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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Sep 12. 2024

꿈을 키우는 방법

설렘, 무모함, 허무맹랑은 한 끗 차이

오늘 난생처음으로 수영을 하며 희열을 느꼈다. 운동 자체에서 희열을 느낀 것은 정말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운동을 하는 시간이 그야말로 끔찍했다. 웃기게도 멘탈이 힘들 때는 사유하며 버틸 수 있지만, 몸이 힘든 것은 정말 싫었다. 


오늘 수영을 하며 희열을 느낀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로 무려 3주나 수영을 빠졌음에도, 이전과 똑같이, 어쩌면 이전보다 더 나아진 체력으로 수영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평생의 숙제 같았던 나의 저질체력이 이렇게까지 좋아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만 3년. 집에 누워만 있던 나에서 활동적인 나로 바뀌었다. 작은 성취가 모여 자존감이 높아지며 더 큰 성공을 위한 발판이 된다고 했으니. 큰 성공은 모르겠고 일단 기분이 정말 좋다.


물을 밀어내며 앞으로 쓰윽 나아가는 기분. 

'나는 돌고래다.'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더 빨리, 더 길게 앞으로 나아가고자 애쓴다. 그 어떤 복잡한 커리어 패스나 성대한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 인간이라는 몸의 한계를 깬다는 사실에 더 높은 차원의 자유를 느낀 것 같다. 기계의 도움 없이 내 몸만으로 물살을 헤치는 물살이가 되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바다에서 헤엄치는 고래 (출처 : erinoutdoors.com)


인간은 새가 되고 싶어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고래가 되고 싶어 프리다이빙을 한다. 익스트림 스포츠란, 자유를 느끼고 싶은 무모한 인간들의 목숨을 건 도전이다. 나는 사실 프리다이빙을 하며 고래와 헤엄치며 수중촬영을 하고 싶다는 소망, 그리고 관절에 무리 없이 체력을 기를 수 있는 운동이라서 수영을 시작했다. 


5년도 더 지난 여름, 프리다이빙 원데이 클래스에서 이퀄라이징이 안 된다는 실패와 큰 체력적인 소진을 경험했다. 그 이후 프리다이빙에 대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언제 다시 도전해 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바다에서 프리다이빙을 할 수 있을지, 고래를 볼 수 있을지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시험을 꾸준히 한다. 도전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가봐야 한다는⎯그럼 끝은 어디인가⎯이상한 오기가 있다. 그저 사진이 좋아 시작한 취미가 벌써 13년 차. 나의 작은 목소리를 드러내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가 책을 내고 싶다는 목표 하나만으로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져 왔고, 환경운동을 시작한 후로 제로웨이스트, 비건, 농사를 거쳐 전환마을 운동까지. 모두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다음 목표, 그다음 목표를 정해 하나씩 밟아 나가다 보니 꾸준한 취미가 되고, 삶의 일부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허무맹랑한 꿈을 꾸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 김연아, 손흥민이 꿈을 꾸던 어린시절을 말하면 박수를 칠 테지만, 나의 아들딸이, 혹은 주위 사람이 이상적인 꿈을 이야기하면 '니가 무슨', '그럴 시간에 공부나 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가령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될 거라던가, 피카소같은 훌륭한 예술가가 될 거라던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같이 자발적 고립을 통해 훌륭한 글을 써낼 것이라던가. 우리의 좁은 인지 체계 안에서 계산해봤을 때, 돈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일일수록 더욱 무시당하기 쉽다. 그리고 그런 주위의 별 뜻없이 던져진 말들은 꿈에게 생채기를 낸다. 그러나 꿈들을 현실의 찬 바람에 그냥 말려버리기보다, 조금씩이라도 매일 물을 주면 점점 자라난다.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해' 이런 부담감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목표를 향해 한 계단씩 올라가다 보면 스스로에게 대견한 사람이 되어있다. 그리고 모순적이지만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나를 설레게 하는, 어쩌면 너무 이상적인 꿈이다. 남들의 기대치에 맞추기 위해 나 스스로에게 채운 목줄은 나를 점점 조여오고 결국엔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꿈들은 잠깐 멈추었다가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마치 수영으로 25미터 가는 것도 힘들어하면서 무작정 고래와 함께 프리다이빙을 하길 원했던 과거의 나처럼. 그 꿈은 1분 숨 참기도 힘들어하면서 해녀처럼 5분 숨 참기도 연습하면 될 거라는 무모함의 씨앗도 심어주었다. 그렇지만 안 되는 게 어디 있나? 누군가가 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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