 알 수 없는 헌신을 바라보며 나도 이들과 동화되고 싶다는 강한 이끌림을 느끼던 찰나, 어딘가에서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애니메이션 주제가 같은 느낌의 인트로만 연주되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우르르 한 곳으로 몰렸다.


어린이들이 양손을 허리에 얹고 리듬을 타기에 율동 공연이 있나 했는데 돌아보니 모두가 그 율동을 따라하는 중이었다.


“올레 올레 올레 올레

올레 올레 함께 걷자 제주 올레


올레 올레 올레 올레

올레 올레 같이 걷자 제주 올레


곶자왈 오름 바당

아름다운 올레길

놀멍 쉬멍 걸으멍

고치가요 느영나영“


2033 올레 축제에 맞춰 제작된 올레송은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몸을 들썩일 정도로 신나는 리듬을 자랑했다.


몸을 풀기 위해 가사에 맞춰 율동을 하는 듯 보였는데, 국내외 올레꾼들이 모여 세상 진지하게 귀여운 율동을 추고 있으니 슬며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올레꾼들은 올레송 한 번으로 성이 차지 않았는지 노래가 끝나자 “한 번 더!”를 외치며 좀처럼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다음 순서를 진행하려고 했던 사회자는 “아이 참 삼춘들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또 틀어달라고 하면 안 돼.” 하며 못 이긴 듯 올레송을 또 틀어 주었다.


경쾌한 음악이 다시 한번 울려 퍼지자 올레꾼들은 “와!” 하며 만세를 부르곤 다시 율동을 시작했다.


같은 장난을 치고 또 쳐도 웃으며 다시 해 달라고 하는 아이들을 보는 듯했다. 올레꾼의 순수함에 감화되어서일까, 축제날 이후 지금까지 종종 올레송을 듣게 되었다. 들을 때마다 즐거움이 솟아나는 이유는 올레송에 담긴 올레꾼들의 순수한 마음 덕분이 아닐까.


제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타악기 팀 뺄라지다의 가열찬 응원을 받으며 올레길로 향하는 첫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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