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집에서 남편과 둘이서만 밥을 먹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마음은 한없이 해이해지고 늘어져 간장버터비빔밥이나 해 먹고 말고픈 욕구가 솟는다. 전투적으로 욕심부리듯 생의 이곳저곳을 파헤치던 자세가 남편 앞에서 무력하다 싶게 온순해지는(?) 순간이다. 남편만 보면 뭐든 귀찮아지고는 하는 행동에 대한 핑계나 방어책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남편과 이따금 아주 조촐하고 단순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밥을 즐긴다.
그럴 때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이 달걀프라이다.
그런데 이 달걀 프라이를 하는 과정이 완벽하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우리의 각자 다른 식성과 성향 때문이다.
당신은 완숙을 좋아하고 나는 반숙을 좋아한다.
당신은 달걀이 툭 터질 때 입 안으로 목으로 흘러드는 끈적한 노릿함을 싫어하고, 나는 그 끈적한 노릿함 때문에 달걀 프라이를 먹는다.
당신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 남자처럼 보이지만 실은) 비위가 몹시 약하고, 나는 (이것저것 가리는 까탈스러운 여자처럼 보이지만 실은) 비위가 좋은 편이다.
당신은 프라이팬째 식탁에 달걀프라이를 내주어도 아무 말 하지 않을 테지만, 나는 굳이 예쁜 도자기 접시에 프라이 두 개를 담고 설거지거리를 만든다.
우리는 이렇게 다르다.
며칠 전에도 그렇게 단순한 둘만의 식탁, 둘만의 시간이 있었다.
집은 고요했고, 창을 통해 제법 선선해진 9월의 바람이 드나들었으며, 휴대폰을 확인하거나 이따금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수첩의 종이를 넘기는 행위에 얹어져 각자의 몸이 빚어내는 고유의 소리들이 이따금 공기를 흔들어 놓았다.
평소와 같이 남편의 것은 완숙으로 내 것은 반숙으로 불 조절을 해 가며 서로 다른 스타일의 달걀 프라이 두 장을 만드는데, 어쩜 그리 똑같이 닮은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어지는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꼬리를 살짝 내리고 서로 애틋하게 몸을 맞대고 있는 물고기 두 마리 같은 모양으로 완성된 달걀 프라이는 차마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남들은 다 세상에 본 적도 없는 소스와 식재료와 특별한 조리법과 화려한 레스토랑을 선보이며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sns 콘텐츠를 쌓아가는 요즘 시대에 웬 달걀 프라이 컷이냐 해도 나는 갑자기 찾아드는 이런 이미지에 마음이 가서 결국 한 줄 쓰게 되는 일을 참지 못하겠다.
물고기들이 저렇게 서로 껴안는 행위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세상에 알려진 물고기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혹시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종의 물고기들이 또 그렇게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내이고 그는 남편이지만, 바쁘고 정신없이 굴러가는 일상 속에서 서로 꼭 껴안아 줄 여유도 없이 미안했다 고마웠다 정성스레 한 줄 표현할 빈 노트도 없이 사는 날들이 다반사다.
그러니 고작 달걀 프라이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고생대의 연인 화석처럼 예쁜 접시에 담긴 물고기 연인 한 쌍을 보는 일이 얼마나 문득 설레었는지!
당신을 꼭 껴안아 본 것이 그리 멀지 않은 기억이라 참 다행이다.
이 글을 마치고, 당신을 만나게 되면, 그 처음 순간 당신을 꼭 안아 보아야겠다. 물고기 연인처럼. 서로 다르지만 몸을 맞대고 있는 달걀 프라이처럼. 한 몸 안에 흰자 노른자 다 담고 있는, 비록 바로 서지 못하지만 완전한 하나의 달걀처럼.