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상욱 Sep 02. 2020

팬 디자인에 따른 최적의 요리

소테팬, 커브드 소테팬, 프라이팬의 차이


    



Saute pan, curved saute pan, skillet(fry pan)


3가지의 팬 디자인 차이의 기본 설명




 위의 사진의 기물은 왼쪽부터 Saute pan, curved saute pan, skillet(fry pan)이다.
분명히 디자인이 틀리니 이유가 있을 것이다. '프라이 팬은 대충 알겠는데 나머지 2개의 팬은 뭘까?' 싶은 느낌이다. 프라이 팬이야 워낙 익숙한 팬이니 설명이 필요 없겠지만 saute pan ? 소테팬은 뭐야?


우선 saute pan에서의 소테(saute)란 프랑스 조리 용어로 높은 온도에서 적은 기름을 사용하여 조리하는 방식을 말한다. 한국말로 풀어서 이야기하자면(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센 불에 굽기 or 볶기’ 정도가 될 듯하다.

‘아~~!! 그럼 저 팬은 소태를 하기 위한 팬이구나?’ 라고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 이해가 안되지만) 그렇지 않다.



저 3 팬의 바닥면적, 크기, 무게 등 사소한 차이를 배제하고 가장 큰 차이점 2가지만 말한다면 사이드 쪽의 각도와 굴곡이다. 이 각도와 굴곡이 요리를 만들 때 많은 차이점을 야기한다. 어떠한 차이점이 나오냐면 팬을 돌려 조리 중간에 재료를 섞을 수 있는 능력(tossing ability)과 액체를 증발(Evaporation) 시키는 양의 차이다.






재료를 섞는 능력과 액체를 증발시키는 능력


 소테팬은 사이드 부분이 직각으로 올라와 있다. 이 팬으로 음식을 일반적인 팬 돌리기 하듯이 섞으려고 하면 잘 안된다. 사이드 부분의 직각으로 올라간 각도가 음식을 섞는 행위를 방해하는 것이다. 프라이팬 사이드의 굴곡은 음식을 섞는 동작에 특화되어 있어 평소에 우리가 생각하는 팬 돌리기가 자연스럽게 된다. 무엇인가를 골고루 섞는 요리를 할 때는 프라이팬이 더 어울린다.







 소테펜의 경우 스테이크 등을 강한 불로 구울(saute) 때도 마이야르 현상이 프라이팬에 비해 덜 일어난다. 이것은 고기를 구울 때 고기 자체에서 나는 증기가 발산하여 위로 올라가다가 직각으로 올라간 벽에 부딪혀 다시 팬으로 튕겨 내려가서 마이야르 현상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프라이팬의 수분 발산이 경사가 45도 정도 되는 사이드의 벽에 부딪히지 않고 공중으로 자연스럽게 날아가 버려서 마이야르 현상이 잘 일어나고 양파 등의 채소를 볶을 때 물기가 많아 죽이 되는 현상이 개선된다.





각각의 팬에 어울리는 요리들


 그럼 어떤 요리가 어울릴까. 소테팬은 섞는 행위는 약하지만 재료의 수분을 끌고 가져가는 능력이 강하다. 처음에 재료를 볶다가 수분을 넣고 조리하는 braising(습열 조리 중 하나로 우리나라 음식으로 보면 갈비찜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등의 요리나 소고기 라구(미트소스 스파게티를 생각하면 된다)등을 만들 때 최선의 결과물을 낸다. 그래서 소테팬을 구매할 때 일반적으로 그 위에 덮은 뚜껑까지 세트로 파는 경우가 많다.

 

소테펜은 특유의 수분 보유력으로 인해 뚜껑과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프라이 팬은 음식을 잘 섞고 재료의 수분을 발산시키는데 특화되어있다. 이 팬은 채소를 볶으면서 팬을 돌리거나, 고기를 최대한 빨리 시어링하여 굽는 스테이크 같은 요리가 최선의 결과물을 낸다.




앞선 두 팬의 하이브리드, 커브드 소테팬


 그럼 사진의 중간에 커브드 소테팬은 어디에 사용되는 것일까. 디자인 자체를 보면 소테팬과 프라이팬의 하이브리드로 보인다. 보통 하이브리드 기물은 잘 사용될 경우 그 장점만 극대화되지만, 잘못 사용될 경우 그 단점만 부각되는 면이 있다.


 이 팬을 프라이팬처럼 사용하면 음식이 잘 돌아가지가 않는다. 아니 아예 안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굴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굴곡을 살리기 힘든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처음에 나도 사용해보고 많이 당황했었다. 그런데 수분 발산은 오히려 빨리 진행된다. 굽거나 볶거나 브레이징이 가능은 하지만 이 팬의 성능과 어울리지 않다. 그래서 사용 초기에는 팟 대용으로 육수나 물을 끓이는 데만 사용하면서 '이건 단점만 있는 하이브리드 기물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큰 장점을 발휘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 팬은 매쉬포테이토나 리조또 같이 농도(한식의 죽과 같은 농도)를 민감하게 맞춰야 하며 바닥에 잘 달라붙는 요리에 최적화되어있다. 곡선으로 된 사이드는 수분을 순식간에 날려버리기 때문에 농도가 조금 질어도 금방 원하는 농도가 된다. 곡선으로 된 사이드는 고무 주걱 등으로 깔끔하게 끈적끈적한 재료가 손쉽게 떨어져 나오게 도와준다. 프라이팬에 비해 바닥 면적도 작기 때문에 재료를 한 곳으로 깔끔하게 모으는 작업이 더욱 편해진다.



커브드 소테팬은 메쉬 같이 끈적여서 잘 붙고 농도가 중요한 음식을 만들 때는 최고의 성능을 발휘한다.


 여기에서 설명한 3가지 팬의 차이를 차근차근 살펴보면 대부분의 조리기물들이 가지고 있는 디자인에 대해 이해가 될 것이다. 프라이팬이 왜 저렇게 생겼는지, 대부분의 냄비류는 왜 대부분 높고 사이드의 각도가 직각인지 말이다.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소테팬은 소태에 최적화 되어있지 않으며 프라이팬은 소태에 최적화 되어 있다. 커브드 소테팬은 생각지도 못한 요리에 최적화가 되어있다. 사실 아무 팬이나 아무 요리에 사용해도 문제는 없다. 미세하다면 미세한 차이이며 특히 가정에서는 더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단지 프로 수준에서 제대로 된 최고의 결과물을 원한다면 요리에 맞는 기물을 사용해야 한다.



 여담이지만 재미있는 점은 저 팬들의 차이를 말해봐라고 하면 말할 수 있는 직원을 본 적이 없다. 그나마 미국의 유명한 요리학교에서 배운 친구들은 '이거 분명 배운 내용인데?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고기를 구워봐라, 매쉬를 만들어봐라 등 특정 요리를 지시하면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딱히 특별한 지시를 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결과물을 내는 팬을 가지고 와서 조리를 했다. 말로는 설명을 못할지라도 경험적으로 다들 깨닫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 요리가 재미있는 것이고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이전 10화 손잡이 그 디테일의 차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