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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여행 Sep 28. 2022

리우 데 자네이루의 두 예수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성당이래.”

남편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거무튀튀한 색의 원뿔 모양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성당이라는 말보다 더 강하게 끌어당긴다. 제일 못생긴 성당 앞 벤치에 낡고 더러운 헝겊을 돌돌 감고 노숙자 한 명이 드러누워 있다. 브라질에서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 노숙자를 스치듯 보는데 이상하다.

“저 사람 진짜야?”

노숙자 형상의 조형물에 갸우뚱하며,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성당 안으로 들어선다. 나의 몸이 성당 안에 채 들어가기도 전에 천장과 창을 통해 쏟아지는 오색의 빛에 눈이 베인다.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성당’이라는 말에 기대감을 무장 해제하고 들어선 우리는 보기 좋게 한 방을 먹은 셈이다.

원뿔 모양의 건물 내부는 일반적인 형태의 건물에 비해 역동적이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구조는 마침내 우리의 시선을 하늘로 향하게 한다. 고개를 목 뒤로 거의 90도로 꺾고 바라본 천장에는 십자가 모양의 창을 통해 하얀색 빛이 쏟아지고 있다. 하늘에 계신 신을 향해 ‘아!’하고 낮은 탄성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다.

성당 건물 벽의 창은 천장의 십자가를 향해 모이고 있는 형색이다. 하얀색 빛으로 쏟아지는 십자가를 향해 경배하는 화려한 빛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이래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성당이야?’라고 말하고 있다.

  

세계에서 제일 못생긴 성당
겉모습과 달리 성당안은 환상적이다.

‘성당 앞에 노숙자 동상이라니......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성당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동상이라도 세우고 싶었던 걸까?’

동상 가까이에 다가선 순간 감정들이 오작동한 듯, 가슴이 먹먹해진다.

노숙자 동상 발등의 선명한 못 자국이 이번엔 나의 가슴을 벤다. 신은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온다는 말을 잊고 있었다.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은 나에게 우매한 눈과 귀에 속지 말고, 그 속에 품고 있는 진실을 향해 눈과 귀를 열라고 말한다.

브라질 예수상을 만나기도 전에 맞닥뜨린 노숙자 모습의 예수상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탓일까. 브라질 예수상이 있는 코르코바도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리우데자네이루의 모습이 아프다. 산으로 가는 가파른 길옆 언덕에 빼곡히 들어선 집들이 오래전 우리나라 산동네 판자촌을 연상시킨다. 저 판자촌 속에 노숙자 예수님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발등의 못자국에 심장이 멎는 듯
발디딜 틈 없는 예수상

코르코바도산 정상을 중심으로 안개가 퍼져 있다. 옅은 안갯속에서 우리 모두를 안아주겠다며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예수상이 보인다. 예수상은 흩날리는 안개로 신비감을 더한다. 우러러보기조차 버거운 예수상 앞의 수많은 사람들 위로, 오늘만 그런지 알 수는 없으나, 누구 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는 노숙자 예수님의 발등에 난 못 자국이 스쳐 지나간다.

예수상을 나와 바닷가로 이동하다 보니 생김새가 독특한 산이 눈길을 끈다. 슈거 로프 산이다. 브라질 사람들은 팡데아수카르라 부르고, 한국인들은 빵 산이라 부른다. 브라질에서는 사탕수수를 끓이고 정제한 후 ‘슈거 로프’라고 부르는 용기에 보관했는데 이 산의 모양이 그 용기를 닮았다고 해서 슈거 로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생김새가 독특해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띈다. 케이블카를 타고 빵 산 정상에 오르니, 리우데자네이루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탁 트인 해안선도 시원하다.

                         

안개로 더 멋진 리우데자네이루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예수상과 빵 산을 봤으니, 해야 할 최소한의 숙제는 한 셈이다. 유명한 관광지에서 남들 다 가는 곳을 반드시 갈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굳이 안 갈 이유는 없다. 낙제를 면할 만큼 숙제도 했겠다, 이젠 뭐, 어슬렁거리며 동네나 한 바퀴 돌아볼까나!

자유여행의 재미는 말 그대로 자유롭게 다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늦은 시간에 움직여도 안전한 동네에 숙소를 잡는 것이 우선이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첫 숙소는 셀라론 계단 근처이다. 덕분에 우리는 셀라론 계단을 오며 가며 들른다. 숙소에서 셀라론 계단 가는 길에 만나는 집들과 골목이 익숙해지고, 동네 가게 아저씨와 ‘오이(안녕)!’라고 인사를 트면 그곳은 이제 우리 동네다.

우리 동네에 있는 셀라론 계단은 칠레의 예술가 호르헤 셀라론이 빈민가 계단에 수작업으로 타일을 붙여 완성한 작품이다. 처음엔 버려진 타일을 재활용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전 세계에서 보내온 타일로 작품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보내 준 태극기 타일도 떡하니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태극기 타일이 다행히 셀라론 계단 입구 쪽에 있어 오가며 흐뭇하게 바라본다. 이국에서 보는 태극기는 왠지 뭉클하다.

셀라론 계단으로 가는 길 벽에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의 이름으로 채워진 세계지도가 있다. 한글로 된 이름도 보인다. 운 좋게도 벽화 작업을 하는 작가를 만나, 딸아이 이름을 세계지도에 한글로 써넣는다. 작가는 딸아이에게 붓을 건네며 이름 마지막 글자를 직접 쓰게 한다. 예술가의 세심한 배려에 우리 모두 “오브리가다(감사합니다)!”      

                                                          

셀라론 계단, 태극기를 찾아보자
여행자들의 이름으로 채워진 세계지도, 운좋게 만난 작가님의 작업현장
아이도 자신의 이름을 쓰고 있다

동네를 다니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리를 신고 있다. ‘조리? 왜 다 조리를 신고 있지?’ 브라질 조리가 전 세계적으로 명품이라는 소문을 뒤늦게 듣고, 갑자기 도전 정신이 불끈 생긴다. ‘조리’라는 신발이 편해지면 젊고, 그렇지 않으면 늙었다는 증거라던데, 이참에 한번 도전해봐?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젊음을 증명하고픈 욕심에 덜컥 사버린 조리. 신고 나가자니 엄지발가락과 검지 발가락 사이가 아플 것 같고, 포기하자니 조리가 아깝다. 젊다 못해 어린 딸아이는 한국에서부터 조리를 즐겨 신었기에, 공주가 그려진 새 조리가 마냥 신난다. 남편과 나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 데, 쭈뼛거리며 조리를 신고 길을 나선다. 조리가 벗겨질 것 같아 발가락에 힘을 꽉 주고 걷는다. 똥 싼 바지를 입고 있는 양 엉거주춤하며 걷는 모습이 어이없어 웃음이 나온다. ‘아, 집까지 맨발로 갈까? 그러기엔 개똥이 너무 많잖아.’

젊음의 상징 조리, '젊음'을 말하는 것이 늙었다는 증거인가!

젊음의 상징인 조리는 집에 고이 모셔 두고, 편한 샌들을 신고, 프리워킹투어 집결 장소인 Carioca 광장 시계탑으로 향한다. 브라질 젊은이들이 주축인 프리워킹투어는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로 나누어 진행된다. 3시간 정도 소요되는 프리워킹투어는 말 그대로 무료이기에 투어가 끝난 뒤 만족한 만큼 팁을 주면 된다. 꽤 많은 사람들 중 동양인은 우리 가족뿐이다. Carioca 광장 노점에 BTS 티셔츠가 걸려 있다. 낯선 이국에서 BTS 글자만 봐도 웃음이 나온다.

패키지여행에서 놓치기 쉬운 구시가지 골목을 다니며 리우데자네이루의 역사를 전달하려는 가이드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와는 다른 생김새의 사람들과 눈웃음을 나누며 함께 다니는 것도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다. 가이드가 단골집 앞을 지나며 가게 아주머니와 나누는 볼 뽀뽀마저도 이국적이다.

프리워킹 투어를 하는 여행자들
자랑스러운 BTS

브라질 시내를 걷다 보면 구걸로 연명하는 젊은이가 있는 반면에 또 이렇게 자기 나라를 찾아오는 외국인들에게 자신의 시간을 나누어 친절을 베푸는 이들도 있다. 우리 가이드도 건축가가 본업이며, 일이 없는 날 자원봉사를 한다. 한국인이라는 말에 ‘서울’을 이야기하며 언젠가는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언제든 환영입니다. 웰 컴 투 코리아!                                                   

나흘 동안 머물러 익숙해진 동네를 떠나 코파카바나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숙소로 이사를 하는 날이다. 비가 내리려는지 날씨가 흐리다. 회색빛 하늘 탓인지 코파카바나가 사진으로 보던 빛깔의 바다가 아니다. 사진을 찍어 한국에 있는 이들에게 보여주니, 해운대냐고 묻는다. “아니, 해운대가 더 예뻐.”

딸아이는 바다색이 콜라 같다며 선뜻 바닷물에 뛰어들지 못한다.

“딸아, 바다에도 이름이 있단다. 한국의 바다는 태평양이라고 부르지. 네 눈앞에 있는 콜라 같은 이 바다는 대서양이란다. 우리 대서양에 몸 한번 담가 볼까?”

대서양이라는 말에 용기를 낸 아이는 바다에 뛰어들었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향해 뛰어드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바다와 놀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남녀노소, 동서양 인을 가리지 않고 비슷하다. 모두 아이 같다. 바다와 놀며 조금씩 자연에 가까워지나 보다.  

                                                                 

코파카바나 해변의 여인들
대서양에 몸을 담그는 아이
저 모습이 일반인들의 족구라니!
축구공을 발에 붙이고 나온 브라질 아이
바다가 아닌 공을 보는 사람들

남편은 코파카바나 모래사장에서 족구를 보느라, 바다는 안중에도 없다. 바다에 와서 바다는 보지 않고 축구공만 본다. “브라질 사람들은 축구공을 발에 붙이고 나오는 것 같다.”라며 혀를 내두른다.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우리는 각자의 여행을 즐긴다. 남편은 하루 종일 족구에 빠져있고, 아이는 콜라색 바다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와중의 나는 세계여행에까지 따라온 이놈의 삼시 세끼를 걱정한다.

배낭을 메고 낯선 곳을 찾아 떠나왔지만, 우리가 오늘을 사는 곳은 그곳이 어디이건 일상이 된다. 오늘은 리우데자네이루가 우리 동네이다.

리우데자네이루 숙소 근처 골목길
리우데자네이루 골목길을 뛰어다니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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