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의 조난자와 소크라테스
이야기
- 당신은 지난 닷새간 무엇을 했습니까.
_ 길을 헤맸습니다.
- 어쩌다 길을 헤매게 되었습니까.
_ 근처 수풀이 바스락거리는 수상한 소리가 들리기에 잠깐 그 방향으로 이동하는 사이 일행과 떨어졌습니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혼자였습니다. 조난을 당한 거지요.
- 왜 일행에게 돌아가지 않으셨나요. 길을 잃어버렸나요?
_ 네. 산 길을 한참 헤매다 처음 일행과 함께 있던 곳으로 돌아갔지만, 그들과 길을 엇갈린 것 같습니다.
- 닷새간 조난을 당했다면 그동안 어떻게 수면과 식사를 해결했습니까.
_ 불행히도 제가 가진 식량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헛구역질을 해가며 풀을 씹거나, 곤충들을 산채로 잡아먹었습니다. 잠은 지붕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만 있다면 어디서든 잘 수는 있었습니다. 많이 불편했지만요.
- 당신에게서 지금 악취가 나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_ ....
-.... 일행을 찾아다닌 건가요.
_ 그렇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조난신호를 계속 보냈습니다.
제 위치를 알리기 위해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죠.
- 그들이 낙오된 당신을 찾을거라 생각하셨나요.
_ 무슨 말씀이시죠?
- 낙오된 당신을 애써 찾으려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갔을 가능성을 말하는 겁니다.
_ 말 조심하세요.
- 전 당신 같은 자들을 아주 많이 보았습니다.
_ 절 시험하시는 건가요? 그만하시는 게 좋을 텐데요.
- 사실은 당신도 알고 있었잖아요. 그들이 당신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당신을 찾지 않을 거라는 걸요.
_ 전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그만하세요. 사지를 찢어버리기 전에.
- 네. 알겠습니다. 많이 피로하실 텐데 너무 화내지 않으시는 게 좋아 보입니다. 전 당신의 편입니다.
_ 당신이 입을 다문다면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몇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혹시 닷새동안 헤매며 그들을 결국 찾아내셨나요. 물론 그럴 리 없겠죠?
_ 당신의 모가지를 물어뜯는게 곤충들을 물어뜯던 것보단 나을 테죠.
- 당신은 어떻게 계속 그 자들을 두둔할 수 있는 겁니까.
_ 믿으니까요. 두고 보시죠. 분명히 절 찾을 겁니다.
- 당신은 이미 죽었는데도요?
_ ....
- 한 번 더 묻겠습니다. 질문을 좀 바꿔서요. 그들을 찾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합니까?
_...... 네.
- 그게 큰 의미는 없을 텐데요. 당신은 죽었으니까.
_ 찾을 수 없다면 기다리겠습니다.
- 당신의 마음속에서 그들과의 유대감은 여전합니까.
_ 네.
- 좋아요. 그럼 이 자리에서 그들을 기다리시겠습니까.
_ 네. 영원히요.
- 그 자들이 언제 올지 알 수 없는데요? 그들의 당시 진짜 속내를 알게 되는 것은 어쩌면 잔인한 진실을 마주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그 때의 일행분들을 기다리신다는 말씀이시죠.
_ 네. 그러니까 그만 좀 물어봐요. 진짜 물어버리고 싶으니까.
- 심심하진 않으시겠어요? 저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을 기다리시겠습니까?
_ 아까처럼 무례한 말씀만 안 하신다면요.
- 네. 노력해 보죠. 화가 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 질문 중 몇 가지는 그저 유머였습니다.
_ 끔찍한 유머감각이네요. 죽은 조난자에게 하기엔 더욱더요.
- 보통은 당신 같은 분을 조난자라고 표현하진 않습니다. 아시잖아요. 보통은 유기되었다고 하지요.
_ .......
- 정말 만에 하나, 이곳에서 당신이 그들을 결국 만나게 되었을 때, 그들이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면요?
_ 괜찮습니다. 기억은 제가 하면 되니까요.
- 그들의 얼굴에서 반가움과 사랑이 보이지 않으면 실망스럽지 않을까요?
_ 제가 그만큼 더 반가워하고 더 사랑하면 됩니다.
- 당신은 미련합니다. 그리고 가엾죠.
_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사실 빨리 만나고는 싶지만, 그렇다고 너무 빨리 만나선 안되겠죠. 전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 ......기다리는 동안 머리라도 쓰다듬어 드릴까요.
_ 이것도 유머인가요.
- 아닙니다. 당신이 살아있을 때 좋아하던 거잖아요.
_ 뭐...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