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의 자연식물식 경험은 나에게 식사와 음식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주었다.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풀 때는 내가 자극적이고 맛있는 음식이 최고요, 살을 빼고 싶다면 그 음식을 멀리하고 살 빠지는 음식들만 골라먹으면 된다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러나 처음 자연식물식을 했을 때는 고민이 많았다. 동물성 식품과 가공식품, 기름은 독이라 일체 먹으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이러다 사회에 섞이지 못하지 않을까라는 불안함이 컸다. 현대사회에서 음식은 생명유지의 수단을 넘어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구성원들의 결속을 다지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나는 음식도 사람도 너무 좋아하는데. 자연식물식을 평생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계속 밀려왔다.
이때 내가 선택한 방법은 '혼자 먹는 끼니는 채소위주로 요리하기'였다. 자연식물식을 삶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채소 위주자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음식과 식사를 대하는 태도를 익히고, 자연스러운 배부름을 인지하고, 또 몸의 변화를 느끼며 나는 점점 음식을 어떻게 먹고 또 몸을 돌보아야 하는지 계속 배워가고 있다. 이제 나에게 식사란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매 순간의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먹을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매일 적어도 한 번, 많게는 세 번의 식사를 한다. 매일 주어지는 선택의 기회가 있다. 뭐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하루의 끝에서 손쉽게 오는 식사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대신, 직접 재료를 고르고 손질하고 조리하는 것을 선택해 보면 어떨까. 내가 먹는 요리만큼은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요리하는 시간은 나를 위해 내어 준 시간이라는 생각은 뿌듯함을 안겨준다. 여기에 기름, 설탕, 소금 등 조미료들을 나 스스로 조절할 수 있으니 한 끼를 정말 건강하게 챙겼다는 느낌을 받는다.
직접 요리를 하고 먹고 나면 어떤 재료나 요리법이 나에게 잘 맞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도 알게 된다. 나는 토마토나 가지 등 가지과 채소들이나 버섯을 매우 좋아하고 잘 먹는 편인데, 소화가 잘되고 다른 재료와도 어우러져 손쉽게 응용하기 쉽다. 무엇보다 굽기만 해도 상당히 맛있다. 단백질 함량이 많은 재료들은 먹고 나면 속이 불편해서 최소한의 양만 넣는다. 돌아 섰을 때 배고프지 않기 위해 순 탄수화물은 필수. 아삭아삭한 생채소의 식감도 한 줌 챙겨 넣는다.
혼자 먹는 끼니를 건강하게 요리를 하다 보면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다른 끼니에도 관대해진다. 타인과 조금 자극적이고 건강하지 않은 식사를 하더라도 다음 끼니는 다시 건강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즐기고 다시 회복하는 음식을 먹으면 되지'라며 식사에 대한 생각의 탄력성이 생긴다. 게다가 요리에 취미를 붙이고 나면 외식시간은 '다음에 나도 이런 재료들을 도전해 봐야지' 하는 흥미가 생기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채식위주의 자연식물식을 하면 좋은 점이 또 있다. 계절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먹는 것은 계절을 곧바로 느끼게 해주는 또 다른 수단이 될 수 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가공식품 위주로 식사를 꾸리게 되면 우는 1년 내내 똑같은 음식을 먹는다. 가공식품은 사시사철 먹을 수 있기 위해 가공되기 때문이다.
가공되지 않은, 살아있는 음식 위주로 식탁을 꾸리면 계절의 변화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생명이 피어나는 봄의 흙내와 채소의 맛, 뜨거운 태양아래 익어가는 여름 과일들의 맛, 쌀쌀해지는 가을을 위로하는 듯 달큰함을 꽉 채운 생명의 맛들을 보고 나면 매 계절의 변화가 기다려진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무언가의 변화를 느낀다는 것은 꽤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