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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디울 Apr 05. 2018

누가 월급루팡을 만드는가?

퇴사를 한지 십여 년이 지나는데, 갑자기 옛날 회사 꿈을 꾸었다.      

 복잡한 비상구 계단도 지나고 엘리베이터를 오르락내리락, 회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내 자리가 있는 부서 사무실에 앉아 일을 했다. 회사 사람들은 내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신경도 안 쓰고 바쁜 표정으로 분주하다. 나도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이 일 저 일 처리하고 그렇게 별 탈 없이 하루의 일을 마쳐갈 즈음 꿈에서 깼다.      

어쩐지 이 꿈이 오랜 시간이 흘러도 놓지 못하는 회사에 대한 나의 ‘아쉬움과 미련’의 정도를 나타내주는 것이 아닌가 싶어 꿈을 깨고 나서도 한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퇴사를 하고 더 좋은 직장을 잡을 수 있다면, 퇴사는 이직을 위한 좋은 선택이 되겠지만, 퇴사가 실직의 연장선이 된다면 퇴직자들은 아마 나와 같은 꿈을 꾸게 될지도 모른다. 기꺼이 나온 회사를 다시 들어가서 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 그것은 후회의 언저리를 배회하는 ‘망령’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퇴사 열풍이 불고 있는 요즘, 퇴사가  붐이 될 만큼 유행이 되지는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에, 풍조에 이끌려, 훅하고 사표를 썼다가, 나와 같이 제 발로 나온 회사에 찾아가 일을 하는 꿈을 꾸게 되는 착잡한 심정을 느끼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무엇을 위해 되사를 다녀야 하나로 고민하는 사람들은 어디까지 참고 버텨야 할까?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각박한 회사에서 그나마 마음 기댈 상사 한 사람이라도 찾으며, 고된 감정을 추스르고 버텨낸다. 저승길 보다 싫다는 월요일 출근을 반복하며 하루를 한 달로, 한 달을 일 년으로 이어가며 회사에서 버티는 사람들의 고민이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퇴사를 고민할 만큼 힘든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결국엔 이런 고민이 퇴사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월급 루팡’이 되어가는 자신을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퇴사자가 되어 망령처럼 회사를 떠도는 것도 답답한 일이지만, 막상 이른바 월급 루팡이 되어 영혼 없이 회사를 다니는 것도 쉽지 않은 일. 이쯤 되면 대체 요즘 들어 부는 이 퇴사 열풍에도 다 이유가 있지 않은지 그 원인부터 따져 보아야 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멀쩡히 입사한 사원을 ‘월급 루팡’을 만드는가?   

  

엄격한 기준으로 채용된 인재들이 월급루팡이 되어 간다면 어쩔 수 없이 기업에 할애된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회사만이 사원에게 요구할 수 있는 니즈가 있다고 생각하는 마인드를 버리지 않는 한 ‘가족 같은 회사’란 구호를 아무리 외쳐도 직원은 회사의 가족이 될 수 없다.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무색해진 지 오래고, 각박한 시스템으로 사원을 조율하는 기업이 사원으로 부터는 꾸준한 애사심을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수 없이 많은 평가의 도마에 사원을 놓고 재고 또 가늠하면서 직원들에게 변함없는 충성만을 바라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 아닐까?  

언제든지 사람을 기계부품처럼 갈아버릴 수 있는 세상에서 말이다.


누구보다  넘치는 의욕으로 출발해서 애증이 넘치는 단계를 지나 번 아웃될 때쯤...

사실 더 잘할 수도 있는데 딱 월급 받는 만큼  ‘이쯤으로 한다!’가 월급 루팡이 아닐까 한다. 회사란 곳이 월급 도둑질하도록 내버려 두는 곳이던가? 딱 제 몫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원은 월급 루팡이 되어 버렸다 자조하는데, 수조 원의 실책을 내어도 책임은 미비한 임원들은 도둑놈 소리 안 듣는 기업의 구조. 이런 사회에서 누가 감히 우리의 소심한 월급 루팡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고용된 사람들을 하나의 부품이나 노비쯤으로 생각하고 부리려 하는 회사가 없어지지 않는 한 늘어나는 루팡들의 소심한 복수는 계속될 듯하다.            



글 그림  반디울   

                                                       https://www.instagram.com/band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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